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직장인, 그리고 커피
아마도 6,7년 전쯤의 일이다.
내가 사는 이곳에 큰 폭풍이 왔었다. 비도 오지 않으면서 바람만 미친 듯이 부는 그런 날씨였다. 120만 가까운 사람들이 사는 이 도시에 반 이상이 전기가 없이 사는 상황이 벌어졌다. 냉장고 없이는 딱히 뭐를 만들어 먹기도 장을 보기도 힘들었다. 다행히도 많이 춥지 않은 겨울날이었기에 주말 아침 먹을 곳을 찾아 길을 나섰다. 운 좋게 영업을 하고 있는 도넛 가게를 찾게 되었고. 거기에는 거의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바로 앞에 서있던 한 아주머니가 말을 했다. 도넛도 필요 없고 샌드위치도 필요 없고 그냥 커피 한잔만 먹으면 된다고. 끼니는 거를 수 있어도 커피는 거를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담긴 한마디였다. 지금은 나도 그렇다. 확고하게 아침은 굶을 수 있지만 커피가 필요하다. 차는 안된다. 커피다... 뭔가 다른 액체는 채워주지 못하는 그런 것. 그렇다 그냥 중독일 것이다. 부정하지 않는다. 두 모금만 먹어도 마술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그 묘약...
아침의 커피......
이렇게 본의 아니게 커져버린 커피의 의미가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더욱 커진 듯하다.
그것은 단순히 카페인 섭취를 넘어선 소셜라이징의 중요한 매개체이다. 보스와 부하직원의 좀 더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는 미국에서, (적어도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커피타임은 좀 더 사적이고 편안한 대화를 하는데 도움을 준다. 미국인들이 겉으로든 진심으로든 대체적으로 친절하지만, 개인 간의 좀 더 가까운 관계를 위해서는 수십 장의 얇은 벽들을 뚫고 가까워져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부분은 다음에 더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오분에서 십분 남짓의 시간은, 동료들과 상사와 혹은 다른 팀의 사람들과 쉽게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욕심 부리지 말자. 그냥 어렸을 때 학기초, 처음 보는 반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리듯이 이야기하자. 즐거운 직장 생활을 위해서는 친구가 필요한 거니까.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그 시간과 순간을 그렇게 이해하고 사용한다. 친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아마도 처음부터 잘 보이겠다는 생각으로 사용한다면 바로 거부당할지도 모른다. 그냥 친구를 사귄다는 생각으로 사용하고 있다. 회사에서라면 더욱 쉽다. 공짜 커피이니까 모두에게 부담도 없다.
오늘도 출근하면, 옆자리 동료에게 인사와 함께 묻는다. 마술 같은 그 한마디... coff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