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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루무비 Jan 07. 2019

우리의 사랑은 '풀잎들'을 닮았다

<풀잎들(2018)> 리뷰 (홍상수 감독, 김민희 주연)

  <풀잎들>의 인물들은 저마다 한두 번씩 풀잎들을 내려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굳이 추측해보자면 ‘너희들은 좋겠다.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서’ 따위의 것이 아니었을까. 다만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그들 모두 각각의 풀잎을 ‘풀잎들’로 묶어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왜 개별적 풀은 하나로 묶여 ‘풀잎들’이 되어야만 했을까. 한 화분에 심어져 있기 때문에? 모양이 닮았기 때문에? 사실 각각의 풀은 우연히 다른 풀 옆에서 싹을 틔웠을 뿐이다. 어쩌면 화분 속 풀들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일지도, 또는 둘씩, 셋씩만 아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객관적 시선에서 볼 때 그런 관계성은 명확하지 않다. 그저 다른 풀들과 관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일 뿐이다.  


  이 점에서 <풀잎들>의 인물들은 ‘풀잎들’과 닮았다. 모두가 자기 옆의 누군가와 관계 맺길 간절히 원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발짝도 상대에게 다가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가만히 흔들리기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끝까지 상대를 알지 못한다. 경수(정진영 분)는 아름(김민희 분)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척 하지만 실은 그는 자신이 배우이며,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는 사실 뒤에 숨어 진정한 관계 맺기를 피한다. 경수가 원하는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 아름은 ‘비범’ 해야 하고 ‘작가’ 여야 한다. 그래야 둘은 사회적 주체 간의 표면적 관계 맺기에 성공하고 진정한 소통으로부터 올 수 있는 위험이나 상처로부터는 충분히 멀어질 수 있다.


  ‘소통’은 나를 완전히 버리고 상대의 자리로 건너가는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겨우 안전하게 뿌리내린 내 자리를 벗어나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타자의 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용기가 <풀잎들>의 인물들에게는 아직 없다. 누구도 스스로가 나약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외로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는다. 이들은 풀잎들만큼이나 너무도 연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밉지만은 않은 것은 그들이 어설프게나마 사랑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자의 질서로 횡단하는 모험을 감수하지 않고 각자의 말만 되풀이하는 인물들은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기 자리에 단단히 뿌리박고 스스로를 소외시키면서도 가을밤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고독함에 몸부림치는, 정말이지 너무도 연약한 우리의 사랑은 그러므로 ‘풀잎들’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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