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준, 첫 번째 사랑

by 소은

제 자신에게 사과한 날이 있었습니다.


제가 저를 스스로 힘들게 하고 있다는 자각은 어렴풋 있었지만 그게 진심으로 미안했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그동안 내가 나를 너무 몰라 줬구나.”

“남의 눈치 보느라 오히려 내가 내 마음을 너무 무시했구나. “

“내 삶과 다른 선택들을 하면서 나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몰아왔구나.”


정말 미안해.


자각 후의 무게


“지금의 나로는 부족해. 더 노력해야 해. “


그렇게 믿으면서 저를 계속 갉아먹었죠. 제 인생을 힘들게 한 건 다름 아닌 저 자신이었어요.


그런데 이걸 자각한 이후가 더 힘들었어요. 과거도 다르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고, 현재도 바꿔야 하고요. 그 생각만으로 숨이 막히고 사는 게 참 힘들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안 바꿔도 될까? 지금 당장 진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이대로 그냥…”


너무 힘드니까 절로 물어보게 됐어요. 어딘가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아도, 뭔가를 쫓고 추구하지 않아도, 더 나아지려고 안 해도 되는지를요.


존재의 가치…?


솔직히 저는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는 말이 이해가 안 됐어요. 존재하는 건 누구나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저는 누군가와 비교했고, 그보다 나아야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가식 떨지 말고, 더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어요.


제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다 조건이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뭔가를 잘하거나, 인정받거나, 1등 하거나, 돈이 많거나… 하지만 그건 제 결핍에 의한 집착이지 진짜 사랑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조건 없이 사랑받는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소리였어요. 뭔가 동화나 드라마에나 나오는 현실에선 찾아볼 수 없는 판타지 같았죠.


근데 그럴만했던 거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늘 뭔가를 해야만 인정받는다고 느꼈거든요. 잘해야만 사랑받는다고 느꼈죠. 조건을 충족해야만 가치 있다고 믿는 에고가 있었어요.


그게 제가 아는 유일한 사랑 방식이었네요.


그래서 나 자신도 그런 조건으로만 가치를 느끼고, 다른 사람도 그런 조건으로 평가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는 진정한 사랑“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죠.


화해에서 시작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다를 수 있어요.


과거 전체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고, 미래 전체를 계획하지도 않고,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는 이 순간만 느껴보는 거예요.


제가 저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사과했던 순간, 그 고요한 공간엔 사과하는 저와, 그걸 받아주는 저, 딱 둘 뿐이었죠. 둘이지만 하나였기에 '오직' 저만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무언가를 얻거나 가지려고 쫓지 않아도 되고, 더 나아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대요.


그냥 이대로 충분하대요. 더 바랄 것도 없대요.


그러자 사는 내내 제가 막연히 좇아왔던 그걸 마침내 얻은 기분이었어요. 그동안 이걸 그렇게 가지려고 오만가지 노력과, 애씀과, 인간관계와, 온갖 자격과, 환경을 바꿔보려고 했던 거예요.


“응. 이대로도 괜찮아. 그냥 있어도 돼. “



저는 비로소 마음으로 알게 된 것 같아요.

진짜 "존재 가치"란 무엇인지를요. "가치"라는 말 때문에 오해가 생긴 거겠지만, "존재함"에는 어떠한 "판단"도 붙을 수 없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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