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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Feb 04. 2021

집에 발레파킹이 왜 있어?

그들이 사는 세상

방송에서도 그랬다. 

좋은 집을 사려면 집을 최대한 많이 보라고..

방송에서 나오는 말을 맹신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겠다며 엘에이에 잠깐 있었던 일주일 동안 그렇게도 집을 보러 다녔다.

깔끔한 집도 보고, 정신없는 집도 보고,

새 집도 보고, 오래된 집도 보고,

아파트도 보고, 주택도 보고,

좋은 집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다양하고도 많은 집을 참 열심히도 봤다.


그러다 문득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으니,

'엘에이까지 왔는데, 으리으리하다는 베버리힐즈 집 어때? 그 정도는 봐줘야 엘에이에서 집 좀 봤구나 하지 않겠어? 집 본다고 집을 꼭 사야 하는 건 아니고, 집 본다고 입장료 내는 것도 아니고.'

(미국은 자신이 집을 팔고자 하면 주말에 자기 집을 모든 사람들에게 오픈한다. 그 시기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그 집을 구경할 수 있다.) 


주말 아침, 우리는 베버리 힐즈에 있는 오픈하우스로 출발했다. 베버리힐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워낙 고급져서 가기 전부터 왠지 모를 긴장감에 사로잡혀있었다. 우리가 가기로 결정한 집은 산 중턱에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베버리힐즈가 이렇게 큰 동네인지 몰랐다.

엘에이 관광 왔을 때 버스에서 가이드가 '여기가 베버리힐즈예요' 하길래 나는 용산구 정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땅 밑에 있는 쇼핑 거리부터 뒤에 있는 산까지 전부 베버리힐즈였다. 실로 어마어마한 면적이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깨끗한 길은 역시 좋은 동네라는 인식을 확인시켜주었지만, 오픈하우스로 가는 산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니 무슨 산에 집들이 이렇게 많아? 진짜 다르긴 다르다.."

길 양옆뿐 아니라, 골목마다 집들은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길도 참 꼬불꼬불했다.

"혹여나 임신이라도 하면 병원 도착 전에 차 속에서 애 낳겠어."

이런저런 농담을 해가며 우리의 집 찾기 여정은 계속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길이라 그런지 1km가 10km 같았고, 우리가 잘 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사생활 보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족히 2-3미터는 되어 보이는 나무들 때문에 담벼락만 보이는 집도 꽤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입성한 오픈하우스.

너무 기대를 많이 한 탓인가요, 아니면 여기까지 오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였을까요.

집도 널직 널찍하고, 수영장도 있고, 대리석 바닥에 있어 보이는 집이긴 했지만 내가 생각할 정도로 입이 벌어져서 기절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물론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살 수 없는 집이지만, 뭐 구경하러 와서 혼자 생각은 할 수 있는 거니까:)


약간의 실망, 그리고 다른 집에 대한 기대감으로 우리는 다음 집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그러던 중 코너에 자리 잡은 집 앞에 놓인 발레파킹 부스를 발견했다. 


"아니 이런 산중에 레스토랑이 있어? 이런 데를 누가 온다고.."


인기가 없는 레스토랑이라고 하긴엔 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꽤 많고, 발레파킹 아저씨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 레스토랑 아니야. 그냥 집이야."

그가 말했다. 내가 물었다.

"집에 발레파킹이 왜 있어? 

미국은 집에서 막 발레파킹해?"

그가 말했다.

"주차할 곳이 없잖아."


그랬다. 자세히 보니 그 집은 생일파티 중이었다. 애들 손에는 풍선이 들려있었고, 부모들은 자신의 차를 기다리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거지역이라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기에 생일파티를 연 집에선 발레파킹 업체를 부른 것이다.

나는 몰랐다. 그들에게 아이 생일파티를 준비할 때 발레파킹 업체를 선정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사실을.. 그건 이상한 행동이 아닌 손님들을 위한 배려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장면이 나에게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발레파킹 전문 업체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그 업체를 고용하는 사람이 회사가 아닌 개인이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어른 행사가 아닌 아이들 행사에 발레파킹이라니...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은 달랐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과는 좀 다른 곳이라는 사실을 몸소 느낀 날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 또 다른 집 앞에 놓인 발레파킹 부스를 발견했다. 아이 생일파티는 아니었지만 디너 행사 정도였던 것 같다. 역시나 아저씨들은 분주하게 움직이셨고, 손님들은 집 앞에 차만 세워둔 채 유유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손님 부를 때는 발레파킹!!)


손님들은 참 편하겠다. 주차 걱정 안 해도 돼서..;)


나는 친구 집을 갈 때마다 묻는다.

"혹시 너네 집 근처에 주차할 곳 있어?"


발레파킹 업체를 부르는 건 좀 과한 행동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기도 하지만,

손님들을 위한 배려에서 주차까지 신경 쓰는 주최자의 행동은 멋져 보인다.




*미국에서는 아이 생일파티에 아이의 친구들 뿐 아니라 친구의 부모까지 파티에 초대한다. 그래서 음식을 준비할 때도 아이들 음식뿐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음식도 준비한다. 또한 생일파티 주최자는 생일파티에 참석해준 손님들을 위해 선물도 준비한다. 아무래도 미국은 개인주의 사회라 시간을 내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이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참고로 그들은 그 답례품을 고를 때 엄청난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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