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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Mar 04. 2021

가족은 4명인데 예약은 5명?

그들이 사는 세상

미국 리얼리티쇼 '베버리힐즈의 진짜 주부들'을 보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가족 여행에 이모님이 동행하는 장면이었다. 

이모님이 집에서 애들을 봐줄 수는 있지만, 여행까지 함께 가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리얼리티쇼라더니... 리얼리티가 떨어지네.'

나는 생각했다. 


그 날따라 그 집 만두가 그렇게도 먹고 싶었다. 

주부도 쉬는 날이 있어야 하며 만두는 만드는 게 아니라 사 먹는 거라는 나의 강력한 의견에 우리는 만두집으로 향했다. (부엌도 주말에는 살짝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주중에 양질의 음식이 나오는 법이다.) 마침 일요일 점심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북적거렸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특히 가족 단위가 많았다.

웨이팅이 무려 1시간...  기다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보통 같았으면 다른 집으로 발길을 돌렸겠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 집에서 파는 팥이 가득 들어있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찜빵이 그렇게도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근처를 돌아다니다 대략 시간이 되어 만두집 앞에서 우리 이름을 호명하기만을 목 빠져라 기다리는 그 순간, 어느 집 아이인지 모르겠지만 남자아이 두 명이 레스토랑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남자 애들은 어쩔 수가 없구나. 쟤네들 엄마도 쟤네들 키우려면 욕 좀 보겠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남자애들은 백인인데 그 아이를 잡으러 다니는 엄마는 라틴 쪽 사람이었다.


나는 남편한테 물었다.

" 애들은 백인인데 엄마는 왜 백인이 아니야? 아빠 유전자가 몰린 거야?"

남편이 말했다.

" 이모님이시잖아. 아이들 봐주시는 이모님. 엄마, 아빠는 밥 먹고 애들은 이모님이 케어하고.."


그랬다. 그녀는 엄마가 아닌 보모였다. 엄마와 아빠는 애들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들의 식사를 즐겼고, 애들을 먹이고 뛰어다니는 애들 잡으러 다니는 건 그녀의 몫이었다. 부모님들은 둘만의 데이트를 하는 것처럼 너무 여유로웠다. 그들은 온전히 자신들의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이모님의 역할은 집에 와서 애를 돌봐주는 정도였는데, 오늘 내가 본모습은 그 이상이었다. 이모님이 주말에도, 특히 외식까지 함께한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좀 많이 놀랬다.


문득 떠올랐다.  

한때 즐겨보던 '베버리힐즈의 진짜 주부들'의 리얼리티쇼!

하와이로 가족 여행 가는데 애들 봐주는 베이비시터들까지 전부 데리고 가던 말리부에 사는 어머님. 그녀는 가족 여행을 계획할 때 베이비시터들의 숙소까지 챙겼다. 그들을 데리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마치 가족을 챙기듯 그들을 챙겼다. 그 에피소드를 보며  '보모들까지 다 데려가면 도대체 여행경비 얼마야...? 너무 영화 같은 이야기 아니야?' 혼자 중얼거렸었는데...

이모님과 함께 외식하는 장면을 보니 TV에서 본 장면은 실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에게 이모님은 애들을 키우기 위해선 꼭 필요한 존재였고, 그녀와의 동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래서인지 애를 낳아 키우는 문제가 그들에게는 여자의 인생을 바꿀만한 일이 큰  사건이 되어 보이지 않았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4-5명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처음에는 대단해 보였지만, 이 일이 있고 난 후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많아질수록 보모가 많아질 거고 결국 아이를 키우는 건 보모의 몫이지 않을까..?)  


아이 있는 친구들 말로는 애 낳는 순간부터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닌 아이 엄마로 살아간다 했다. 나를 위한 시간 대신 아이를 위한 시간, 나의 스케줄은 아이의 스케줄, 나의 입맛이 곧 아이의 입맛이라며, 모든 게 아이들 위주라고.. 병원이나 가야 내 이름을 들을까, 내 이름이 아닌 누구의 엄마로 불려지고, 누구의 엄마로 살아가는 게 당연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만두집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누구의 엄마라기보다는 아름다운 한 여성이었다.

사실 좀 놀랍기도 하고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나에게 물었다.

' 내가 애를 낳으면 이인현이라는 여자로 살 수 있을까? 아니면 누구의 엄마로 불리며 사는 걸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에피소드였지만 아이를 가질 생각을 나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을 안겨준 순간이었다. 


만약 내가 돈이 굉장히 많다면, 나도 TV에 나온 어머님이나 식당에서 본 어머님처럼 항상 이모님이 내 아이 옆에 있을까? 정말 아이들은 베이비시터한테 맡기고 남편과 신혼일 때처럼 살 수 있을까?


어디든 이모님을 데리고 다녀도 아깝지 않을 만큼  돈이 많지 않아 그런지 모르겠지만, 돈이 엄청 많다한들 나는 그럴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어려운 상황이나 힘든 상황이라면 아이를 위해 이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겠지만, 모든 상황을 이모님께 맡기는 건 아니지 싶다. 

결국 그 아이들은 내 아이들이지 않은가..

내가 사랑과 관심을 준 만큼 그들도 나의 진심과 정성을 알아주지 않을까?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는 추억들이 더욱 끈끈하고 진짜 가족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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