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중립 기어가 필요할 때

by 행부

“자자..잠깐! 잠깐!”


아버지가 조수석에서 소리치셨어요.

운전 배우던 첫날이었거든요.

신호가 바뀌고, 액셀을 밟았는데 시동이 꺼졌어요.

다시 켰는데 또 꺼지고, 뒤에서는 빵빵.

세상이 다 나한테 들이대는 것 같았어요.


“중립! 기어를 중립에 놔야지!”

아버지 말에 얼른 기어를 옮겼더니

다행히 시동이 걸렸어요.

그때 처음 알았죠.

기어 중립이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마음도 그럴 때가 있어요.

있는 그대로 잠깐 멈춰서, 중립에 놓아야 할 때요.

전진이든 후진이든, 방향을 바꾸려면 일단 중립이 먼저거든요.


근데 욕심은 언제나 직진만 좋아해요.

서두르고, 더 빨리 가고 싶어 하죠.

그래서 탈이 나요.

몸이 삐걱대거나, 마음이 틀어지거나, 관계가 어긋나거나.


몇 년 전, 사업이 잘 안 되던 시기가 있었어요.

매출은 곤두박질치지, 통장잔고는 바닥났지,

저는 그 상황을 돌파하겠다며 더 악착같이 달렸어요.

“더 열심히 해야 돼!”

그게 정답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디자인도, 홍보도, CS도, 배송도.

뭐든 제 손으로 하겠다고 했죠.

결과요? 더 안 좋았어요.

몸은 탈이 나고, 멘탈은 날마다 깎여나가고,

매출은 더 떨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 퇴근길.

골목길 매장들 조명은 다 꺼져있고, 가로등만 꿈뻑거리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그 고요함이 저한텐 처음으로 브레이크였던 것 같아요.


다음날부터 일주일 동안은 그냥 멈췄어요.

일도, 연락도, 계획도.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리고 그 시간이 중립 기어였다는 걸

한참 지나서야 알았죠.


‘나는 무엇에 쫓기고 있었을까.

뭘 붙잡으려 했던 걸까.’


다시 천천히,

‘내가 잘하는 일’만 남기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기꺼이 넘겼어요.


그랬더니 신기하게 일이 풀리기 시작했어요.

일도, 마음도, 속도도.

모두 내 템포를 찾기 시작했죠.


요즘은 일이 막히거나

관계가 서먹해질 때마다 이 말을 해요.

“중립 기어 넣을 시간이네.”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해요.

가만히 앉아서 숨 쉬고,

발가락부터 머리끝까지 긴장을 풀고,

고양이처럼 소파에 몸을 툭 던져요.


그렇게 중립에 머물다 보면,

다시 움직이고 싶은 방향이 자연스레 보여요.

‘전진이든 후진이든, 이젠 준비됐어.’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무언가를 하려는 마음이 앞서기 전에

잠깐 멈춰 나를 바라보는 일.


그게 바로 요즘 제가 자주 쓰는 기술이에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변해야 한다는 강박도, 나아져야 한다는 조급함도 잠시 내려놓고요.


마음의 기어를 중립에 두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숨 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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