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아직 '척'은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by 체리

알레르기는 여전히 몸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활발히 존재감을 떨치지만 그래도 배가 안 아픈 게 어딘가! 그저께는 입술이 명란젓처럼 붓더니 오늘은 바람에 튼 것처럼 볼이 빨개졌다. 애인은 내 알레르기가 고질적인 문제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정말이지 프랑스에 가기 전엔 이렇지 않았다. 알레르기 자체도 별로 심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 한 번만 다녀오면 재발하는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생긴 녀석은 입술에 생긴 것을 눌러 놓으면 다음날 눈에서 재발한다. 체질도 변하는 모양이다. 당황스럽다.

글씨는 세월이 감에 따라 나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주 약속했던 것처럼 이번 주는 성실하게 진도에 맞는 이야기를(치료 초반의 이야기) 할 작정이지만, 2주 정도인가 전일까,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기 위해 얼굴에 힘을 주던 순간, 그날 아침이 지난 몇 달 간과 다르다는 걸 금세 알았다. 그날 나는 진심으로 '오늘은 이 일이랑 저 일을 하고 뭘 먹어야지'라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그 계획들은 약으로도 채 잠재우지 못한 허망감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 뛰쳐나가 급조해낸 계획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몇 번째였는지 모를 치료 상의 고비가 또 한 번 지나갔구나, 나는 또 새로운 단계의 치료를 시작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즘은 증세가 많이 좋아졌다는 사실이 실감 나고, 무엇보다 잠들기 전 눈을 감을 때 내일 있을 일에 작게나마 느끼는 설렘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약의 용량을 줄이는 일은 아직 미래의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치료 초기에는 1회 진료에 7일 치만 받았던 약들이 10일 치가 되더니, 이번엔 14일 치로 늘었다. 그래도 고비는 또 올 테니까, 너무 기뻐하지는 않으련다. 좀 웃기면서 슬픈 이야기인데 내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계기는 하나 더 있다. 우리 아버지와 나는 사이가 많이 안 좋은데 아버지 말에 전처럼 큰 짜증을 느끼면서 감정이 돌아오고 있고 우울증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는 걸 깨달았다. 인생 새옹지마라더니.

이불을 개면서 또 눈을 떴다는 사실이 울적하지 않았던 날의 아침

그럼 다시 원래 진도대로. 앞서 여러 번 언급했던 것처럼, 우울증 이후로 나란 사람이 가진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인간관계에 들일 만한 기력이 아주 많이 사라져서 평소처럼 대화를 해도 속으로는 진이 빠진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웃는 척은 해도 예전에 지었던 '진심' 미소와는 많이 달랐던 것이, 감정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어쩌면 내 몸이 감정을 기억할지도 몰라. 웃으면 예전에 느꼈던 감정들이 조금씩 돌아올지도 몰라'라는 허무한 기대도 많이 했는데 물론 아무 소용없었다. 웃는 척은 웃는 척이었고, 우울증은 병이었다. 이게 의지로 나을 문제면 굳이 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거다.

내면과의 싸움

이중고, 아니 삼중고였다. 일차적으로 아무 감정이 안 드는 게 괴롭고, 그다음은 내가 이런 상태라는 걸 들킬까 무섭고, 마지막으로 진짜 감정도 아닌 주제에 자꾸만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척'해서 죄책감이 들었다. 즐거운 척, 반가운 척, 좋은 척, 싫은 척, 짜증 나는 척, 척. 그 와중에도 '아, 그나마 그 척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인 건가' 생각했으니 아프긴 많이 아팠나 보다. 처음엔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나면 마음이 좀 더 '가벼워' 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신과를 가 보니 나는 가볍고 말고 할 마음 자체가 없었다. 땅콩이 빠진 오징어 땅콩, 초코 없는 칸초, 치즈 없는 뽀또였다. 가게에서 점원이 인사를 해 주면 나도 없는 기운을 짜내어 활짝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그 표정은 돌아서기 무섭게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런 척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그마저도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당시 나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쭉 찾고 있는 병원의 선생님을 믿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말해야 할 것들을 전부 말하고 있지는 않으니(과거의-말해야 할- 문제의 관해 한 75% 정도만 말한 것 같다) 완벽히 신뢰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셈이지만 저때, 그러니까 치료 초기에는 이런 면이 훨씬 심해서 의사 선생님이 내 성장 과정, 하던 일, 공부한 과목, 부모님의 관계, 그들과 나의 관계 등을 물을 때 크게 거부감을 느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초기 브린텔릭스 부작용 때문에 많이 괴로웠음에도 의사 선생님이 매주 '1주일만 더 참아 봅시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이 양반은 내 말을 듣기는 하는 거야? 이 사람아! 내가 비둘기처럼 잠실새내에서 내려서 5분을 쉬어야 했다잖아!!'라는 울화도 조금 있었다. 솔직히 어쩔 때는 '그냥 약이나 줘요, 내 유년기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라는 생각도 했다. 난 지나간 상처들을 묻어놓고 다 극복했다고 행복한 착각이나 하면서 살고 싶은데 의사 양반이 자꾸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건 왜 그런 거였죠?'라고 캐묻는 것이 싫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그것들이 지나갔다는 거죠. 희망컨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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