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간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는데 바람이 달랐어요.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안에 미묘한 서늘함이 섞여 있었고 아, 이제 여름이 정말 끝이구나 싶었어요.
사실 올여름은 특별할 것 없는 여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단한 여행도, 극적인 사건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게 아니었네요. 이 여름에 저는 꽤 많은 것들을 시작했어요.
8월,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죠. 늘 ‘언젠가는’ 써야지 하면서 미뤄왔던 글쓰기. 마음이 글로 바뀔 때의 묘한 기쁨과 첫 글을 올릴 때의 떨림.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벅찼습니다.
그리고 같은 달, 퇴근 후 카페 알바를 시작했어요. 꿈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막연한 이유로. 사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냥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고, 커피 내리는 일이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줄 것 같았어요. 첫날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서 떨던 손을 기억합니다. 내가 만든 음료를 손님에게 내어주었을 때의 그 주고받는 흐름의 편안함이 그런 줄도 모르게 좋았어요.
7월의 어느 날, 갑자기 내린 소나기. 우산도 없이 편의점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그 시간. 스마트폰 화면에 반사된 빗방울들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수증기 냄새. 그때는 그냥 짜증 났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여름이었네요.
8월은 더 특별했어요. 폭염 속에서도 매일 카페에 나가 일을 배우고, 집에 돌아와서는 브런치에 올릴 글감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께 내 연약함을 솔직하게 털어놨다는 것이에요.
“요즘 힘들다”라고 말했을 때 예상했던 잔소리나 꾸중 대신 돌아온 안타까움의 눈물. 그동안 왜 이렇게 혼자 끙끙댔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아마도 그 순간들이, 아무리 평범해 보여도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조금씩 달라졌다는 걸 알기 때문일지도요. 이번 여름 제가 배운 건 커피 내리는 법만이 아니었어요. 내 완벽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차렸고 어리석은 제가 얼마나 저 자신을 몰아붙이는지도 느꼈죠. 서툴러도 시작하는 법을, 그리고 외롭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점도 배웠습니다.
오늘 마트에서 수박을 봤어요. 예전 같으면 당연히 사 먹었을 텐데 이제는 뭔가 어색하더라고요.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였죠. 수박이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은 과일이 되어버린 것.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여름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언젠가 뒤돌아 보며 그리워할 이 날들을, 당장은 후회도, 그리움도 없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내년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테니까요.
기나길 것만 같은 여름은 항상 빠르게 지나가요. 봄이 서서히 오는 것과는 달리 여름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어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려요. 마치 꿈처럼요.
그래서 더 애틋한 것 같습니다. 꿈에서 깨고 나면 아무리 생생했던 꿈도 흐릿해지듯, 여름도 지나고 나면 기억 속에서만 남아요. 다만 그 기억이, 생각보다 오래간다는 게 위로가 됩니다.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파랗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말해주고 있네요. 이제 정말 가을이라고.
지난여름은 충분히 좋았어요. 무엇보다 저는 이 여름 동안 조금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변화는 거창한 순간에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작은 용기들이 모여 만든 한 여름이 저를 조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제 다가오는 계절과 함께 시작하는 것들이 저를 어떻게 바꾸어 줄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