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는 꽤 멀쩡해 보입니다.
나름 무탈했고, 조용했고,
고비라고 할만한 큰 문제도 없었어요.
출근하고, 돈 벌고, 여유있는 선에서 적당히 쉬고, 적당한 평범함을 누리려고 했어요.
말하자면 '무사함' 속에 사는 사람을 연기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저를 아는 사람조차 아무도 모를만큼 조용하게,
저는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하고 싶은 게 무진장 많았던 욕망덩어리였는데요,
어른이 되어서도 그랬어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기도 했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도 싶었어요.
어느 날은 가방을 싸서 훌쩍 떠나고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런 무수한 마음이 고개를 들 때마다
무언가가 저를 끌어내렸어요.
좀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아요.
'그거 해봤자 안될거야.'
'그거 했다가 후회할 거야. 망하게 될거야.'
'부모님은 어떡하고? 실망시킬거야?'
전형적인 빌런의 클리셰를 따르는 목소리지만
번번이 저는 끌어내려졌어요.
그런데 이 목소리는
'안전한 세상'이라는
제가 만든 환상의 세계를 지키기 위한 경보음 같은 거였어요.
이 부질없는 세계의 방어막이 무너질까봐
저 스스로 목줄을 매고 있었습니다.
시끄러운 욕망의 마음이 솟아오를 때마다
저는 그걸 억지로 꾹꾹 눌러 앉혔어요.
왜냐하면 조용히, 안전하게, 실망시키지 않게, 예의 바르게, 착하게,
완벽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참 이상하죠?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오니
저는 점점 사라지고 어느 새 감정도, 꿈도, 저의 말도 점점 줄었어요.
모든 게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고
살아 있다는 느낌 대신
살아내야 한다는 부담만 남았죠.
저는 안전하게 죽어가고 있던 거에요.
누가봐도 위험하지 않은 삶,
그 안에서 저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어요.
가짜 안전이 저를 삼켜버리고
저는 그 안에서 저를 매장하고 있었어요.
어쩌면 이게 더 무서운 죽음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저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어요.
솔직히 갈피를 못 잡는 제 모습이 못났다고
싫을 때도 너무 많아요.
하지만 이 흔들림 안에 진짜 내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를 너무 오래 감췄어요.
그래서 이제는 조금씩 꺼내보고 싶어요.
안전한 척, 평화로운 척, 착한 척 하느라 죽여버린 내 마음을
다시 꺼내서 숨 쉬게 해주고 싶어요.
지금 당장 제 눈 앞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이걸 쓰는 이 순간만큼은
흔들려도 나로서 살아 있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