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잠기지만 않게 도와주는 것
항우울제에는 늘 약간의 불신이 있었다. 처음에 품었던 불신은 대체로 정신과 자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지만 첫 항우울제를 접하고 복용 기간이 늘어갈수록 '이 약은 어떤 부작용을 줄까'라는 생각 때문에 약간의 불신은 늘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우울증을 앓기 훨씬 전의 나는 항우울제가 '아픔을 낫게 해주는 마법의 사탕' 같은 존재일 거라 짐작했다. 그만큼 항우울제는 '나의 세계'와 훨씬 먼 곳의 무언가라는 생각을 했고, 사실 별로 그렇게 친해지고 싶은 존재도 아니었다. 딱 그 당시의 거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우울증을 몰랐던 시절의 나는.
매화 적게는 3장에서 많게는 4장의 에이포 용지에 그림을 그린다. 일단 첨부할 그림이 있어야 뭐라도 진행이 되다 보니 매 주말 연재를 위한 글 작성 전의 단계는 늘 장판 위에 쪼그려 앉아 붓펜을 늘어놓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피곤하거나 무서운 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간을 너무 들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 그림당 1분에서 5분 정도가 딱 좋은 것 같다. 좋아하는 일과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둘 수 있어야 질리거나 너무 마음 아파하는 일 없이 오래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나는 그림이 좋다. 이유는 별로 없는데 내 그림을 보고 이게 뭐냐고 웃는 사람들이 좋다. 웃음이 전염되는 그 순간의 톡 터지는 청량감이 정말 좋다.
아무튼, 항우울제가 내 생활에 들어오고 나니 약을 먹는 생활은 짐작했던 그것과 많이 달랐다. 항우울제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약이 아니었다. 아시는 바처럼 나는 자살에 관한 충동과 그로 인한 생산성의 저하 때문에 초기 치료기간 동안 브린텔릭스를 복용했는데, 이것은 딱 '자살에 관한 충동' 만 생활에서 배제해 주는 역할을 했다. 물론 그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뿐이었다. 약을 먹으면 죽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또 기분이 막 좋아지지는 않는다. 평범하게, 감정이라곤 없고 어깨가 골반쯤에 축 쳐진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진다. 나는 항우울제가 수영장에서 음료수나 쪽쪽 빨면서 수면을 떠다닐 수 있게 해주는 소파 모양 튜브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항우울제는 딱 수면 위로 코만 내놓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적어도 빠져 죽는 일만은 없도록. 마치 인도적 차원에서 딱 '쌀' 만 사먹을 수 있게 해주는 정부의 궁여지책 같은 느낌이다.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어디 쌀만으로 살아가던가. 단 맛도 신 맛도 맛보고 싶은데 '거기서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야지'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나와 항우울제의 관계는 이러했다.
치료 초기 내내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낮 약인 브린텔릭스를, 밤에 자기 전에는 멀타자핀을 먹는 생활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위약효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밤 약 먹기를 깜빡해 12시를 30분 이상 넘기기라도 하면 어느 순간 '죽을까?'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 밤 약이 아직이구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웬만하면 시간에 맞춰 약을 먹으려 노력했지만 그 후로도 종종 약 시간을 놓쳤다. 이 현상은 치료가 진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지표이기도 했다. 치료 초기에는 때로 약이 안 듣기도 하고 부작용 때문에 고생을 톡톡히 하던 시기라서 여러 모로 마음을 잘 도닥일 필요가 있었는데, 어느 날은 12시를 한참-물론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지만- 넘겼는데도 마음에 별다른 동요가 없는 거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 몸이 일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내가 낫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몸서리쳐지게 기뻤던 것을 기억한다.
약과 나의 관계는 이제, 그러니까 적어도 지금 먹는 약에 관해서만은. 꽤 굳은 신뢰로 묶여 있다. 비록 위가 좋지 않아서 장기간의 약물 복용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나는 이제 불평하지 않고, 세상 모든 것이 나를 물속에 처넣으려 해도 내 코만은 수면 밖으로 빼내 줄 약의 존재에 애정 어린 신뢰를 갖게 되었다. '그래, 네가 구할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 텐데, 그 수많은 코들을 빼내 주려면 네가 얼마나 바쁘겠어.' 따위의 생각과 함께.
애인이 나의 그림 중 하나를 핸드폰 잠금화면으로 해두었다. 애인은 '네 그림들이 잘 보관되어 있으면 좋겠어'라고도 말했는데 그림들 중 대부분은 이미 매주 3-4장 페이스로 늘어나는 그림들의 습격을 견디지 못한 엄마의 손에 들려 분리수거장으로 간지 오래였다. 나와 애인은 오래전에 '아무리 상황이 좀 뻘쭘해도 아무 말 안 하고 넘어가서 상대방 바보 만드는 일 하지 말자'는 데에 합의를 했지만 어쩌다 한 번 정도는 입 다물어도 되려니 하고 어색하게 동의했다.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