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 문장을 다시 읽게 됐어요.
“매일 새로운 소식을 들으러 마을에 가는 사람은
오랫동안 자신에게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소로우가 한 말인데요.
예전에 읽었을 땐 멋있다, 고개를 끄덕였는데…
지금은 좀 다르게 느껴져요.
사실, 저도 매일 마을에 다녀오는 사람이거든요. 스마트폰으로요.
뉴스 보고, 유튜브 보고, 남이 뭘 했는지, 어디 갔는지, 누굴 만났는지—
늘 마을 광장에 앉아 있는 셈이죠.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닌 것 같고
여럿 속에 있지만 함께 있는 건 아닌 것 같은 느낌.
소로우는 그걸 알았던 거예요.
‘혼자’가 고독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요.
월든 호숫가에 혼자 살았지만
매일 마을에 나갔대요. 3킬로미터씩 걸어서.
그리고 누가 찾아오면 반갑게 맞았다고 해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거지
고립되라는 건 아니었던거죠.
저도 그런 날이 있어요.
조용히 있고 싶어서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해봤는데,
오히려 머릿속이 더 시끄러운 날.
이 생각, 저 생각, 지나간 일, 다가올 일까지
줄줄이 소환돼서 견디기 힘든 날.
조용한데 시끄럽고
혼자있고 싶은데 혼자 있을 수 없는 기분이 드는 날이요.
그럴 땐, 슬쩍 나가보기도 해요.
혹시 나처럼 혼자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요.
근데 있더라고요.
땀흘리며 달리는 사람,
말 없이 하늘만 올려다보는 사람.
구겨진 휴지처럼 귀여운 말티즈와 걷는 사람.
모두 자기만의 고요 속에 있지만
서로를 스치며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채는.
그 정도면 충분했어요.
그리고 알게됐죠.
고독이라는 건, 피하는 게 아니라
잘 만나는 거구나.
때로는 혼자 있는 나를
서로의 고요함이 지켜줄 수도 있구나 하는 걸요.
그러니까 꼭 숲속 오두막에 들어가야만
자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TV 끄고, 폰 덮고,
잠깐이라도 멈추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자기 안의 목소리가 슬며시 말을 걸어요.
'오늘은 왜 이래, 괜찮아?' 하고요.
물론 그 목소리가 항상 친절하진 않아요.
때론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어머니 같기도 하고,
가끔은 그저 묵묵히 같이 있어주는 친구 같기도 해요.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목소리를 외면하면
정작 마을에서 들리는 이야기들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
작은 종이배를 하나 띄어요.
제 안의 목소리를 글로 적은 종이배가
당신 마음 어딘가에 닿기를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