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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Mar 18. 2021

나도 정원사 갖고 싶어

그들이 사는 세상

엄마는 말씀하셨다.

죽기 전에 주택에 사는 게 소원이라고..

나는 세상 편한 아파트를 놔두고 주택으로 가고 싶다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기막힌 일이 생겼다.

제2의 인생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토록 원치 않았던 주택에서의 삶이었다.


이상하게도 해가 뜨면 집들 앞에는 미니 트럭들이 세워져 있었다.

'무슨 보수공사를  저렇게 하나. 집이 오래되고 낡아서 매일 뭐가 터지는 건가, 아니면 리모델링을 하나?!?'

주택에 살아본 적 없는 나에게 매일 일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젊은 사람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연령층도 다양했고, 일하는 사람이 한 명인 집도 있고, 여러 명인 집도 있었다.

집 자체가 워낙 오래돼서 삐그덕 거리거나 새로운 분위기를 위해 집단장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그들은 고장 난 집을 고치는 사람도 아니고, 리모델링하는 사람들도 아니라는 걸..

그랬다. 그들의 직업은 정원사였다.  그들은 나무와 잔디의 이발은 물론, 때에 맞춰 해충약과 영양제도 뿌려주었다. 쓰레기차가 오기 전날에는 쓰레기통은 물론  집 주변의 쓰레기까지 정리하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그들 덕분에 집 정원은 365일 단정했지만, 우리 집은 예외였다.

아무런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 집 정원은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주님이 꽃과 나무를 잘 키우는 재주를 나에게 주지 않으셨다는 걸...

세상 죽이기 어렵다는 선인장을 여러 번 죽인 화려한 경력을 가진 나에게 필요한 건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이 아닌 정원사였다. (나는 나를 과대평가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다.)


나는 고민 끝에 용기 내어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도 정원사 쓰면 안 될까? 나도 정원사 갖고 싶어. 해가 좋아서 그런지 나무랑 풀도 엄청 빨리 잘하더라. 점점 따뜻해지니까 이 동네 개미는 다 우리 집으로 온 것처럼 엄청 많아졌어. 저번에는 뱀도 그렇고.. 내가 해본 적도 없고 똥 손이라 분명 다 망칠게 뻔해. 정원사 있으면 그 사람들이 전부다 관리해주는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되고.. 우리 집 정원 별로 안 크니까 일주일에 한 번 오전에만 어떻게 안될까?"


남편이 말했다.


"정원사 쓰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아서 자기들이 할 수가 없어. 그래서 사람을 쓰는 거야. 너랑 나랑은 엄청 젊잖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우리가 일단 해보자. 해보고 정 안되면 그때 부르자. 그런데 나는 우리 둘이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몸에 절약이 붙은 사람이기도 하고 스스로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 남편은 나를 설득했다.

들어보니 남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씩 정원에 마음을 주면 집이랑도 친해지고 집에 대한 애정도 생길 것 같았다. 가드닝에 대해 일도 모르는 내가 시작한 건 마당 쓸기였다. 완벽주의자 성격인 나는 부서진 나뭇잎조차 쓸어 담아야 직성이 풀렸다. 보통 사람들은 바람 부는 기계를 이용해 한쪽으로 몰아 모여진 낙엽만 버린다는데, 기계치라 빗자루로 일일이 다 쓸었다. 정원이 그리 넓지도 않은데 얼마나 꼼꼼했는지 한 시간이 꼬박 걸렸다. 하지만 그래도 가드닝에 일조한 거 같아 뿌듯했다.


그러고 몇 달이 지났을까..

어김없이 마당을 쓸고 있는데 윗집 정원사가 말을 붙여왔다.

"새로 이사 왔어요? 전에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 요즘은 사람 안 쓰나 봐요. 보면 바닥만 깨끗해요. 혹시 정원사 필요하면 알려줘요. 저 일 잘해요. 원하는 시간에 맞춰줄 수 있어요."


그는 새롭게 개척할 곳이 생겼다는 듯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했다.

그의 명함을 건네받자 마음 저편에 고이 묻어두었던 정원사를 고용하고픈 나의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대신 주말이 되면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잔디를 자르기 시작했고, 벌레를 죽이기 시작했다. 꽃에 애정을 주기 시작했고, 때에 맞춰 영양제까지 챙기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하는 그를 보며 정원사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가라앉혔다. 나는 여전히 마당을 쓸었고, 더 나아가 잡초 담당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싫었던 정원 가꾸기였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 일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었다. 집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커졌고,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자기의 몫을 다하는 꽃과 나무를 보며 경건해지기도 했다.  물론 바람에 의해 매일 떨어지는 낙엽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나와 남편은 젊음이라는 이름 아래  정원사 없이 그럭저럭 잘 해내가고 있다.

물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젊어서 하는 일은 나중에 다 추억이 된다고 하지만, 인생에 있어 경험만큼 값진 일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원사가 오면 좋겠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남편이 말했다. 나중에는 늙어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때가 온다고..

그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내 생각엔 하고 싶어도 못하는 때는 안 올 듯싶다.

내가 마당도 열심히 쓸고 잡초도 열심히 뽑고 있을 테니, 정원사 쓰는 걸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세요.

부디 그 날이 어서 빨리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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