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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정 Jan 05. 2020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레이먼드 커버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은 언젠가 배운 단편소설에서 갖추어야 할 플롯과는 조금은 먼 듯하다. 사건이 해결되는 마무리 부분을 읽다 보면 ‘음...? 그래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당치 않게 이런 단편이라면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 싶은 결심까지 뱃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결말을 독자들의 생각에 맡겨버리면 쓰는 사람의 부담이 일단 줄어들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들의 내면묘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읽는 동안 등장인물들의 심리까지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단편 소설이지만 읽는 에너지가 많이 소묘된다. 그럼에도 나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이 참 좋다. 읽는 이로 하여금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는 기분이 든다. 사건의 나열만으로도 그 안에서 공감하고 충분히 느낄 수 있음을 그의 겸손한 문장들을 통하여 전한다. 


<대성당>은 아내의 맹인 친구 로버트의 방문이 썩 탐탁스럽지 않았던 남편(화자)이 하룻밤을 함께 보내면서 겪는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한다. 로버트는 글을 읽고 쓸 수는 없지만 음성으로 메시지를 녹음하여 아내와 오랜 시간 연락을 주고받아왔다. 눈이 잘 보이지만 친구가 없는 화자보다 어찌 보면 깊고 성실하게 관계를 관리한다. 그는 평범한 다른 이들처럼 연애와 사랑도 하고 결혼도 했다. 암웨이를 하면서 생계도 유지하고 있고 멋진 수염을 기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로버트는 항상 무언가를 배우려는 사람이다.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든지 상관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 밤에도 내가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내겐 귀가 있으니까.


하지만 다큐멘터리 티브이에 나오는 대성당을 설명해주는 것에 화자는 어려움을 겪는다. 보이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충분치 않고 화자가 답답함을 느끼자 로버트의 뜻대로 그림을 통해 만져볼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 성당 주변의 사람들을 그리는 단계에서 로버트의 말대로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린다. 그가 느끼는 굉장한 느낌은 어떤 대상을 인지하는 것이 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만지고 느낄 수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기분이었을 것 같다. 


소설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알 수 없거나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간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떠한 감각이든 활용하여 그것을 알 수 있다. 로버트는 그런 방식으로 화자의 아내와 친구가 된 것이고 대성당을 함께 본 그날 밤 또 한 명의 친구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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