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산책 나갔다가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어요.
골든리트리버였는데, 주인이 급하게 어디로 가려는 눈치더라고요. 줄을 잡아당기면서 “빨리 가자!” 하는데,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로수마다 코를 박고 킁킁거렸어요.
처음엔 웃기더라고요. ‘아직 어린가? 호기심이 많네.’ 그런데 가만 보니까 진지한 거예요. 마치 가로수 소믈리에처럼 한 그루 당 최소 1분씩은 흡흡하다가 킁! 하고 고개를 들어요. ‘이 나무는 합격!’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의 제가 떠올랐어요.
“아니, 불러도 아는 체도 않고 그렇게 가요?” 같이 일하던 동료가 어느 날 그러더라고요. 저는 진짜 못 본 거거든요. 늘 가던 출근길이라 그냥 자동 항법 모드로 걸었어요. 눈은 스마트폰에 두고, 다리는 알아서 가고. 그러니 주변에 뭐가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랐던 거죠.
흔히 말하잖아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근데 그날 리트리버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속도도 방향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그건 바로 ‘지금’이라고.
강아지는 목적지에는 관심도 없었을 거예요. 그냥 지금 이 냄새가 궁금하니까 맡아보는 거죠. 주인이 아무리 재촉해도 자기 시간이 끝날 때까지 꼼짝 안 하면서요.
저는 늘 반대였어요. ‘이 일 끝나면 저 일해야지’, ‘이것만 하면 편해질 거야.’ 늘 다음에 끌려다니듯 살았거든요. 그런데 계속 다음만 보다 보면, 정작 인생은 언제 사는 걸까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걸을 때 스마트폰은 꺼내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주변을 둘러봤죠. 매일 다니던 길인데, 처음 보는 게 그렇게 많을 줄이야! 아스팔트 틈바구니에 핀 민들레, 카페 창문에 붙은 삐뚤빼뚤한 손글씨 메뉴판, 서로 어깨에 기대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노부부까지. 다 내 눈앞에 있었는데 제가 그냥 지나쳤던 거예요.
명상도 그렇게 시작했어요. 처음엔 ‘마음의 평안을 얻어야지’라는 목적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저 지금 숨 쉬고 있다는 것,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느껴보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가끔 이렇게 되뇌어요.
‘개가 되자. 나는 개야.’
조금 웃기죠? 근데 효과 있어요. 뭔가에 쫓기는 느낌이 들면, 그냥 눈 감고 지금 이 공기, 냄새, 소리를 느껴봐요. 그날 산책길에서 만난 리트리버처럼요.
지금은 카페에서 창밖을 보고 있어요. 까치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고개를 주억거리며 털을 고르고 있어요.
몇 초 멈춰 있다가, 날개를 두어 번 퍼덕이고, 다시 가만히 있어요. 급할 것도, 다음도 없이 지금 이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