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충전기가 고장 났던 시기

by 체리

나는 이번 주에 6개월 넘게 청소하지 않았던 화장용 브러시들을 싹 빨아 널어두었고, 오랜 기간 잠들어 있던 전자기기들을 차례대로 충전했다. 그런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면서 '그래, 나는 원래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못 버텨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충실감이 있었다.


요즘은 기분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내가 서둘러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갈 때, 그런 와중에 뿌듯하고 기분이 좋을 때. 아침 미세먼지가 그리 나쁘지 않아 창문을 열어도 괜찮을 때, 운동을 다시 시작해서 며칠 내내 하고 있는데도 그만두지 않고 있다는 점 등등. 다양한 지표들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쁘다. 이제 10일이나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찾고 있는데 몇 달 전부터는 늘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노래방에 들러 몇 곡씩 부르고 집에 온다. 그래서 병원 갈 땐 잔돈을 챙기는데 '오늘은 무슨 무슨 노래 불러야지' 생각하면 기분이 좀 좋다. 이것 역시 초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는 게 느껴진다. 가장 확실한 요소 중 하나는 내가 짜증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치료 초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짜증이고 뭐고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게 썩 괜찮다고까지도 생각했었다- 치료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여전히 감이 오지 않지만, 치료가 끝나면 전처럼 심상치 않은 허망감이나 우울감이 지속될 때 방치하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나한텐 필수적인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최근의 이야기이고, 다음 문단부터는 다시 치료 초기로 돌아가 보겠다!


나는 본디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다. 자주 보는 친구들이 몇 명 있고, 그 친구들 외에 뜸하게 보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사람 만나는 걸 꽤 좋아하지만 원래 에너지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 한정된 에너지를 현명하게 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스케줄을 짠다. 별로 티가 안 나서 내 입으로 내가 내성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는 나 자신이 내성적인 편이라고 생각한다. 내성적이고 내향적이라 혼자 뭔가 만들거나 쓰거나 그리거나 하면서 충전을 하는 편이다. 여러분이 읽고 있는 '해를 기다리는 아이' 도 그 일환이지만, 지금 겪는 우울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 이상으로 '뭐라도 꾸준히 해나가면 마음이 덜 수선스러울 것 같다'는 바람을 충족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겪는 우울함의 감정이 치료를 요한다는 걸 깨닫기도 훨씬 전부터 경험한 대인기피증은 평소의 '아, 나가기 싫다'는 감정과는 질적으로 많이 달랐다.

치료 초기에는 이런 고충이 있었다.

사소한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극심한 피로를 느꼈고, 하다못해 메시지 하나 답장하는데 이틀 넘게 소요된 적도 있다. 치료 초기에는 특히 낮 동안 느끼는 브린텔릭스 부작용 (메슥거림, 어지러움) 때문에 더욱 나가기 싫었는데 일찍 나가야 일찍 들어와서 쉴 수 있다 보니 약속을 저녁 무렵으로 잡기도 싫었다. 오랜만에 만나자고 한 사람들한테 '이번 주는 좀'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고 (사람들이 나를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것도 보통 이것 때문이다. 단순히 거절을 못하는 것뿐인데) 일단 약속을 잡고 나면 당일에는 나가기 싫어서 화장을 하다가 '아, 울고 싶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빨리 나가야 하니까 울지는 않았지만, 지금 울기 시작하면 오열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 화장 하니 생각났는데 치료를 시작하기 전-이지만 우울증은 심했던 시기-부터 몇 달 전까지는 화장을 거의 안 하고 다녔다. 요새 '다시 외모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점도 내가 우울증 치료 효과를 느낀 부분 중 하나다. 아무튼 계속 집에 있기보다는 억지로라도 나가서 일상에 이질적인 것들을 좀 섞는 편이 치료에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나 자신을 몰아세웠다. 도나도나도나에 나오는, 끌려가는 송아지처럼 겨우겨우 나가 사람들을 만났다.

내 안이 텅 빈 기분이 끔찍했다

당연히 다시 기분을 좋게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 말이다. 노래를 하고, 노래를 듣고,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요리를 하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 무엇이라도 좋으니 이것들 중 하나라도, 날 5분이라도 예전처럼 돌려주면 좋겠는데 생각했다. 그냥 백화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사람 치고는 꽤 간절한 바람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좋아해 마지않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뚝딱한 후에도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아무 감정이 없어서 '아, 내가 정말 아프긴 아프구나'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꼭 끌어안았는데도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이제 얘도 나를 구하지 못하는군'이라고 생각하면서 비참함을 느꼈다-이땐 아직 해외 생활 중이었다. 걔가 날 구해주길 바랄 게 아니라 병원에 갔어야 했다-. 기분 좋은 일들을 상상해도 그것들이 아무 의미 없는 영상들처럼 느껴지는 걸 보면서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평생 내가 감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사실은 고구마였다는 걸 깨닫는다면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어떤 상식도 통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모든 충전 방법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실패하면서 좌절감이 깊어졌다. 우울증이라는 걸 깨닫기도 전에는 '푹 자고 나면 낫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 후에는 '잠자는 동안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고. 그건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고 나니 자기 전에는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되었고, 에너지와 감정을 어느 정도 되찾은 요즘은 내일 할 일이나 내일 먹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내일이면 올 택배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이런 평범해 보이는 하루의 마무리를 되찾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다.


내가 치료를 시작한 계기가 '죽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건 이미 언급했다. 며칠 전 나는 집을 청소하기 위해 걸레를 빨고 있었는데, 그만 샤워기를 놓치는 바람에 물이 온 사방에 튀었다. 나는 옷이 젖었다고만 생각하고 욕을 했는데 뒤를 보니 문 밖에 있는 멀티탭에까지 물이 튄 게 아닌가. 나는 당장 플러그를 뽑았고 키친타월을 뜯어와 멀티탭을 닦으면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무교지만)라고 소리쳤다. 다음 순간 나는 지금 치료를 맡기고 있는 의사 선생님에 관한 (전보다는) 큰 신뢰가 솟는 것을 느꼈다. 현대 의학 만세다. 하루 종일 죽을 생각만 했던 사람이 살려줘서 고맙다고 외치게 만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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