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계단 지옥

by 소은

매일 조금씩 쓸려서 따끔거리던 작은 '미움'에서 시작되었어요. 무난한 거라고 생각하며 '뭐 이 정도야' 하면서 별로 개의치 않았어요. 그런데 너무 커져서 제가 돌아보았을 땐 이미 '경멸'이라는 더 무거운 감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있는데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도덕적'이지 않고 '성실하지 않다'라고 알아차릴 새도 없이 저는 이미 판단을 내렸어요. '차라리 안 봤으면 좋겠다.'라고까지 생각이 새어 나왔어요. 너무 꼴 보기가 싫어서.


왜 솔직하지 못할까? 그냥 정직하게 하면 안 되는 걸까? 왜 눈치까지 보면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하지만 이건 결국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한 제 생각일 뿐이죠. 진짜 사실은 다를 수도 있고요.

그리고 스치듯 일어난 자각은 '나도 그럴 때 있잖아.' 였어요. '비도덕적'이고 '불성실'하고 '보여주기 식'으로 행동해 본 적, 많았어요. 떠오르는 기억이 몇 개던지...


그래서 더 화가 났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보여주는 비열한 모습이 다 어디선가는 저도 했던, 제가 진짜 싫어하는 저의 어두운 면을 자꾸 비춰주니까요.


#그렇다고 왜 그렇게까지 싫은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끄럽게도 저는 사람을 '나보다 더 나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있었어요.

그 동료를 볼 때 드는 생각: "너는 나보다 아래야."

남을 속이고, 눈속임하고, 성실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으니까. 그러니까 못났다. 게으르고, 하기 싫다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서 눈속임하니까.

그런데 타인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이렇게까지 판단이 내려진다는 건, 제가 그 모습을 알고 있다는 거죠. 저도 그런 적이 있는 거예요.


하기 싫은 건 대충 하고, 눈치 보고, 요령 피우고. 저에 대해 말하자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때 나는 참 못난이였어

그럼 지금은?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무슨 일이든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니까 지금의 저는 과거의 저보다는 '더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그럼 앞으로는? 미래의 저는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해요. 더 우월한 제가 되어야 하고, 그래야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토록 동료의 모습이 용납되지 않았던 거예요. 이미 없어져야 했던 제 과거의 못난 모습을 자꾸 보여주니까 싫고 미웠던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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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는 매일 ‘더 나아지기 위해’ 끊임없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무한한 계단


순간 깨달았죠.

제가 위로는 끝없이 연속된 계단으로 도착 층조차 보이지 않고, 아래로도 너무 까마득해서 바닥이 안 보이는 계단 위에 서 있다는 것을요.

끝없이 올라가야만 하는 계단. 내려갈 수도 없고, 양 옆으로 다른 길도 없고, 그저 멈추지 못하고 올라갈 수밖에 없는 곳.

모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아무것도 누리지 못한 채, "올라가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계속 오르는 곳.

현대 사회를 지옥으로 표현하면 이렇지 않을까요?


어쨌든 이건 제가 만든 지옥이었어요. '내일 더 나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지금의 나는 부족하다.'는 믿음. 미래에 뭔가 되어야만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

그래서 계속 올라가야 했고. 쉴 수 없었죠.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 계단이 만들어진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 사회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등수로 매기죠. 대학도 순위를 매기고요. 하다 못해 사는 동네도 순위를 매기죠. 사람 간에 더 나은 사람, 더 못난 사람, 조건으로 가치가 정해지는 게 아닌데 당연하게 조건으로 '등 수'와 '삶의 가치'를 매겨요.


"좋은 대학 가야 인생이 달라진다"

"어떤 조건을 달아야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가르치고 모두가 그걸 자연스레 당연하게 내면화해서 살아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단 끝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은?


그래서 묻게 되었어요.

"지금 이 순간의 나는 뭘 원하는 걸까?"

미래의 더 나은 나 말고, 지금의 제가 원하는 거요.


그랬더니 가장 제가 자주 떠올리고 바라는 장면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가족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것이었어요. 그냥 단순하게 맛있는 거 먹고, 여행도 가고.


그게 다였는데, 그 단순한 행복을 누리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고 믿었던 거예요. 상황이 나아지든, 내가 더 나아지든요.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만 그게 가능할 것 같았어요.


#계단에서 탈출하기


무한 계단이라는 말은 제가 붙였어요. 지옥처럼 갇혀서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없는 곳. 지금은 항상 부족하고, 미래만 바라보는 곳.


하지만 세상엔 계단을 오르지 않고도 사는 사람들이 있는 거 같아요. 삶에는 평지도 있고, 잔디밭도 있고, 바다도 있을 거예요. 가끔 앉아서 쉴 수도 있을 거예요.


다만 계단만 올라가는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앞사람 뒤통수만 보면서,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 신경 쓰면서, 다른 곳을 볼 여유가 없으니까요. 당연하듯 성공이란 똑같은 꿈을 꾸도록 쥐어준 세상에선, 실패는 개인의 책임이니까요. 잠시 숨 돌릴 틈도 죄책감이 들죠.


저는 이제 멈춰보려고 해요. 갑자기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겠지만 계단을 탈출해 보려고요. 바닥에 닿더라도 스스로 가둔 무한 계단에서 내려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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