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내 멱살 잡고 밖으로 나가기

by 체리

이번 주는 느낌이 좋다. 우울증이 생기고 나서 생리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었는데 이번 생리 기간은 감정에 큰 기복이 없이 지나갔다. 나는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원래도 뭐 대단히 하는 것은 없고 레그 레이즈 20번, 플랭크 30초씩 5번 하는 식으로 집에서 간단히 하는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완전히 그만둔 채 1년을 보낸 후로는 아주 약한 강도로 1주일 넘게 계속하고 있다. 물론 근력은 형편없어졌다.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우울증에 걸린 후로 계속 줄 끊어진 기타처럼 지냈는데 지난 한 달여는 나름대로 짱짱한 새 줄 끼운 기타 같은 느낌으로 지낼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이렇게 '나름 괜찮은데'라는 느낌들이 매 고비를 넘기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을 애써 외면하면서 지내는 것이 굉장히 괴로웠다. 그렇다고 당장 일어나 움직일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런데 요즘은 해야 하는 일을 쳐나가는 박자가 경쾌하게, 삐끗하는 일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주 기쁘다. 내 우울증 여부를 아는 엄마도 요즘 내가 분주하게 할 일들을 하는 모습에 기뻐 보인다.


왠지 쑥스러웠던 탓에 한 번도 의사 선생님한테 이 글을 쓰고 있다고 털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주 병원을 방문했을 땐 '그럼 요새는 뭘 하나요?'라는 말에 달리 할 말이 없어서 글을 쓴다고 이야기했다. 의사 선생님은 글을 쓰면서 객관적으로 감정이 정리되는지, 전에 쓴 글들을 다시 읽고 있는지 물었지만 내가 무슨 큰 뜻이 있어서 이 시리즈를 시작한 것이 아닌 만큼-그냥 뭐라도 해야 덜 불안할 것 같았다- 대답은 소극적이었다. 전에 쓴 글들을 읽고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뭘 이야기했고 앞으로는 뭘 얘기해야 하는지 알기 위함이고, 감정이 객관적으로 정리된다는 건 별로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난 지금 사이다 한 컵에 행복을 느끼고, 지나가는 어린애를 보면 곧 태어날 조카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치과에서 치료할 치아가 없다고 하면 그게 또 행복하다. 무엇보다 80만 원이 찍힌 이번 달 카드 명세서에 오싹함이 느껴지는 걸 보니 세상에서 나를 지울 작정으로-가기 전에 장례비용 정도만 남기고 다 없애려고-마구 써재낀 나머지 300만 원짜리 명세서를 받았던 어느 날보다는 훨씬 더 건강해졌다는 게 눈에 쏙쏙 들어온다. 현실감각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의사 선생님이 뭐라 하건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그가 내게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해서 당신 생활을 이어나가는 게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담자고 내담자고 결국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은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이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 생각하며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몇 번의 방문은 의사 선생님이 '(지금 상태가)순조롭게 유지되고 있네요'라는 둥의 말을 하는 것이 신경 쓰였다. 내색도 재촉도 하지 않았지만 언제쯤 약의 용량을 줄여나가게 될지 알고 싶은 것이다.

꽤 오랜 기간을 다른 사람들과 다른 수심에서 생활했다. 어느 날은 정수리까지 푹 잠겨 있었고, 또 어느 날은 턱까지 잠겨 있었다. 어느 날은 허리까지만 잠겨 있어서 이 정도면 할만하겠다고도 생각했지만 다음날 뒤통수를 때리는 밀물은 그 어느 날보다도 짰다. 우울을 자연현상처럼 생각했다. 비가 온다고 해서 사람이 하늘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비가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비를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현상이란 그런 거니까. 그저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인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자연현상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정말 지나갈 수도 있고, 지나간 줄로 알았던 옛날의 우울이 벌 독처럼 몸에 차곡차곡 쌓여 있기도 하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해가 진 후 서늘해진 거리를 한참 걷다 보면 우울도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다 보면 그것들이 쏜살같이 도망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세상에는 방향이 잘못된 노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같은 백색의 가루라도 밀가루가 잉크 얼룩을 지우는 데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우울증이 생각보다 심각했다는 걸 알고 나선 모든 걸 치료 위주로 생각하기로 했지만 어쨌거나 할 일은 존재했다. 매일 터져 나오는 일들이 내 사정을 봐줄 리 없었다. 어느 날은 모처럼 맛있는 게 먹고 싶어서 국밥집에 가 4인분인가를 사 오는데 시야가 좁아지고 팔다리가 후들거리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못내 무서워지는 것이었다. 가벼운 불안장애였던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행히 지하철까지 먼 거리가 아니었고 일단 지하철에 앉으면 그 거대한 무쇠 친구가 날 집으로 데려다 줄 거라는 사실도 알았기에 나는 숨을 헐떡이며 숫자를 세었다. 공포는 있는데 공포의 대상이 없어서 기묘했다. 발의 움직임에 따라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남이사 이상하게 보든 말든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나지막하게 괜찮아, 괜찮아, 조금밖에 안 남았어를 중얼거리면서 걸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갈비탕 국물 봉투를 손에 든 채. 이것이 지속되었더라면 치료가 더 길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이 증상은 한두 번 더 나타난 후로 여태 소식이 없는데, 얘기를 들은 의사 선생님은 이 증상이 나타날 수도,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걸 이유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건 치료 상의 후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건강을 위해 술을 끊는 건 좋지만 불안 장애가 무서워서 술을 끊는 건 안될 말이고. 귀찮아서 안 나가는 건 상관없지만 불안 장애가 나타날까 봐 집에만 있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인생이란 어찌나 고달픈지. 불안장애라는 나름대로 괜찮은 핑계도 내가 게으름을 피우는 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세상이 내게 핑계를 주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순 덩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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