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도 허무하고 공허할 때가 있습니다.
자주 그 마음을 외면했지만, 그 마음에서 도망쳤지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처럼 결국 그 마음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보니, 내 의도와 다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삶이 내 뜻과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갑니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인간관계가 엉켜버립니다.
그럴 때면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슬픔과 허무함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보통은 그것이 두려워서 다른 걸 하게 되죠.
즉각적으로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뭔가를 먹거나, 누구를 만나거나,
무언가를 사거나, 밖에서 손 닿을 수 있는 것으로 도망쳐버립니다.
하지만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삶과 부딪히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통제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이 정말 아프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
그 무력감이 무의미함과 허무함, 공허감까지 이어집니다.
아무리 마음이 선하고 순수해도, 현실에서는 누군가를 아프게도 하고
누군가의 불안과 맞물려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기도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이건 잘못됐다.”
“내가 잘못됐다.”
“저 사람이 잘못됐다.”
하지만 그건 누군가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삶이란 게 원래 서로를 통해 흔들리고 상처받으며,
그 과정을 통해 알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냥 ‘과정’입니다.
삶이 값지지 않은 게 아니라,
삶의 진짜 얼굴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거겠죠.
삶은 사실 별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아름답지 않은 삶을 깊이 살아갈수록
더 깊은 삶의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허무함이나 공허함이 몰려올 때,
그 마음을 억누르지 말고 그대로 느껴보면 어떨까요.
‘가치 없다’는 감각 속에는
사실 ‘값지고 싶다’, ‘의미 있고 싶다’는 깊은 갈망이 숨어 있습니다.
삶은 가치가 있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고 있으니까 가치가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은 ‘가치’라는 기준으로 삶을 재단합니다.
잘해야 하고, 의미 있어야 하고, 상처 주지 않아야 하고,
아름다워야 하고, 착해야 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결국 이런 조건들은
‘살아 있음’이라는 사실보다 후순위입니다.
죽은 것은 말하지 못합니다.
살아 있으니까 묻고, 괴로워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삶이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아요.
가치 없어 보여도 괜찮아요.
그만큼 느낄 수 있을 만큼, 깨어 있고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요.
삶은 꼭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삶은 그저 모든 걸 느끼게 하는 장입니다.
사랑도, 두려움도, 상처도, 죄책감도, 허무도 —
이 모든 감정이 삶을 구성하는 색깔들이죠.
이 중 하나만 빠져도 삶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색, ‘무의미함’을
오늘은 조금 오래 바라봅니다.
대부분은 이 색을 피하지만,
나는 지금 그것을 정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
이 숨 쉬는 지금의 순간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걸
조금은 더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