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과 <스타 이즈 본(2018)>(브래들리 쿠퍼 감독)
‘우리는 왜 사랑하면서도 불안해하는가’ 나희덕 시인은 ‘사랑’과 ‘불안’이라는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 역시 한 때는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뿌리에게)’까지 내어주는 희생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무턱대고 희생하는 사랑은 진정 상대를 위하는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남을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럴 때의 희생은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를 고갈시키는 가학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정말 사적인 이야기도 꺼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텅 빈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일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애써 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얕은 곳(shallow)에 부유하는 허울들, 진짜 나의 이야기에서 떨어져 나간 부스러기들, 각질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진짜 나의 이야기는 검은 물 밑 무의식 속에 가라앉은 채 사라져 가는 숨을 애써 부여잡고 있다.
나희덕 시인은 그의 시(詩) <사랑>에서 ‘상처 입은 짐승’을 마주한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눈 속에 숨어 있던 덫을 밟을 때 시인의 무의식에서 튀어나왔던 피 흘리는 검은 짐승은 시인의 그림자이다. ‘상처 입은 짐승’과도 같은 무의식 속 자아를 마주하면 바닥에 툭 떨어져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앨리가 노래하듯 우리는 절대 ‘바닥’에 닿지 않을 것이다(we’ll never meet the ground). 사실 우리의 자아는 이미 상처 받은 채 바닥에 가라앉고 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바닥에 닿지 않을 절호의 기회이다. 앨리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정말 행복한가?(Are we happy in this modern world?) 우리가 정말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What are we really searching for?) 레이디 가가라는 스타 텍스트를 십분 아니, 백분 천분 활용한 앨리의 음악이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애써 피하고 있는 ‘진짜 이야기’
나희덕 시인의 신간 ‘파일명 서정시’의 시인의 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빨과 발톱이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내 안에서도 이빨과 발톱을 지닌 말들이 돋아났다//이 피 흘리는 말들을 어찌할 것인가//시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시인이 된 지 삼십 년 만에야 이 고백을 하게 된다.” 내 안에서 피 흘리고 있는 검은 짐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피 흘리는 말들의 언어는 시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시’는 정주하고 머무를 수 있게 하는 ‘닻’이며, 모든 것을 버리고 타인의 자리로 이동하는 진정한 ‘소통’과 ‘사랑’을 할 수 있게 하는 ‘돛’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상처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우리가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때이다. 그러나 바로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상처를 치료하고 진정으로 나를, 그리고 남을 사랑할 수 있다. 내 안에 숨은 상처 입은 짐승을 튀어 오르게 만드는 ‘시’는 그러므로 ‘덫’이다. 시인의 입을 빌려 나도 함께 이 고백을 읊조리게 된다. “영화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