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이었어요. 창업자금을 투자받겠다며 발표장을 전전하던 시절이었죠.
서류 심사는 곧잘 통과됐어요. 그런데 막상 발표에서는 번번이 떨어지더라고요. 처음엔 그저 운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세 번, 네 번 연달아 떨어지면서 심히 의심이 됐어요.
"내가 문제구나."
투자자들 앞에서 너무 위축됐나, 예상치 못한 질문에 횡설수설했나, 아니면 영 못 미더워 보였나... 자꾸 부족한 것만 떠오르더라고요. 마치 옷가게에서 사이즈가 안 맞는다고 내 몸을 탓하듯이요. '역시 사업가 체질은 아닌 건가...' 속삭이는 마음의 소리가 나를 점점 작아지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또 한 번 떨어진 후, 심사역 중 한 명이 따로 보자고 하더라고요.
'아니, 떨어뜨렸으면 됐지, 나를 두 번 죽이려고 그러네…’
그런데 예상과 달랐어요.
"사실 대표님이 마음에 들어요."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었죠. 그는 저와 우리 팀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니, 뜬금없는 제안을 했어요. 지금 하려는 아이템 말고, 자기가 구상하는 다른 아이디어를 맡아해 보면 어떻겠냐고요. 다만 팀에서 저 혼자만 나오라는 조건을 달았어요. 그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쓱 떠올랐어요. 제안은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항상 거절만 당하다가 거절을 해보니 묘한 쾌감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뭔가 스위치가 켜지는 느낌이었어요. '아, 문제는 내가 아니었구나!'
그때 깨달았어요. 문제는 내가 아니었던 거예요. 단지 우리가 하려는 '그 일'이 그들의 기준에 맞지 않았던 거죠. 거절은 '출입금지' 팻말이 아니라 '다음 차를 타세요'라는 안내판이었어요.
그 뒤로는 발표할 때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내가 부족해서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 대신, "우리 아이디어와 맞는 투자자를 찾는 중이야”라는 마음으로 했거든요. 같은 발표인데도 자세가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결국 몇 달 뒤, 투자받는 데 성공했어요.
돌아보면, 세상의 모든 '노'를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거절당하면 그게 곧 내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거라 여기면서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퍼즐 조각이 안 맞는다고 조각 자체가 불량품은 아니잖아요. 요리조리 돌려가며 다른 자리에 갖다 대보면 꼭 맞는 곳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 경험 이후로 거절에 대한 해석이 바뀌었어요. 더 이상 거절은 "너는 안 돼"라는 의미가 아닌, "아직 때가 아냐" 아니면 "더 좋은 곳이 기다리고 있어"라는 신호라고요.
지금도 가끔 거절당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면 그날의 심사역을 떠올려요.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