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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Nov 22. 2024

니체 말고 나체

아 놔 체하겠네요.

'부동산 투자 공부를 하다 만난 사람인데 사람 반듯하더라구. 그리고 되게 재밌어'

'유머러스한 분인가보네. 그래서 부동산 투자는 성공했대?'

'집은 한 채 샀나봐. 일단 만나봐'


누굴 만나도 이제 별 기대가 없다. 재밌는 사람이라고 하니 나 혼자 토크 박스를 굴릴 일은 없겠다 싶어서 만나보겠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고 하셨죠, 뭐 가르치세요?'

'윤리 가르쳐요.'

'우와 윤리적이세요? 저는 윤리 진짜 싫어하는데. 수업시간에 어떤거 가르쳐요? 파란 불에 횡단보도 건너라?'

'음 소크라테스 니체 이런 학자들 있잖아요,'

'니체요? 저 나체는 아는데. 하하하하하'


?????


만난지 1분만에 드립을 친다. 섹드립. 신박하다.


윤리교사가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듣기 싫은 말 1순위 2순위를 한번에 말한다.


1위 윤리적인가봐요.

2위 저는 윤리 싫어해요.


그리고 금방 새로운 문장을 추가해줬다. '니체 말고 나체는 알아요'


어렸을 때 나체로 집 밖에 꽤나 쫓겨났을 것 같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흥분해있나. 긴장해서 그런가 아님 진심인건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건가 니체가 이런 드립을 들으면 뭐라고 하려나 망치를 든 철학자니까 망치들고 쫓아오려나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에서 이 순간은 좀 삭제했으면 하는데. 짜라투스투라는 뭐라고 말했더라. 가치를 전복하는 인간이라고 차라리 좋아하려나 이 말을 듣고 짜증이 난 나의 도덕은 노예도덕인가 나는 낙타로 살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하는걸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가


나체라는 단어에 뇌가 잠시 정지했다가 뭐라 대답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는데도 할 말이 없어 그를 빤히 쳐다 봤다. 그가 질문을 이어간다.


'고양이 키우시나봐요. 사진 귀엽더라구요.'

'네 두 마리가 성격이 달라서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가요.'

'고양이도 성격이 다 다른가보네요. 혹시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

'이것 저것 다 좋아해요. 냉면이랑 떡볶이랑 곱창도 좋아하구요.'

'곱창이요? 고양이 곱창? ㅋㅋㅋㅋ'


???


개구리 반찬을 말하고 싶었던건가? 죽었니 살았니?

후. 분위기도, 내 기분도, 소개팅 주선자도 다 죽었다.


나의 소개팅 철칙은 '싸우지 말자'이다. 두 번 다시 볼 것도 아닌데 굳이 나쁘게 헤어질 것 없다. 주선자의 면을 생각해서 밥을 다 먹을 때까지만 참아보기로 한다.


'이번에 영끌해서 집 샀거든요. 실거주 한 채는 꼭 있어야 해요.'

'똑똑한 한 채를 가지는게 중요하다면서요.'

'오 잘 아시네요. 그래서 여러군데 임장 다녀보고 큰 맘 먹고 샀어요. 그리고 인테리어 싹 하고 안에 가전도 다 채웠구요.'

'뿌듯하셨겠네요. 저도 최근에 언니한테 쓰던 가전이랑 가구들 받았는데 세탁기랑 침대 큰거 들어오니까 정말 편하더라구요.'


'큰 침대라구요? 저도 한번 거기에 누워보고 싶네요.'




물이라도 끼얹을걸 그랬나? 저런 말을 들으면 모두 내 탓 같다. 괜히 니체를 말해서, 괜히 침대를 언급해서 모욕을 당한것 아닌가. 뇌꼬남(뇌가 꼬추에 있는 남자)을 이렇게 직접 보다니. 기묘하고 진귀한 경험이다.


더러워진 나의 귀를 흐르는 물에 박박 씻어야겠다. 이런게 재밌는 인간이라 하는 주선자의 유머수준까지 고려하게 된다.


뇌꼬남이 문자를 보낸다.

'잘 들어가셨어요? 또 뵙고 싶어요. 언제 시간 되시나요?'


뭐라 타자를 치고 싶지도 않아 메모장에 저장해 놓은 거절 멘트를 복사해서 붙여넣는다.


'잘 들어왔습니다. 저랑 코드가 안 맞으셔서 만남은 여기까지 했으면 합니다.'


답장이 온다.


'코드가 어디가 안맞을까요? 오늘 제 행동에 문제가 있었나요? 제가 코드 가인씨 코드 잘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다음 주에 만나요. 이번에는 잘 할 수 있습니다'


과하다 과해. 이제 그만.




'성인'의 대화를 바란게 이런건 아니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다.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라고 니체가 말했다지.


운명을 사랑하기 힘든 오늘이다.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나 들으며 자야겠다.

산다는게 다 그런거지 누구나 빈손으로와
소설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 하지마 모든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인생이란 붓을 들고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말해뭐해 쏜 화살처럼 사랑도 지나 갔지만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펐던 행복이여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 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번의 인생아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대로 가면 돼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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