#서울대입구 #육회마을
동네에 단골 술집이 있다는 건 마음의 안식처가 있다는 것과도 같다. 언제 가도 환한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시는 사장님과 늘 마시는 술,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입맛에 꼭 맞는 안주. 여기에 그 가게를 나설 때마다 몇 번이고 풀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가 보따리로 쏟아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오늘의 인터뷰이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그것에 곁들이는 반주를 사랑하는 이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운 술 덕분에 그녀에겐 언제 가도 좋은 단골 술집이 생겼고, 그곳에서 생긴 술피소드는 그녀의 인생을 더욱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다. 발길이 향할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떤 일이 생길까 고대하게 만드는 그곳. 인터뷰를 진행하는 삼십 분 남짓 동안 그녀는 입맛을 여러 번 다셨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피아노 레슨을 하고 있는 서윤영입니다.
-윤영 씨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인터뷰일 기준 이틀 전에) 코로나 걸려서 집에서 지내고 있어요. 휴가를 가려다가 못 갔습니다. 그 전날에 코로나 결과가 나와서… 지금 제 인생을 다시 되돌아보고 있어요.
-확진되기 전에 뭐 하셨길래요.
뭐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어디서 묻어왔는지 모르게 걸렸어요.
-그렇죠. 요즘 알 수가 없으니까. 어쨌든 어서 쾌차하시길 바랄게요. 윤영 씨는 어디 돌아다니시는 걸 좋아하시죠?
네. 좋아하죠.
-어느 동네 많이 다니시나요.
지금은 사당 쪽으로 이사 와서 사당에서 많이 노는데, 그전에는 서울대입구 쪽 많이 갔어요. 거기 살았기 때문에요.
-주로 사는 동네 근처에 많이 돌아다니셨네요.
그런 것 같아요. 놀고, 먹고, 이동하기가 편하니까.
-그러면 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장소도 동네에 있으신가요?
네, 서울대입구에 육회마을이라고 있어요.
-육회마을은 뭐 하는 마을이죠?
육회를 파는 마을입니다. 육회도 있고, 낙지도 있는데 저는 육회만 먹어요.
-낙지는 왜 안 드시고?
섞어 먹는 거 안 좋아합니다. 육회만 먹어요, 육회만. 육사시미도 안 먹고.
-육사시미랑 육회는 비슷한 종류 아닌가요?
거기 육사시미는 맛없더라구요. (소곤소곤) 육회가 맛있어요.
-아, 그렇군요. 뭔가 음식에 철학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저는 맛있는 것만 먹어요. (확신에 찬 눈빛 줌인)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시는 별명이 있다고요.
네, ‘서믿먹’이라고요. ‘서’는 제 성이고, ‘믿먹'은 ‘믿고 먹는다’는 뜻인데, 제가 추천하는 건 믿고 먹는다 이런 의미죠.
-그러면 숱한 맛집 리스트들 중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로 육회마을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거기는 에피소드가 많아요. 그중 제일 재미있었던 기억을 뽑자면, 2018년인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했을 즈음이에요. 그때 친구랑 술을 마시다가 그 영화에서 나온 노래를 친구한테 들려줬는데, 갑자기 뒤 테이블에 있던 사람이 너무 좋다고 이러더니, 또 그 뒤에 있던 사람이 너무 좋다고 막 하면서 이제 다 하나가 된 거예요.
-다들 취기가 올라서?
그러기도 했죠. 그렇게 <We will rock you>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때 모든 사람들이 막 쿵쿵 탁 쿵쿵 탁 이러면서 노래를 하는데 (웃음) 다 같이 그렇게 하나가 되었던 기억이 나요.
-장관이네요. 보지는 못했지만 아주 대단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에피소드들이 여럿 있으시죠.
거기 꼭 함께 가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가면 유독 그런 일이 많이 생겨요. 또 어느 날은 옆 테이블에 있던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저희한테 말을 걸더라고요. 그래서 그쪽 테이블 친구들이 한 명씩 저희 테이블에 와서 얘기하고 가고, 술 마시고 가고, 고민 상담도 하고 가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헤어졌어요. 희한한 경험이었죠.
-고민 상담도 잘해주셨나요.
그냥 뭐… 술 먹었으니까 (웃음)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 안 납니다.
-걔네도 기억 안 날 거예요. (웃음)
(웃음) 아, 그중에 송중기 닮은 친구가 있었는데 (아쉽다는 듯한 표정)
-아쉽군요. 뭐 없었나요.
그때 남자 친구가 있었어요. (허망한 표정)
-허망한 표정 들어가도 되나요, 인터뷰에.
들어가도 상관없죠.
-그럼 육회마을에 제일 처음 가셨던 건 언제였나요.
음, 아마 2014년이요. 친오빠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다가 거기를 갔던 것 같아요. 3차인가, 2차인가. 그리고 이후에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는 막 갔죠.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게 언제죠.
그쯤이에요, 2014년. 저는 20대 초반에는 술을 거의 안 마셨어요. 그때는 술 안 먹으면 말고, 술은 그냥 술이다 이랬었는데, 중반부터 갑자기 마시기 시작해서 (웃음) 이젠 빠질 수 없는 게 되었죠. 그것도 진짜 희한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이젠 인생의 일부분이 된 거죠.
그렇죠. 있으면 좋은 거 없으면 아쉬운 거.
-그럼 2014년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육회마을의 단골이신 거죠.
맞아요. 주인 사장님이 저를 기억하게 된 계기도 있어요. 거기가 1호점, 2호점이 있는데, 1호점에서 친구랑 교회 오빠랑 셋이서 술을 마셨어요. 그때 ‘이게 마지막 병이다, 마지막 병이다’ 하면서 10병을 마셨어요.
-10병이요? 소주를요? 셋이서요? (기겁)
네 (쩝)
-이 얘기하면서 입맛을 다시시네요.
아, 시원하겠다. (웃음)
-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셋이서 10병을.
그러니까요. 이제 사장님이 그때 지쳐버리신 거예요. 그때가 거의 5시가 다 됐었고, 퇴근하셔야 되는데. 한 병만, 한 병만 이러고 안 나가니까. 확실한 시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조금 해가 밝아올 때였어요.
-그래서 이후로 사장님 머릿속에 윤영 씨가 강렬하게 각인된 거군요.
그렇죠. 그 이후로 제가 갔는데 술을 안 먹는다 싶으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하시고.
-가서 술을 안 드신 적 있다고요?
비빔밥만 먹고 싶을 때 있어요. 그때 친구랑 가서 육회 비빔밥만 알게 모르게 먹었죠. 그랬더니 사장님이 이게 웬일이냐고 하시면서. (웃음)
-최근에 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네, 싸이 콘서트 ‘흠뻑쇼’ 끝나고 갔습니다. 옷이 아주 싹 젖어서 원래 집으로 가서 먹을까 했는데 1차로 완산정에 갔다가, 아, 완산정은 콩나물국밥집이에요. 가서 소주 한 병만 마시고 집에 가기로 했는데, 친구랑 삘 받아가지고 갑자기 육회마을로 향했죠. 그날도 에피소드가 있어요.
-정말 갈 때마다 에피소드가 생기시네요.
그날은 사람도 많이 없고 저랑 친구랑 구석에 앉아 있었어요. 우리 테이블이랑 우리 뒤에 커플 이렇게 두 테이블만 있었죠. 그런데 마시다 보니까 뒤에 커플이 없어진 거예요. 아직 2시가 안 됐을 때인데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불안하잖아요. 문 닫을까 봐. 그리고 조금 있다가 그 커플이 다시 들어왔는데, 여자분이 저희한테 ‘갈 줄 알고 불안했다고’ 하더라고요.
-둘이 같은 마음이셨군요. 혼자만 남아서 문 닫을까 봐.
그렇죠. (웃음) 그래서 막 그냥 ‘재밌게 노세요~’ 하고 있다가 이야기를 좀 하게 됐어요. 그리고 등 뒤로 막 건배하고 (웃음) 알고 보니 여자분이 저희랑 동갑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커플이 나갈 때 저희 테이블 계산해주고 갔어요.
-어머. 대박이네요. 아니 이 모든 에피소드들이 사실 한 군데에서 겪은 일이라고 하기에는 참 다이나믹하고 다양한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혹시 누군가 육회마을에 간다면 어떤 것을 하길 추천하시나요.
육회 비빔밥을 꼭 드셔야 해요. 또 육회 한 판을 시키고 육회 비빔밥을 먹어야 되고요. 소주 한 잔을 꼭 마셔야 해요.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