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만화 번역 2

뜻밖의 복병, 의성어·의태어

by 정시체

골프 만화를 번역할 때,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이 발목을 잡았다. 바로 의성어·의태어다. 장르가 스포츠다 보니 움직임이 크고 역동적이라 매 컷마다 의성어·의태어가 쏟아져 나왔다. 골프 클럽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클럽의 헤드가 공을 때리는 소리, 팔을 휘두르는 모양 등이 그림 옆에 짧은 단어로 표현되어 있었다.


나는 일본 만화를 즐겨 보는 편이었다. 일본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도 일본 만화를 좋아했기 때문이고, 고등학교 때 만화부였으며, 아예 대학을 만화과로 가려고 미대 입시를 준비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미처 몰랐다. 만화책에 이토록 의성어·의태어가 많이 나오는 줄은.


의성어·의태어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그림 속에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독자는 그곳에 글자가 있다고 의식하지 못한 채 대사를 읽는 김에 그냥 쓱 훑고 지나치기 일쑤다. 만화책 한 권을 꽤 공들여 읽는 편인 나도 의성어·의태어를 홀대하는 건 마찬가지였는데, 번역을 하는 입장이 되고서야 비로소 그 묵직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독자가 유심히 보는 부분이 아니더라도 책 속에 있는 이상 반드시 번역을 해야 한다. 그런데 초보 번역가 시절의 나는 일본의 의성어·의태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무슨 뜻인지 한눈에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사전을 찾아야 하는데, 일본 만화 속 의성어·의태어는 기본형을 바탕으로 다채롭게 변형되어 있어, 표기된 그대로 사전을 뒤져도 무슨 뜻인지 잘 찾아지지 않았다. 변형에 일정한 규칙은 없다. 작가에 따라 의성어·의태어에 알 수 없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꽤 있다. 이럴 때는 기본형을 유추하기가 힘들 때도 있다.


만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의성어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두근두근

- 기본: 도키도키 どきどき

- 활용: 도킷 どきっ, 돗키리 どきり, 도킨 どきん

- 변형: 도쿤 どくん 돗쿤 どっくん 돗돗 どっどっ
- 별종: 도도도도도도도돗 どどどどどどどっ(도는 무한대로 증식할 수 있음)


위와 같은 계열의 의성어는 번역할 때 거의 ‘두근두근’, 종종 ‘철렁’으로 처리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더 창의적인 번역을 떠올릴 수 없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가볍게 보는 만화책이라 해도 함부로 표준어를 변형해서 적지 않는다. 실제로 의성어·의태어가 난무하는 장면에서 하나를 조금 창의적으로 바꿨다가 웬만하면 표준어를 사용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표준어로만 표현할 수는 없다. 허용 범위 안에서 적당히 처리하면 될 것이다.


나는 한국 의성어·의태어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뜻인지 알고도 뭐라고 번역할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번역을 하려면 외국어뿐 아니라 모국어도 잘 구사해야 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때 알았다.


한국어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의성어·의태어가 없으면 정말 깊은 고민의 나락에 빠지고 만다. 예를 들어, 정식 사전에는 없지만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와키와키(わきわき)가 있다. ‘손가락을 벌려 허공을 움켜쥐는 듯한 동작’을 뜻하는데, 한국어에는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 없다. 만화 속 의태어에 주석을 달 수도 없고, ‘어떤 느낌의 모양’이라고 풀어서 쓸 수도 없다. 반드시 그림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한 단어를 찾아야만 한다. 맨 처음 이 단어를 마주하고 어찌나 고민을 했던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골프 만화를 번역할 때, 다른 건 다 번역하고도 번번이 의성어·의태어 몇 자 때문에 발목을 잡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몇 자 때문에 혼자 머리를 싸매고 있으니 바보가 된 것 같고 복장이 터졌다.


의성어·의태어는 학원이나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일본어를 공부할 때 그런 것들로만 따로 단어 목록을 만든 기억도 없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계속 배경의 효과음으로서 흘려보냈을 텐데, 만화 번역을 시작한 후로 나만의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골치를 썩였던 의성어·의태어에 더해 역시 골칫거리였던 부사, 복합 동사를 정리했다. 그 김에 번역하기 애매한 다른 표현들도 같이 정리했다. 적어도 번역가 초반 몇 년 동안은 그 ‘사전’을 화면에 같이 띄워 놓고 표제어를 갱신해 가며 번역했다. 그러느라 정작 중요한 번역이 지체된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번역이 막힐 때면 과거에 어떻게 번역했었는지 알 수 있어서 한동안은 꽤 든든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전’을 열지 않게 되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대충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채 폴더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그 문서를 모처럼 열어 보았다. 닮은꼴 단어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어쩐지 지금 봐도 새롭고 ‘이런 표현도 있었나’ 싶다. 아직 번역가로서 갈 길이 먼 모양이다.


컷 안팎에 기괴한 효과음이 난무하는 일본 만화를 볼 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것들을 한 자 한 자 한국어로 바꿀 번역가와 식자 편집자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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