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에 묶여 사는 우리들

by 행부

나도 모르게 자꾸 들여다보는 게 있어요.

남의 삶이요. 정확히는, 남이 올린 ‘삶의 하이라이트’죠.


SNS 속 사람들은 늘 멋지고, 늘 사랑받고, 늘 뭔가 잘 풀리는 것처럼 보여요. 문제는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거예요. 꼭 나와 비교하거든요.


그래서 이제 고백합니다.

사실 사업을 시작한 건 인정받고 싶어서였다고, 돈 많이 벌어서 잘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요.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얼굴도 모르는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요. 그래야 내 존재가 증명된다고 믿었거든요. 내 존재를 증명해야 가치 있는 삶이라 여겼고요.


패션 쪽 사업을 택한 것도 어쩌면 당연했을지 몰라요. 패션만큼 인정욕구를 자극하는 산업도 드물잖아요. 그 욕구를 키우기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만큼 좋은 무대도 없었고요.


그래서 열심히 인스타그램을 했어요. 좋아요 개수에 따라 오르내리는 기분, 댓글 알림이 없으면 푹 가라앉는 마음을 붙잡으면서요. 예전엔 이런 걸 연예인 얘기라고만 생각했어요. 관심을 먹고사는 삶, 인정이라는 연료 없이는 못 가는 삶 같은 것들. 그런데 어느새 그게 내 얘기가 되고, 우리 얘기가 되어버린 거예요. 모두가 연예인처럼 사는 시대. 조명 없이도 스스로를 비추고, 관객과 박수를 기대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이 사진, 반응 좋을까?”

“이 글은 너무 오글거리나?”

“팔로워가 줄었네?”


이런 사소한 질문이 하루를 좌지우지해요. 그러다 조금씩 진짜 나 대신 잘 찍힌 나, 보정된 나를 올리기 시작하고요. 그게 쌓이다 보면 나는 누구인지, 왜 이렇게 사는 게 버거운지 혼란스러워져요.


장국영도 그랬지 싶어요. 내가 가장 좋아했던 스타. 소년 같은 얼굴에 슬픔이 비치는 눈빛을 가진 배우. 무대 위에서는 빛났지만, 마음은 어두웠던 사람. 그의 삶을 태운 건 무대 조명이 아니라 내면의 불, 인정욕구 아니었을까요. 저스틴 비버도 그래요. 세상 모두가 그를 알고 사랑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잃어가며 기행을 벌였죠. 너무 일찍, 너무 많은 시선을 받은 사람들. 준비가 안 된 채 활활 타올라버린 마음들.


그런데 우리도 그 불씨를 손바닥만 한 6.2인치 화면 속에서 매일 키우고 있어요. ‘좋아요’라는 성냥과 팔로워라는 장작으로. 누가 더 많이, 누가 더 반짝이는지 경쟁하면서요.


그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쓱, 슬퍼졌어요. 연결이라는 말로 포장된 고립, 자기표현이라는 말 뒤에 숨은 끝없는 비교. 우리, 진짜 연결된 게 맞을까요? 아니면 각자 자기만 비추는 조명 아래 서 있는 걸까요?


요즘은 좋아요보다 더 좋은 게 있어요. ‘괜찮아’라는 말이요. 누가 봐주지 않아도, 내가 나한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그게 내 삶을 빛내는 진짜 인정이더라고요.


어젯밤엔 휴대폰을 끄고 산책을 나갔어요. 성큼 다가온 선선한 가을바람이 뺨을 훑고 가로수 잎을 흔들었어요. 시선을 따라가 보니 길가에 걷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누구도 서로를 보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달빛만 조용히 어깨에 걸쳐있었죠. 좋아요도, 팔로워도 없었지만 마음은 환했어요. 화려함 없이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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