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주파수가 바뀌지를 않네

by 체리

TV처럼 오래 사용하는 가전의 리모콘은 꽤 자주 교환하게 되는 품목이다. 처음에는 '어? 이게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이 리모콘을 바닥에 대고 두드리거나 건전지를 바꿔보는 등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발전하게 되고, 리모콘은 고장 났어도 채널을 바꿀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고 손으로 채널을 돌리는 등의 쾌적하지 못한 생활을 지속하다가 결국 서비스 센터를 찾게 되는 것이다.


글 쓰는 게 늘 즐겁기만 한 건 아니지만 절대 그만둘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또 우울증이라는 경험 역시 꽤 훌륭한 글감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한창 앓을 적에 했던 생각들을 잊지 않으려 이 시리즈를 시작하긴 했지만 그렇게 발버둥 친 것 치고도 그때의 감정들을 꽤 많이 잊어버렸다. 다행히 한 가지가 기억났다. 그때의 내가 '내 리모콘은 고장 났고 다신 고칠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도무지 옛날의 그 채널로 돌아갈 수가 없어서, 다시는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많이 두려웠다.

비암의 기분

언젠가 파충류와 인간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과 파충류 사이에서, 포유류 사이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교감은 성립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어느새인가 우울증의 마수에 걸려 파충류의 뇌를 갖게 된 거라고, 그래서 지금처럼 이렇게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는 거라 생각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울증은 저주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고 정말로 리모콘이 고장 난 것도 아니에요. 하다 못해 리모콘도 전파사에 가면 고칠 수 있으니까. 어서 주변의 정신과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당시의 나는 내 안에서 뭐라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감정은커녕 허구한 날 멍한 상태에 빠져 '죽어야겠군'이라는 내 목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주변 사람들은 소위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만이 대기권 밖으로 밀려나 우주의 쓰레기가 된 것 같은 엄청난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친구들이나,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에게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려다가도, '저 사람들은 의사가 아니야. 얘기하면 또 뭐가 변하는데? 괜한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입 다물자'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치료를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겨우 털어놓을 수 있었다. 자세히는 아니었지만, 짧게 요즘 우울증 치료받는다고만 말했다.


당시의 내 기분을 위에서 말한 것처럼 채널에 비교하면 나는 투니버스를 보고 싶은데 자꾸만 화면조정 이외의 어떤 영상도 볼 수 없는 것에 가까웠다. 투니버스가 됐든 KBS가 됐든 과거의 나는 때로는 슬프고 또 때로는 화가 날지언정 내 힘으로 일어나서 다시 보고 싶은 채널을 찾아, 쌩쌩하게 작동하는 리모콘을 쥐고 고군분투하면서 살았는데. 리모콘은 안 먹히고 모니터에는 귀 아픈 윙-소리와 함께 화면조정 이미지만 나왔다. 내 몸이고 내 기분인데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나마 화면조정 이미지라도 나왔지 나중에는 아무 이미지도 나오지 않았다. 공허함 그 자체였다. 그러다가 가끔 우주의 신호라도 받은 듯이 공허한 화면에서 '그래, 죽어야지.'라는 말만 흘러나오는 것. 그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스피커를 손으로 막아보고 검 테이프도 붙여보고 TV를 발로 차도 보는 것, 내가 겪은 우울증은 이랬다.

요즘의 내 얘기를 해볼까. 어제 정형외과에 다녀왔다. 주중엔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주말에라도 다녀온 것인데 사람이 너무 많은 나머지 진료까지는 50분을 기다려야 했고, 진료를 받은 후 물리치료를 받기까지는 또 3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찌나 짜증이 치밀던지. 나는 '황금 같은 주말에 정형외과에서 늙어 죽게 생겼구먼'이라고 생각하면서 약만 받아가겠다고 말하고 그냥 병원을 나왔다. 짜증의 연속이었다. 정형외과에서는 물리치료 하나 받는데 80분(+물리치료 시간)을 기다려야 한대지, 날은 푹푹 찌지, 6개월 넘게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것만도 성질이 나는구만 왜 정형외과 약까지 하루에 여섯 알씩 먹어야 하는 건지. 그런데 약사 선생님이 시원한 거라도 먹으라고 음료를 꺼내 주는 순간 짜증이 조금 가셨다. 푹푹 찌는 거리에서 타죽겠구만!! 을 외치며 걷는 동안 생각해보니 짜증 속에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이제 짜증도 아주 잘 내는데?'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1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면서, 매일 밤 자기 전 약을 먹으면서, 맞지 않는 약을 몇 개월씩 먹으면서, 부작용 때문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이루고 싶었던 걸 난 이미 이뤘던 거다.


내가 공기만 담은 고기 주머니가 된 느낌을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내 안엔 짜증도 울음도 망상도 후회도 많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것들이 모두 고갈되고 말 그대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고기 주머니가 되었다는 생각에 많이도 괴로워했었는데. 이제는 짜증도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내고, 툴툴거리면서 집에 온다는 건. 작년의 내게 얼마나 귀한 일이었던가.


아, 상관은 없는 이야기지만 병원에서 그대로 집에 와버린 걸 조금 후회했다. '까짓 거 1주일 더 참으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몇 주일을 참다가 병원에 간 것인 만큼 통증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바보 같은 점도 옛날의 나와 같군.

아가가 온다

곧 고모가 된다. 아기가 문어가 되고 싶다고 하면 그래!라고 하고, 아기가 커서 공룡이 되고 싶다고 하면 공룡을 보러 가서 이 공룡 중의 뭐가 되고 싶냐고 물을 줄 아는 고모가 되고 싶다. 훌륭한 공룡이 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것들을 같이 배우고 싶다. 건강한 아기와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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