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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 Aug 27. 2024

구멍 난 배 8편. 군대.

군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미드라시(유대 경전 주석지)-



강원도 인제의 한 군부대.


"우리 부대 전입을 환영한다. 나는 작전장교, 소위킬러다. 잘 왔어. 근데, 세 명은 와야 하는데......아, 몰라. 니들로 어떻게든 땜빵해보지 뭐."


자기소개를 '소위킬러'라고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것도 소위 앞에서. 보통은 이름을 말하지. 허나, 여기에 있었다. 몸은 군인답지 않게 푸짐했으나, 눈매가 날카롭고 목소리가 낮았다.


"신고합니다. 소위 김명욱은 현 시간부로......"


참고로 '땜빵'의 의미는 곧 알게 되었다.


"야. 됐고, 대대장님 신고 끝나면 나한테 와라."


실룩이는 입가. 아닌가, 희미한 웃음인가. 어쨌든,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나쁜 쪽으로.


"알겠습니다."


승철이에게 시선을 옮기는 소위킬러.


"너도."


"소위 하승철. 알겠습니다!"


전에 없이 바싹 얼어있는 승철이. 그런 승철이가 못마땅한 듯, 소위킬러는 말한다.


"야. 그렇게 있으면 병장한테 먹히니까, 너무 얼어있지는 말고."


"옙!"


나는 포병병과를 지원했고, 승철이는 통신병과를 지원했는데, 같은 부대에 왔다. 나는 포병장교로, 승철이는 통신장교로. 참으로 끈질긴 인연이다.


'미쳤다. 병과가 다른 데, 같은 부대야.'


승철이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


'그러게, 다행인가?'


'다행이지. 상대성 이론에 의해, 너의 6년 4개월 군 생활에 비하면, 내 군 생활은 빛의 속도일 테니까. 널 보는 매일이 행복할 거야. 원래, 행복은 옆집보다 만원 더 벌면 되거든.'


'욕해도 돼?'


'해도 돼. 그 정도야, 여유 있는 자가 감내해야지. 세금 같은 거니까.'


투닥거리긴 하지만, 서로 의지가 되었다. 정말로.


'여기가 야전이구나.'


야전은 우리에게 야생이었다. 날 것의 피비린내가 풍기는 정글. 부사관들은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병장들은 은근히 기싸움을 한다. 선배 장교들은, 우리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날뛰었다.


우린 마치, 토끼 같았다. 우린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사파리에 놓인. 부대 전입 신고 후에는, 직책을 받았다. 나는 관측장교 겸 인사장교. 승철이는 통신장교 겸, 본부포대장(?). 본부포대장은 원래 중위 보직인데, 우리 대대에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되었다. 


'아. 전입할 때, 소위킬러가 했던 말이 이 의미였구나.'


나도 마찬가지. 인사장교는 중위 보직인데, 대대에 사람이 없어, 내가 들어갔다. 어차피 관측장교는 훈련할 때만 바쁘다나. 한마디로 우리 둘 다 이중 보직. 이게 바로 '땜빵'의 의미였다.


그렇게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여름에는 진지공사와 혹서기 훈련, 유격훈련. 겨울에는 혹한기 훈련, 기타 등등. 소위 킬러는 악명을 떨치며 중간중간 우리를 괴롭혔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김명욱! 행정반으로 튀어와.'


라고 해서 가면, 교범 구석에 있는 내용을 질문한다. 내가 알리 가 없지. 같이 행정반에 있었던 승철이 말에 의하면, 졸다가 갑자기 교범을 뒤지더니 나를 부르더란다. 


'그러면 그렇지. 미쳤네.'


뿐만 아니라, 창고에 있는 물품 실 셈이라든지, 지금껏 미루고 있던 잡다한 업무들을 나와 승철이에게 몰아 주었다. 새벽 1시까지 일할 때도 많았고, 출근은 아침 6시까지 했다. 퇴근이 귀찮아서 그냥 행정반에서 잔 날도 적지 않았다.


'야. 승철아. 설마, 이 짓을 6년 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짬 좀 차면 괜찮아지겠지.'


'그래 힘내라. 승철아. 너는 이제 2년 남았으니.'


'엄청 많이 남았네......'


'거지 앞에서, 돈 세는 소리 하고 있네.'


말은 그리했으나, 승철이는 나보다 더 힘들었다. 통신장교에 지휘관인 본부포대장까지 하고 있으니. 그러던 어느 훈련 날이었다. 방탄모에서 계란 후라이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무더운 날씨. 진지를 편성하니, 몸에 '염전'이 생겼다. 후보생 훈련 때 생기던 그 '염전'이. 과거 생각에 잠시 숨을 돌리며 미소짓고 있는 데,


"야! 승철아! 미쳤냐."


소위킬러의 고함이 들렸다.


"죄...... 죄송합니다."


포병부대는 사격 후에 진지를 옮긴다. 포탄을 발사하면 위치가 노출되기 때문에. 


하여, 새로 이동된 진지에다가 통신선을 새로 깔아서, 재사격에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 헌데, 통신이 안되는 상황. 분명, 미리 통신망을 구축했을 터인데,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이게 왜 안 되지?"


"인마! 그거 되게 하라고 나라가 너한테 돈주는 거야!"


소위킬러가 분개하여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어쩔 거야? 전시였으면 우린 모두 사이좋게 끝났어!"


"지금 빨리 파악해서 조치하겠습니다!"


"빨리해. 빨리!"


"예!"


2박 3일 훈련이었는데, 승철이는 잠도 거의 못 자고 통신선로를 왔다 갔다 했다. 눈치 보느라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소위킬러에게 쥐 잡듯 잡혀,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통신병들과 함께. 무슨 선로가 꼬이고, 끊겼다는 데,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안될 이유가 없는데......진짜, 이러다가 죽는거 아냐......"


혼자서 중얼거리는 승철이의 목소리. 소위킬러가 있는 지휘통제실을 다녀올 때마다, 여지없이 고함이 들리고, 승철이 얼굴은 점점 흑빛이 되었다. 마치, 타들어 가는, 그의 마음처럼. 하루가 꼬박 지나고, 3시간 정도 더 지나서야 통신선로는 회복되었다. 승철이는 크게 한숨을 쉬고, 구석에서 쓰러지듯 잠을 잤다.


"하아......잠을 못 잤더니, 진짜 힘드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우여곡절 끝에 훈련이 끝나고, 부대로 복귀했다. 승철이는 계속 표정이 좋지 않았다. 분위기도 바꿀 겸, 간부 목욕탕에서 씻는데, 내가 말했다.


"야. 소위킬러. 그냥 내가 줘 패 버릴까. 진짜. 사람을 너무 쥐잡듯 잡는거 아니냐."


물론 주변을 잘 살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


대답 없는 승철이. 혹시 누가 있나 해서, 주변을 더 둘러보고 사우나실도 들어가 봤는데, 정말 아무도 없었다.


"야. 승철아. 아무도 없어. 소위킬러 내가 줘 패버릴게. 행보관이 부대진지공사때 쓴다고, 창고에 좋은 각목을 많이 가져다 뒀다. 네가 군고구마 모자만 사서 줘 봐봐. 진짜 줘팬다. 내가."


"......"


그래도 대답이 없길래 자세히 살피니, 무슨 소리가 들렸다.


"흐흐흑......"


울음소리. 자세히 보니, 흐르는 샤워기에 숨죽이고 울고 있었다. 그 유쾌하던 승철이가. 


"아. 배고파 먼저 나간다."


나는 그런 그의 등을 두드리며, 못 본 척 먼저 목욕탕에서 나왔다. 다음 날 아침. 행정반에서 승철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 짓는다.


"PX나 가자. 내가 커피 사줄게."


"그래. 뭔가 부끄러운 일이 있나 봐요. 하 소위님."


"잠자코 따라오세요. 김 소위님."


승철이는 커피를 두 개 사더니, 계산 후에 나에게 건넸다. 우리는 막사 뒤쪽 창고로 갔다. 가끔 힘들거나 할 때, 여기 와서 이야기한다. 소위킬러 뒷담화도 하면서.


"승철아. 고등학교 때는 침을 흘리더니, 어제는 눈물을 흘리던데...... 넌 뭘 자꾸 흘리냐. 나이 들면 뭐 흘릴지 눈에 뻔하다."


"하하핫. 봤냐?"

 

멋쩍게 웃는 승철이.


"그러면 못 봤겠냐?"


"명욱아 전역하고 싶어. 군 생활이 너무 길어......"


"......"


이렇게 솔직히 인정하다니. 정말 힘든가 보다. 예전과는 다른 반응에 위로해 주고 싶었으나,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날 보며 힘내라. 난 6년 4개월이야."


"그래...... 네가 있어 다행이다."


그렇게, 나는 승철이에게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김기한이는 괜찮냐?"


"하아......"


승철이가 묻는 말에, 나도 한숨부터 나왔다. 나 또한 지금 골치 아픈 문제 때문에 잠을 잘 못 잔다. 가끔, 미숙한 병사들이 있다. 원래는 '관심사병'이라고 불렀으나, '관심사병'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하여, 우리 부대는 '사랑이 필요한 병사'라고 부른다. 그럴진대, 본질은 같다. 연대에서 '사랑이 필요한 병사'가 한 명 전입해 왔다. 이름은 김기한. 정말 특이했다.


"아. 맞다. 나 지금 가봐야 해. 김기한이 서류 작성해야 해서."


나는 인사장교이기도 하기에, 그런 병사들을 확인하여, 대대장님께 보고드려야 한다.


"그래 수고해라. 휴,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조금 위로가 되네."


"너도 줘 패 버리고 싶다."


"하핫! 기꺼이 맞아주마."


그는 눈물이 정말 많은 병사였다. 쓰레기 주우라는 소리에 눈물을 흘리고, 선임병들이 주특기 하는 법을 알려주어도 눈물을 보이며, 심지어는 걸레 빨아서 내무실 좀 닦으라는 소리에 우는 병사였다. 부모님은 안 계셨고, 할머니 밑에서 컸는데, 항상 소극적이었고 눈빛이 불안했다.


'기한아. 할 수 있어.'


처음에는 그렇게 응원하던 동기 및 선임들도 눈에서 레이저를 쏘기 시작했고, 부대 분위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가, 결국 간부들 사이에서 복무 부적합 심사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병! 김기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행정반에 들어오자, 조금 있다가 기한이가 왔다. 주황색 생활복에, 때가 탄 운동화.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는, 어깨는 움츠려 있었다. 한창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행정반에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자 안도했다.


"저를 미친놈으로 볼까 봐, 아무한테도 말을 못 했어요."


복무 부적합 관련 서류를 작성한다고 솔직하게 알려주니, 기한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주울 때, 걸레를 빨 때, 모포를 덮을 때도 지렁이 수천 마리가 지나가는 환상이 나타나요. 저도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게 보여요. 진짜, 제가 미친놈 같아요."


본인 생각에 위생상 더럽다고 느끼면, 어김없이 지렁이들이 나온단다. 증상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으나, 군 면제 사유가 정신병이라면 취직이 힘들 수도 있을 듯하여, 숨겼다고 한다.


"그럼, 일단 군 병원을 가보자. 어차피 군에서 진료받은 기록은 사회에서 볼 수 없으니까, 한번 치료해 보자고."


"......"


"아니면 정신병으로 의병 전역해야 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대장께 보고드리고, 국군병원 정신의학과로 데려갔다. 그렇게 치료를 시작했고,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소속도 본부포대로 변경하고 직책도 바꿨다. 물론, 승철이는 한숨을 쉬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말, 진심으로 기한이를 도왔고, 본부포대 인원들도 열심히 돌봐주었다. 그렇게, 눈 내리던 어느 12월, 김기한은 무사히 전역했다. 눈이 쌓이듯 우리 모두의 노력이, 켜켜이 쌓인 덕분이리라.


"감사합니다. 인사 장교님.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아니, 전부 잊어라. 그냥, 잘 살아."


전역하는 날, 나는 그에게 목도리를 선물로 주며 말했다.


"못 잊지요. 누군가에게 군대는 무덤이라지만, 저에게는 요람이었으니까요."


손을 한번 크게 흔들고, 하얀 눈 위로 뽀드득 발소리를 내며 멀어져 가는 기한이. 그렇게 힘들고, 기쁘며, 안타까운 일들을 겪으며 우리는 중위가 되었다. 아직, 중위 계급장에 본드도 안 말랐으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몸으로 체감되는 가장 좋은 일은, 소위킬러의 태도.


"이제, 니들은 필요 없어. 새 장난감들이 들어왔으니."


후배들이 들어왔다. 한 명은 명문대 체대 출신인데, 오자마자,


"인사 장교님. 저는 꼭 장군이 되겠습니다!"


라며, 패기 있게 말했다. 뒤에서, 소위킬러가 웃으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정말, 비릿한 웃음이었다.


"그래. 열심히 해라. 소위킬러 조심하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조언을 했다. 그 후배는, 정확히 3개월 후, 저녁 9시에 내 숙소에 와서는 눈물을 보였다.


"무슨 일인데?"


"인사 장교님 전역하고 싶습니다! 부대에 미친 놈이 있습니다."


사연은 이랬다. 첫 당직에 졸았는데, 눈떠보니 총기함키를 소위킬러가 들고 있었단다. 시간은 새벽 2시. 이야기를 듣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소위를 갈구기 위해 그렇게 까지하다니. 심지어, 목에 메고 있었다는 데. 잠깐, 나와 승철이도 자칫했으면 그리될 뻔했는가. 당직때 잠이 안 와서 책을 보며 날을 새길 잘했다.


'어이, 소위. 내가 적이었다면, 지휘통제실은 이미 끝났다. 너의 이기적인 졸음 때문에.'


이렇게 말했단다. 그 이후로는 꼬투리 잡아 시도 때도 없이 갈구는 모습을 보았다. 


"전역하고 싶습니다."


그럴 때마다, 후배는 내 숙소를 찾아왔고, 나는 PX 맥주를 건네며 위로해 줬다.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다가, 사건이 벌어졌다. 소위킬러가 바뀌어 버렸다. 결혼하고, 유해져서, 우리에게 사과까지 했다.


"너희들에게 너무 심했다. 미안하다."


그 여태껏 그 만행들은, 노총각 히스테리였나. 어쨌든 잘 되었다. 


"고생해라. 명욱아."


결국 그날이 왔다. 승철이의 전역 날.


"괜찮아. 이제 편하니까."


"그래......휴가나오면 연락해라. 군대도 생각해 보면 괜찮은 듯 해."


미묘한 웃음. 나는 안다. 그 웃음기를 사라지게 할, 마법의 단어를.


"통신선로......"


"아. 나 빨리 갈게. 건강 신경 쓰고. 너까지 전역하면 다 같이 해외라도 가자."


"해외여행 좋지."


그날, 저녁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데, 눈물이 툭 터졌다. 하여, 통신선로 사건 때의 승철이처럼, 샤워기 물줄기에 눈물을 숨겼다. 목욕탕에 사람이 많았기에. 나도 전역하고 싶었지만, 별수 없었다. 등록금이라는 구멍을 군대에서 메워줬으니. 그렇게, 군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대위가 되었고, 이제 전역이라는 개념 자체도 희미해졌다. 


"휴. 이제는 정말 많이 안 남았네."


대위를 달고 간, 옆 대대에서는 그래도 소위, 중위 때에 비해 수월했다. 그렇게 6년 3개월이 지났고, 전역 한 달 남았다. 드디어 길었던 군 생활의 결승점이 보인다.


"남들 군 생활은 짧다던데, 네 군생활은 정말 길었다. 명욱아."


전역 직전 휴가에서 만난, 승철이와 석관이의 소감처럼, 정말 길었다. 20대 대부분을, 군복을 입었고, 30대가 되서야 나올 수 있었으니. 힘들었지만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하나 깨달았다. 정말 좋은 선택은, 시간이 알려준다는 사실을. R.O.T.C와 군장학생의 조합은 좋은 선택이라고, 시간이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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