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수영장 있는 집이 참 좋아 보였다.
그 집이 내 집이라면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마치 커다란 무엇이라도 이룬 것 같은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TV에서 수영장 딸린 집이 나올 때면 생각했다.
'나도 저런 집에 살아보고 싶어'
미국에 정착하기로 마음먹고 참 많은 집을 만났다. 비록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수영장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갑자기 집주인이 망해서 기가 막힌 가격에 집이 경매로 나오면 모를까 현실에서는 택도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수영장 있는 집을 지나갈 때면 내 가슴은 쿵쾅거렸다.
'상상해보라. 더운 날 나만의 공간에서 태닝 하고, 수영하고, 여유를 즐기며 맥주를 마시는 내 모습을...'
그랬다. 내 머릿속은 벌써 수영장 있는 집에서 매일 수영하고 태닝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기필코 자쿠지까지 딸린 집을 사리라.'
나는 다짐에 다짐을 또 했다.
세상에 간절하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집 한쪽 벽면에 내 눈을 사로잡던 액자가 하나 있었다. 수영장이 그려진 된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벅차오르는 이 심정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리오.
'가격도 나쁘지 않고 집도 마음에 드는데 수영장까지 있다니. 그렇게 수영장, 수영장 하더니 이뤄냈구나. 이제 성공한 여자처럼 여유롭게 맥주 마실 일만 남은 건가.'
그런데 아무리 집을 둘러봐도 수영장은 보이지 않았다.
'이 집에 안 보이는 공간이 있나? 수영장이 왜 없지? 그림에는 있었는데..'
액자 속의 그림은 집주인이 꿈꾸었던 모습이었다. 그도 나처럼 수영장이 갖고 싶었고, 수영장을 만든다면 그런 스타일로 짓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었 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수영장이 있다고 속으로 좋아하면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폈던 것이고... 수영장은 없었지만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집인 건 확실했다. 많은 협상과 노력 끝에 그 집은 우리 집이 되었다.
이사를 무사히 끝내고 집 적응을 끝낸 나는 동네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웃들은 미국 사람들이 이렇게 정이 많았나 할 정도로 친절했다. 자기 집에 열린 자몽을 무료로 나누어주었고 처음 이사 온 내가 놓치고 넘어갈 부분을 전부 알려주었다. 동네에 있는 집은 전부 다르게 생겼고, 대부분 집들은 수영장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집에만 있는 게 수영장이 아니었어? 수영장 딸린 집이 이렇게 흔한 것인가..'
수영장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러한 사실은 큰 혼란을 주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잠자고 있던 내 가슴속 수영장에 대한 열망을 깨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에 산불이 발생했다. 다행히 우리가 살고 있는 산은 아니었지만 바로 건너편 산이 활활 타올랐다. 바람의 방향이 우리 쪽이라면 그 불은 언제든 올 수 있었다. 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집 주변의 잔디와 바닥에 쉬지 않고 물을 뿌렸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수영장 딸린 아랫집이 왜 이렇게도 부러운지.. 불이 났을 때 불을 피하기 위해 수영장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구했다는 뉴스 기사를 접하는 순간 수영장을 갖고 싶다는 나의 열정은 더 불타올랐다.
나는 눈치를 보며 말했다.
"수영장이 있으면 참 좋을 거 같아. 산불 날 때 보니까 정말 필요한 거더라. 그래서 다들 수영장이 있나 봐. 단지 즐기려는 목적이 아니었어. 수영장이 있으면 불나도 걱정이 덜 되겠어. 대피 못하면 물에 들어가면 되고, 불을 끌 때 물이 부족하면 소방관들한테 수영장 물을 내주면 돼. 그리고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들이 얼마나 잘 놀겠어? 엘에이는 더운 날이 대부분인데 수영장 있으면 완전 대박 아니야? 바캉스 갈 필요가 없네. 여기가 지상낙원이지."
나의 논리에 설득당하는 듯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수영장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궁금했다. 수영장을 짓는데 얼마나 들어가는지..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면 나는 빨리 포기할 자신이 있었다. 드디어 나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전문가 선생님이 오셨다. 땅을 둘러본 그는 말했다.
"대략 1년 정도 걸려요. 시에서 허락이 늦게 떨어지면 더 늦어질 거예요. 그리고 경사가 급하고 돌이 많아서 먼저 기둥을 박아야 해요. 기둥 하나 박는 거 만해도 꽤 비싸고 튼튼하려면 여러 개는 심어야 해요. 그다음에 수영장 만들고 데크 설치하면..."
그랬다. 수영장 공사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프로젝트였고, 기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엄청 들어가는 공사였다. 현타를 강하게 맞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 갖고 싶지만 아직 나에게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 그래서 전주인이 포기한 거였구나. 하긴 스케치까지 하고 디자인까지 뽑았는데 안 할 이유는 없지.'
이제 좀 이해가 되었다.
사실 나는 수영도 그저 조금 할 줄 아는 수린(수영 초보)이다. 이런 나에게 집에 수영장은 현실적으로 좀 과한인테리어지 않은가... 그리고 엘에이의 장점이 무엇인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다를 갈 수 있지 않은가:) 비치 가서 태닝도 하고 덥다 싶으면 바닷물 속에 들어가고..
머리로는 가능성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다른 집을 볼 때마다, 덩그러니 잡초만 자라는 땅을 볼 때마다, 수영장에 대한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가 않는다. 아직까지 마음 한편에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지만, 꿈은 꾸라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수영장 있는 집을 꿈꾼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꼭 수영장 만들어줘.
내가 매일 광이 나도록 열심히 청소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