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기다리는 이유는 하나예요.
소소한 일탈 때문에.
평일엔 간식을 전혀 안 먹거든요.
오직 토요일 오전에만, 나 자신에게 간식을 허락하노니
그건 바로 집 앞 빵집에서 파는 버터프레첼이에요.
그 집은 스콘이나 깜빠뉴로 유명하지만,
저한텐 짭짤하고 고소한 버터프레첼이 최고거든요.
그렇게 3,800원짜리 빵을 하나 들고,
바로 옆에 있는 핸드드립 카페로 가요.
그리고 4,500원짜리 에티오피아 코케허니 한 잔을 주문하죠.
당연히 아이스로요. 얼음 많이.
짭짤 고소한 빵 한입에,
쌉쌀하고 달달한 커피 한 모금.
이 조합을 위해 쓰는 8,300원이면,
주말이 참 괜찮아져요.
그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요.
버터프레첼을 오물오물 씹으며 생각해봤어요.
왜 예전엔 이런 만족감을 몰랐을까.
‘이 정도면 됐다’는 감정.
그걸 몰라서였던 것 같아요.
몇 년 전만 해도,
뭐든 계속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버는 돈도, 집 평수도, 타는 차도.
늘 다음 단계가 있었고,
만족은 늘 ‘다음에’ 있었어요.
남과 비교하며 만족을 멀리 했죠.
자본주의 림보게임 같은 걸 하고 있던 거예요.
누가 얼마를 벌었네, 뭘 샀네, 어디 다녀왔네.
그런 얘기들이 점점 나를 압박하고,
그 허들바에 맞추려고 낑낑대다가 자빠지는 엔딩.
그러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내가 도전하고 싶은 높이에 바를 두는 건 괜찮지만,
남이 올려놓은 기준에 나를 구겨넣는 건 그만하자고 생각한거죠.
그때부터 ‘만족’이라는 나름의 기준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핸드드립 커피는 4,500원이면 충분하고,
서울에선 대중교통이면 충분하고,
옷은 단정하고 편하면 충분하고요.
기준을 딱 정하니까,
더 갖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줄어들더라고요.
그리고 그 기준들이
이제는 내 삶의 적정 온도를 딱 맞게 맞춰주고 있어요.
어제는 오랜만에 패션 커뮤니티에 들어가봤는데,
이런 글이 많더라고요.
얼마 있어야 부자인가요,
다들 얼마 모았나요, 뭐 이런 글들.
왜 패션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오나 싶었는데
댓글은 더 의아했어요.
20억, 50억, 100억…
“아는 형이 그렇다더라”,
“선배가 그렇게 산다더라”,
“부모님 친구가 그렇게 투자했대요.”
전부 남 얘기뿐이더라고요.
자기 목소리가 사라진 그 많은 말 속에서
예전 제 모습도 보였어요.
근데 이제는 알아요.
그 질문은 남한테 할 게 아니라,
나한테 해야 한다는 걸요.
“나는 어느 정도면 충분하지?”
이 질문이
내 삶의 적정 온도를 찾아준다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