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예스맨? 싱가포르에선 안 돼요

의견이 있어야 프로!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는!


한국 광고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클라이언트를 광고"주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광고 대행사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믿고 맡긴다기보다는, 광고주가 지시한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클라이언트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그런 문화라는 것).


더군다나 내가 한국에 있을 당시에는 주니어였기 때문에, 전문가로서의 내 소견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일 처리가 빠른 것이 중요했다. 내 업무 처리 속도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도 있었다.


나름 시니어로서 싱가포르에 왔을 때에도 그 자부심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솔직히 말해 일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것은 한국인이 최고다. 와다다다다, 하루에 메일 수십 통을 보내고 "역시 내가 영어는 달려도 업무량은 최고구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싱가포르에서 받은, 상상도 못 해 본 컴플레인


그러던 어느 날 클라이언트가 나에 대한 컴플레인을 했는데, 내 매니저에게만 보낸다는 것을 실수로 단체 채팅에 보내어 내가 그대로 보고 말았다. 그가 보낸 말, "Yubin never says no (유빈은 No를 안 해)".


물론 이렇게 심한 컴플레인은 아니었지만...^^; (Photo by Liza Summer)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요청 사항을 전부 다 해주었는데 이번에는 안된다는 말을 안 해서 문제라고?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마도 이 클라이언트와 내 한국 클라이언트들을 동일시해서 그랬던 것 같다.


속상했지만, 의외로 이 컴플레인은 나를 프로의 길로 이끄는 중요하고도 감사한 피드백이었다. 내 매니저 왈, "너는 전문가야, 유빈. 클라이언트가 뭔가를 요청했을 때 그게 캠페인의 성과에 해가 된다면 틀렸다고 할 수 있어야 해. 한국에서는 클라이언트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게 문화라는 건 나도 알겠지만, 여기선 달라. 여기 광고주들은 너의 전문성을 사는 거야."


그렇구나. 나는 더 이상 주니어도 아니고 한국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클라이언트도 내 매니저도, 내가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기대한다. 의견이 있어야 프로인 것이다.




No를 잘해보고 싶은 소심이

나는 언제쯤 진정한 프로가 되려나 (Photo by Tima Miroshnichenko)



물론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일한 세월이 5년이고 싱가포르는 3년 정도이니, 나를 뜯어고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더군다나 나는 소심이이기 때문에, 내가 반대 의견을 냈다가 클라이언트의 기분이 상할까 봐 아직도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공감하기: OOO 때문에 A를 선택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우려되는 사항 이야기하기: A로 진행하실 경우 XXX가 우려됩니다.

이유와 함께 다른 방향 제시하기: B를 추천드립니다. 이렇게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 어쨌건 전문가로서 리드하는 것이다. 당분간은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 방향이 없을지 강의도 듣고 어플도 몇 가지 사용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싱가포르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 오늘도 No를 연습해 본다.


keyword
이전 07화executive가 사원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