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한강공원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는 한강, 그 강을 따라 서울 곳곳에 포진한 한강 공원에는 사연 많은 손님들이 넘쳐난다. 넘실대는 한강 물을 이들의 눈물로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인데, 한강은 길고 공원은 많은 만큼 한강 좀 다녀 본 이들이라면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애착 장소를 가지고 있다. 오늘 인터뷰를 진행한 송란 씨는 한 번씩 삶에 치일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망원동 한강공원의 한 구석을 찾는다. 누구의 어떤 말도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 기꺼이 자리를 내주고 송란 씨의 어깨를 다독여준 오늘의 장소는 이미 그녀 친구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페달을 구르다 우연히 도착한 곳, 예전에도 앞으로도 그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위로해줄 곳, 망원동 한강공원 입구에서 한참 떨어져 아는 사람이 아니면 찾기 힘든 곳이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저는 부산에서 올라와서 3년째 서울에서 거주 중인 디자이너 안 송란이라고 합니다.
-부산에서 쭉 사시다가 3년 전에 서울로 오신 건가요.
사실 대학교 졸업을 하고 친구들이랑 선릉역 근처에서 잠깐 살다가, 저는 다시 부산에 내려갔어요. 그리고 거기서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모아가지고 다시 서울에 왔어요.
-오, 그런데 사투리를 하나도 안 쓰세요!
안 쓰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웃음)
-부산 어디에 계셨나요.
사상구라고, 서부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 곳에 살았습니다.
-(네이버에 ‘부산 사상구’를 검색해보고) 동쪽에는 백양산, 구덕산이 있는…?
(웃음) 네, 맞아요.
-제가 사실 작년에 부산에서 한 달 살기를 했었는데, 부산역 바로 앞 초량동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었어요. 그 근처에 차이나 타운도 있고 막 그러잖아요.
아, 어딘지 알아요. 그런데 저는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웃음)
-맞아요, 거기 관광객들만 가고 진짜 부산 사는 사람들은 안 가더라고요.
거기 있는 건 아는데, 왜냐하면 지나가면 항상 이렇게 보이잖아요. 빨간색이 보이는데 그냥 입구구나 하고 지나가고 (웃음)
-네, 그럼 다시 인터뷰로 돌아와서 (웃음) 부산에 가셨다가 다시 서울에 올라오셨는데, 꼭 서울에 살고 싶었던 이유가 있으셨나요.
저는 박순이에요.
-네?
‘집’순이가 아니라 ‘밖’순이요. 저는 ‘안’씨지만 (웃음) 밖에 다니는 걸 정말 좋아해요.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도 되게 좋아하는데, 서울이 문화생활을 하기 너무 좋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디자인과다 보니까 대학교 때도 방학 때마다 친구들끼리 한 번씩 서울에 전시회를 보러 왔어요. 전시나 이런 건 서울이 확실히 더 많아요. 또 저는 궁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항상 야간 개장하면 티켓팅 해서 가고, 매번 갈 때마다 느낌이 달라서 혼자 갈 때도 있고 낮에도 가서 거닐고 그랬어요. 특히 뭔가 생각이 많아질 때 가면 좋았어요. 그런데 부산은 사실 그런 곳이 많지 않거든요.
-생각해보니 부산에서 궁을 본 적은 없네요. 갑자기 지금 생각나는 건 해동용궁사 정도?
아, 저희 엄마가 해동용궁사를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웃음)
-엇, 왜죠?!
저희 집이 불교인데, 엄마께서 해동용궁사는 제대로 된 절이 아니라 돈을 칠한 곳이라고, 그래서 인정을 안 해주시는? (웃음)
-다시, 다시 인터뷰로 돌아와서 (웃음) 지금 망원동에 살고 계신 거죠.
네, 선릉에 살다가 부산에 내려가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을 때 처음 한 8개월 정도를 망원동에 있는 셰어하우스에 살았어요. 그 집이 한강이랑 되게 가까웠어요. 거기서 따릉이를 타고 되게 많이 돌아다니다가, 이후에 성산동에 있는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상경한 후로 망원 성산 그 근처에 쭉 사셨는데, 혹시 다른 동네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네. 다른 동네는 가고 싶지 않고, 이 동네가, 여기가 너무 좋아요.
-특별히 그 동네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일단은 제가 높은 건물들을 별로 안 좋아해요. 약간 낮은 건물들이 많은 데를 좋아해요. 엄마랑 처음에 셰어하우스 알아보러 서울에 올라왔을 때 엄마도 그 동네를 마음에 들어 하셨고, 저도 그 망원이라는 동네를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망원도 그렇고 지금 저희 동네도 그렇고 높은 아파트가 없어요. 한강 쪽에 보면 아이파크가 있는데 거기도 다른 아파트에 비해서는 층수가 되게 낮은 편이에요. 저는 작은 골목들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강남을 별로 안 좋아해요 (웃음)
-앞서 궁 얘기하실 때 생각이 많아질 때 가면 좋은 곳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또 혼자 생각하기 좋은 장소가 있으실까요.
네, 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인데요. 망원동 한강공원에 있는 곳이에요. 제가 사진으로 보여드릴게요.
-(사진을 보고)와, 정말 너무 예쁜데요. 여기 맨 처음에 가셨을 때 기억나시나요?
이사를 오고 나서 집 근처에 따릉이가 없어서 자전거를 샀어요. 집 앞에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가 되게 편하거든요. 그래서 그 자전거를 타고 망원 한강공원에 가서 한강을 따라 쭉 가다가 그곳을 발견했어요. 탁 트인 그 장소가 정말 너무 좋았어요, 진짜로. 공원 입구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인데요. 뒤편은 다 들판이고 앞에는 자전거 타는 라이더(?) 분들이 지나가시는 곳이고. (웃음) 앞에 보트를 세워두는 선착장 같은 것도 있어요. 그리고 되게 넓은 계단이 있는데 저는 보통 거기 앉아있어요. 그냥 이렇게 쭉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제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유명하지 않은 최애 장소라, 뭔가 아지트 같은 느낌도 드는데요.
맞아요! 작년도 그렇고, 재작년도 그렇고 제가 고민이 많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거기 가서 되게 많이 울었어요, 사실. 울기도 많이 울고…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좋았던 공간이라서 저한테는 되게 소중한 공간이에요.
-그런 장소가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내 집에 혼자 있거나 내 방에 혼자 있어도 사실 어떤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너무 부러워요. 저는 그런 공간이 아직 없거든요.
-그런데 억지로 찾으면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그냥 뭔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거죠. 저는 이런 거 정말 좋아해요. 골목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어떤 조그마한 가게를 발견하는 거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골목길을 많이 걸어 다니는 것 같아요.
-그러면은 코로나 시국에 굉장히 답답하셨겠어요.
저는 그래도 나갔어요. (웃음) 마스크 쓰고.
-사실 근데 뭐 사람이랑 이렇게 대면하는 거 말고 혼자서 돌아다니는 거는 괜찮죠. (웃음) 보내주신 장소 사진들 보니까 밤에 주로 많이 가셨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퇴근하고 가야 하니까요. 회사에서 화나는 일이 있거나 이러면 생각 정리하러 가고, 잘 안 풀리는 게 있거나 인간관계 이런 것도 생각하러 자주 가고. 주말에도 자주 가긴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주말에 다른 데 놀러 다니느라고 (웃음)
-그럼 최근에 언제 가보셨어요.
최근에… 못 갔어요. 7~8월은 거의 못 갔고, 6월 초쯤 엄청 덥기 전에 간 게 마지막이에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제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곳에 간다면 어떤 걸 하길 추천하시나요.
대학교 친구들이랑 셋이 자전거를 타고 그곳에 간 적이 있어요. 망원에서 놀다가 따릉이를 타고 갔는데 친구가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자기도 고민이 많거나 하면 여기 오고 싶다고, 제가 항상 말하는 공간인 이곳이 정말 궁금했었대요. 그런데 직접 와보니까 너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