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 홍당무(2018)> 리뷰 (이경미 감독, 공효진 주연)
<미쓰 홍당무>의 주인공인 양미숙은 아무래도 너무 불편하다. 관객으로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그의 이야기를 좀 진득하게 들어보려고 해도 여간 참을성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는 도대체 왜 이렇게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걸까. 미숙은 도대체 자신의 감정을 숨길 줄을 모른다. 안면홍조증 역시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그의 감정이 급기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발현된 것인 듯하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때로는 적당히 참고 견딜 줄도 알아야 되는데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양미숙은 그야말로 ‘미숙’한 존재이다. 사회적 질서에 편입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존재.
그런데 미숙은 꼭 능숙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걸까? ‘양’처럼 순진하고 좀 ‘미숙’하면 어때. 어차피 피차 ‘미숙’한 마당에! 커튼을 열면 벽이 나오는 답답한 인생에서 미숙이 뭘 그렇게까지 잘못했다고 다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걸까. 아무도 미숙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간단히 손가락질만 한다. 생판 남인 관객도 어떻게든 미숙을 이해해보려고 러닝타임 내내 애를 쓰는데 아무도, 심지어 그렇게 오랫동안 미숙의 이야기를 들어온 피부과 전문의 ‘박찬욱’ 조차도 미숙을 이해하려 시도하지 않는다.
미숙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 설령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그저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은 방은진이 연기한 성은교, 단 한 사람뿐이다. 그는 처음으로 미숙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그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의 말은 당황스러울 만큼 명쾌하다. “사람이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양양도 사람인데” 사실 애초에 서 선생이 한 번만 진지하게 미숙의 얘기를 들어줬어도 일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지도 모른다. 문제의 수학여행 날, 그야말로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미숙에게 왜 그런 거니, 무슨 일 있니, 어떻게 된 거니, 한 번만 제대로 물어봐 줬어도 아니, 묻진 않았더라도 저런 행동을 할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걱정해줬더라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서종철은 라디오 월드뮤직 방송 DJ를 할 때처럼 오로지 일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만 할 줄 안다. 조금만 상황이 불리하거나 불편하면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자리를 피하고 아니면 아예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양양이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 소위 삽질을 하는 이유도 아주 명확하다. 아무도 미숙에게 말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독심술사도 아닌데 말을 안 해주면 미숙이 어떻게 아나! “연애를 하면 연애를 한다 끝났으면 끝났다 왜 말을 안 해” 이 모든 일은 그러니까 절대 미숙이 혼자 이상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미숙은 이름 그대로 그저 미숙할 뿐이다. 문제는 모든 의사소통 구조가 어긋나 있다는 것에 있다. 영어회화 시간에 배우는 의미 없는 대화 구조들처럼 등장인물들의 대화 구조는 도무지 짝이 맞질 않는다. 누구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모두 솔직해질 때 인물들은 비로소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해진다. 서로 등을 기대 의지하고 몇 번씩이나 “그래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미숙과 종희처럼. 또 어쩌면 진정한 사랑을 찾았을지 모르는 유리처럼. 이 모든 일을 겪은 미숙, 종희, 그리고 유리가 부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살면서 여러 번 이 영화를 다시 볼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