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한 마음으로 단단하게 살기

by 행부

학창 시절, 부모님께 자주 듣던 말이 있어요.

"우리 아들은 다 좋은데 근성이 부족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딱딱해졌어요.

몸에 기합이 들어가는 단어잖아요, ‘근성’.

그런데 그게 뭔진 정확히 모르겠더라고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힘’?

요즘 말로는 그릿(grit),

부모님께는 ‘헝그리 정신’이었겠죠.


근데 저는,

배가 덜 고팠던 것 같긴 해요.

뭐든 빨리 배우는 편이었고, 웬만큼은 잘했어요.

그래서 더 빨리 흥미를 잃었죠.

“이 정도면 됐지 뭐”

늘 그쯤에서 멈췄어요.


공부도, 일도 그랬죠.

밤새 해본 적이 없거든요.

새벽 2-3시면 자야 했어요.


그러면서도 겉으론 독종으로 보이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우리 아들 근성 있어!” 해주시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더 애썼던 것 같아요. 그놈의 인정 때문에..

더 이상 부모님 인정이 필요 없을 때도

무의식은 더 많은 인정이 필요하다고 속삭였어요.


괜찮은 직장에 취업했지만

불현듯 퇴사하고 사업을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을 거예요.

내가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그러다 보니 진짜 내 모습은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위해 희생했죠.

마음이 점점 딱딱해지는 것도 모른 채...

결국 재정도 정신도 바닥까지 가라앉다가 파산했어요.

그땐 정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죠.


근데 신기한 게요,

끝에 다다르니까 비로소 시작이 보이더라고요.

그전까진 사람 탓, 환경 탓만 했어요.

그러다 뒤가 막힌 절벽에 서보니,

다 핑계였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아, 내가 날 몰랐구나. 절벽으로 민 건 나였구나.”

그제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어요.

그러다 알게 됐죠.

나는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마음을 오래 품는 사람이란걸요.


저는 이걸 ‘말랑한 근성’이라고 불러요.

바람을 버티다 부러지기보단

휘고 흔들리며 자리를 지키는 힘이요.

겉으론 보이지 않지만

아래로 조용히 뿌리내리는 단단함.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명상하고, 달리면서

조금씩 뿌리가 깊어지고 있어요.

이를 악물고 견디기보단,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걷는 법도 배우고요.


이젠 야망 있게 무언가를 붙잡진 않아요.

대신 마음에 드는 걸 가볍게 쥐고 오래 바라보려고 해요.

불꽃놀이 같은 성취는 없지만,

은은한 등불처럼 나를 밝히는 성취를 맛보면서요.


그 성취들이 쌓이면서 믿음이 생겼어요.

여전히 실수와 실패로 흔들리지만

나는 나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

언제든 다시, 말랑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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