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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 Aug 27. 2024

구멍난 배 7편. 후보생.

후보생.

 

좋아하는 일을 하던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던가.


-소노 아야코-



숨 막히는 분위기. 적막을 깨고, 선배가 말한다.


"어제 단복 입고 아이스크림 먹은 사람 나와."


설마. 난가. 그럴 리가. 어제 분명 주변에 선배는 없었는데...... R.O.T.C. 에 지원한 승철이와 나는 합격했다. 수능성적에 학점, 체력 검정, 신체검사, 면접을 거쳐, 거의 꼴등으로 합격했다. 각설이 사랑 타령 때문에, 반쯤 손절한 성중이가 떠 오른다. H 대학교 예비 65번에 붙고 난 후 한 말이. '원래, 문 닫고 들어가는 게, 잘 들어가는 거야.' 어쨌든, 학군단에 잘 들어간 이후에는, 방학을 이용해 하계입영훈련에 참여했다.


'이게 뭐야. 진짜 힘들다......'


처음 받는 군사훈련이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매일 같은 시간 기상과 구보. 훈련받다 보면, 어느새 옷에 소금기가 가득했다. 우리는 '염전'이라고 불렀다. 12명이 함께 쓰는 내무반은 아무리 청소해도 텁텁한 냄새가 가시질 않았고, 저녁점호시간에 이불에 각은 왜 잡는지, 또 그걸 왜 검사하는지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크릉, 으드드득-


이것은, 전차가 지나가는......아니, 자면서 코를 골고, 이를 가는 동기생들이 내는 소리. 덕분에, 밤새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 날도 많았다. 다만, 신기했던 점은, 전국 대학교 R.O.T.C. 후보생들이 한 장소에 모일 수 있다는 현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음식과 간식이 정말 잘 나온다는 사실. 우리를 지도하는 구대장이,


'니들은, 먹다 지쳐 끝나는구나. 자, 나를 따라 해라. 알오티씨 땡큐.'


'알오티씨 땡큐.'


'더 큰소리로!'


'알오티씨 땡큐!'


할 정도로. 나중에 알고 보니, 각 학교에서 위문품을 무지막지하게 보낸 덕분이란다. 마치, 경쟁하듯이. 그렇게 훈련이 끝나고, 다음 학기부터는 단복을 입기 시작했다.


'오. 명욱이 멋진데.'


동아리 선후배들과 동기들은 신기해했지만, 사실 힘들었다. 칼처럼 반듯한 다림질. 빛나는 구두. 무비 메이션 동아리나 학과 사람들이 아는 척해도 큰 소리로 웃으면 안 된다. 강의실에서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야 하며, 단복을 입고 여자친구와 손도 잡는 행위도 금지. 그럴 줄 알고 여자친구는 안 만들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여자친구를 안 만들었지.'


승철이도 나와 같은 소리를 한다.


'안 만든 거 맞음? 못 만든 거 아냐?'


'정신 나갔냐? 나 인기 많아. 도대체 뭘 보고 그런 막말을......'


'응. 네가 거울 볼 때 느끼는 감정을, 나는 널 보면서 실시간으로 느끼거든.'


'곤란하네. 나한테 반하지 마라.'


'......'


우리를 부를 때는 '후보생'이라고 불렀고, 나는 2182번 후보생이었다. 선배들이나 훈육관이 부르면, '2182번 김명욱 후보생'이라고 답했다. R.O.T.C는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의 약자로 직역하면, '예비장교훈련단'이다. 학생군사교육단이라는 의미의 '학군단'도 같은 맥락.


R.O.T.C는 2학년 때 최종합격해서 하계입영훈련을 거친 후, 3학년과 4학년 때 단복을 입고 학교생활을 한다. 군사학이 있는 시간은 반드시 단복을 입고, 군사학이 없어도 행사나 요청할 때는 입어야 한다. 처음에는 단복이 멋져서 좋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 복장의 감사함을 알게 되었다.


'으아! 등이 거북이가 되었네.'


버스에 잠깐 앉았던 승철이의 비명. 이처럼, 구겨지지 않을까 신경 써야 하고, 다림질도 매일 해야 하며, 눈에 띄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카드에는 녹색 테이프를 감고 다니며, 조금씩 떼어 먼지 제거도 수시로 해야 한다. 더하여, 선배들의 프락치가 어디에나 있어, 분명 주변에 선배들이 없어도 무슨 짓을 하면 선배들이 다 알게 된다. 함께 대학을 다니는 선배들의 지인들이, '너네 후배 뭐 하더라' 식으로 알려준다고 들었다.


"안 나와? 단복 입고,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걸어간 후보생!"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후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다니. 아무 생각 없이 사고 나서, 아차 싶었는데, 그냥 먹었다. 분명, 주변에 선배는 없었는데 누구가 고자질한 모양.


"안 나오면 전체 기합이다."


웅성대는 소리.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난가 보다.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2182번 김명욱 후보생. 제가 먹었습니다."


동기들 시선이 집중된다. 호흡이 불편하고 시선 처리가 힘들다. 선배들은 직책이 있다. 중대장, 소대장, 군수장교 등등. 헌데, 비공식적으로 '교육 장교'가 있고, 그 교육장교는 이렇게 후배들 기합(?) 주는 역할을 한다. 훈육관들도 다 알지만 전통적으로 그래왔으니, 쉬쉬하는 분위기.


"후보생이 걸으면서, 아이스크림 먹게 돼 있나?"


교육장교 박성환 선배.


"아닙니다!"


키가 크고 무섭게 생겼다.


"내일 새벽 6시까지 와서, 1시간 운동장 뛰어라."


"예! 알겠습니다!"


내일은 수업이 오후부터 있는 날이어서 늦잠 자려 했는데, 일찍 와서 기합받게 생겼다.


"좋아. 다음은 버스에서 앉은 사람 누구냐?"


"2181번 하승철 후보생!"


역시, 승철이도 걸렸구나. 쟤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어쨌든 함께 달릴 친구가 생겨서 좋았다.


"니들이 야전을 안 가봐서 그래. 야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박성환 선배의 고함에 동기들은 벌벌 떨며 눈치만 본다. 이 분위기가, 나 때문인 듯하여,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그 시간이 지나고, 선배가 나갔다.


"미안하다. 얘들아."


진짜 미안했다. 동기들은 애써 위로를 건넸다. 초반이어서 그래. 조금 있으면 풀어주겠지. 괜찮아.

등등. 기억에 남는 위로는, 나와 함께 법학과 동기인 2183번 이상묵 후보생이 한 말이었다.


"근데, 박성환 선배님도, 야전은 안 가보지 않았나?"


"......"


야전은 본래 뜻은 야생의 산야에서 벌이는 전투이지만, 여기에서는 임관 후 실무부대 배치를 말한다. 박성환 선배님도 아직 임관을 안 했으니, 야전은 안 가봤겠지.


"명욱아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쨌든 대부분 동기들이 그리 말해주니, 울컥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오니 승철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야 왔냐."


시간을 보니 정확히 여섯 시. 아직 선배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 아는 친구들이라도 보면 좀 쪽팔릴 수 있으니까. 아, 그걸 배려했나.


"가자."


승철이가 어깨를 치며 앞장서고, 나도 뒤따라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있던, 밤새 술 먹고 널브러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고,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들린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무렵, 누군가가 옆에 왔다.


"선배님!"


"후보생들이 실수한 이유는, 선배가 지도를 잘못한 탓도 있기에, 나도 뛰러 나왔다."


박성환 선배도 함께 뛰러 나온 모양. 뭔가,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 30분 지각하셨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함께 뛰자."


대사도 청춘드라마다. 그렇게 후보생과 대학 생활을 열심히 즐기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여전히 무비메이션 생활도 열심히 하고, 가끔은 석관이와 승철이와 함께 밖에서 맥주를 한 잔씩 먹었다. 다만, 성중이와는 여전히 서먹했다.


"나, 군대가."


어느 날 석관이가 말한다. 군대. 가야지. 실감이 안 났다. 말로만 듣던 군인 아저씨가 내 친구라니.


"너, 군대 가면 우리한테 경례해라."


"미친놈들."


승철이의 말에 석관이가 웃는다.


"아냐. 진짜야. 우리는 부사관들 위, 장교의 아래 사이의 계급이야."


나도 진지하게 선배들이 해준 말을 했다.


"예예. 이럴 줄 알았냐? 미친놈들아, 그냥 마셔."


그렇게 승철이는 우리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군대를 갔다. 시간은 빨랐다. '니들이 야전을 안 가봐서 그래'를 입에 달고 살던 박성환 선배도, 임관해서 진짜 야전을 갔다. 우리는 어느새 마지막 훈련만을 남기고 있었다. 대학교 4학년, R.O.T.C 2년 차. 마지막 훈련. 이 훈련이 끝나면, 이제 임관시험을 보고 내년 졸업과 동시에 임관 후 소위로 복무하게 된다. 2년 4개월간.


다만, 나는 복무기간이 6년 4개월로 늘었다. 왜냐? 군장학생을 신청했기 때문에.


"미쳤냐? 너 감이 없구나."


내가 군장학생을 신청한다는 소리를 들은, 승철이의 말이다. 나도 들어서 안다. 군대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을.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 좋은 뉴스에 끌리게 되어있다. 생존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하여, 군대에 대한 안 좋은 뉴스들은 시선을 오래 잡았다. 그럼에도, 신청했다.


"어쩔 수 없어. 집이 어려워져서. 나도 이제 구멍 난 배야."


"그게 뭔데?"


나는 예전 성중이와 아르바이트하면서 했던 말을 해줬다. 너는 모터보트, 나와 성중이는 그냥 보트, 석관이는 구멍 난 배. 내 설명을 들은 승철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우리 집 사정이 괜찮지만, 모터보트 정도는 아니야. 나도 노 열심히 저어야 해. 조금 좋은 노 정도지."


"나는 평범한 노였는 데, 아버지가 실직해서 배에 구멍 났거든. 동생도 이번에 대학교를 들어가서 집에 돈이 없고. 그래서, 군장학생 신청했어."


"그래......"


승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장학생은 R.O.T.C와는 별개의 제도이다. 군장학생을 신청하면 등록금이 나온다. 4년을 신청할 수도 있고, 3년을 신청할 수도 있다. 대신, 4년을 신청하면 복무기간이 4년이 늘어나고, 3년을 신청하면 복무기간이 3년이 늘어나는 무시무시한 제도이다.


"그래도 돈 받으니까, 일단은 좋네."


다만, 이미 냈던 등록금까지 돌려주는, 경제 사정이 어려운 집에는 정말 단비 같은 제도이기도 하다. 군장학생은 R.O.T.C와 별개이고, 따라서 군장학생만 할 수도, R.O.T.C만 할 수도 있다.


"군대가 너랑 잘맞을 수도 있으니까."


승철이의 위로. 군장학생만 하면, 그냥 평범한 대학생으로 학교 다니다가 졸업 후 임관한다. 임관 후에는, 등록금을 4년 받았으면 7년을, 등록금을 3년 받았으면 6년을 복무하면 된다.


"나랑 잘맞을 확률도 있겠지. 조금은."


난, 자신없이 말했다. R.O.T.C만 하면 복무기간은 2년 4개월. 다만, 학교 다니면서 단복을 입고 군사학을 들으며, 방학 때마다 입영 훈련을 가야 한다.


"직업군인 할 거야?"


"아니. 음. 잘 모르겠어. 일단 가보고."


나처럼 R.O.T.C와 군장학생을 함께 하면, 학교 다니면서 훈련받은 기간을 빼준다. 하여, 의무 복무기간이 줄어든다. 등록금을 4년 받았으면, 6년 4개월, 등록금을 3년 받았으면, 5년 4개월로. 엄청난 할인.


"그래......"


"그래도, 오래 해야 하니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려고."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훈련을 앞두고 있었다.


...


더웠다. 마지막 훈련은. 승철이는 방탄모 턱 끈을 잃어버려서 별명이 붙었다. '아랍왕자'. 고정이 안 되는 탓에 방탄모를 살짝 얹은 상태로 위태하게 훈련을 받고, 그 모습이 아랍인들이 쓰고 다니는 터번처럼 생겨서.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훈련은 화생방 훈련이었다.


당시 교관은 HID 출신 소령이었는 데,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지금부터 화생방 훈련을 실시하겠다. 몸이 안 좋은 사람 거수!"


몇몇이 손을 들자,


"나에게 몸이 안 좋은 사람이란, 신체의 일부가 몸통으로부터 100m 이상 이격된 상태의 사람을 말한다. 다시 거수!"


있을 리가 없지.


"......"


그렇게 화생방 훈련이 시작되고, 처음은 방독면 및 화생방 보호의 착용이었다. 화생방 보호의를 입고, 방독면을 쓴 후, '가스 가스 가스, 2182번 김명욱!' 이렇게 외친다. 그럼 교관에게 점검받은 후, CS 탄을 터뜨린 장소로 들어가면 된다.


단순한 듯하면서 힘들었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방독면을 쓰니, 숨이 막히고 호흡이 힘들었다. 물론, 그전에 보호의를 완벽히 입은 상태였기에 마치, 찜질방에 들어온 느낌.


그때, 박성환 선배에게 '자기도 야전 안 가봤으면서.'라고 말했던, 2183번 이상묵 후보생이 외쳤다.


"가스 가스 가스, 2183번 이상묵!"


동작이 빠르다. 그리 생각했는데, 교관이 소리쳤다.


"이상 무는 뭐가 이상 무야! 이름을 말하라고!"


"후보생 이상묵!"


"너 장난하냐! 이름!"


"후보생 이상묵!"


"이 새끼가......"


다 같이 얼차려를 받았다. 당시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말소리도 잘 안 들리고, 그 교관의 눈빛과 살벌한 분위기. '그게 아니라 이름이 이상묵입니다'라고, 변명을 못 한 상묵이까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더해져 나온 참사였다.


어쨌든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HID 출신 교관이 사과했다. 그렇게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훈련 끝까지, 아니 훈련이 끝난 후에도 회자되면서 전설처럼 남게 되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훈련이 끝났다. 임관시험준비를 하던 어느 날, 석관이가 휴가를 나왔다. 하여, 승철이와 함께 학교 앞 맥줏집에서 만났다.


"니들은 이제 죽었다. 병장한테 먹힐 거야. 어리바리하다가는."


자리에 앉자마자 공격하는 석관이.


"야. 너는 그 말하고 싶어서 어찌 참았냐?


"겨우 참았지."


내 말에 석관이가 웃는다.


"어이. 상병. 경례 안 하나 상관한테."


승철이의 정색.


"야. 부대에서도 어리버리한 소위한테 인사 잘 안 해. 하물며, 너희 같은 물소위들은 내 경례를 받을 자격이 없어요."


"문무를 겸비한 사관들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아무튼 가서 잘해라. 병장한테 먹히지 말고."


"시끄러워. 난 6년 4개월 해야 해 이놈들아!"


맥주를 시원하게 원 샷 후 내뱉은 내 일갈. 갑자기 숙연한 분위기. 난...... 농담으로 말한 건데. 이 분위기는 뭐야.


"힘내라."


승철이의 위로.


"힘내라."


석관이의 위로.


"그래......"


나의 힘없는 대답.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털어버릴 말이 있었다. 석관이에게.


"석관아 미안해."


맥락 없는 사과에 황당해하는 친구들.


"왜?"


사실, '석관이에게 구멍 난 배.'라고 말했던 사실이 정말 미안했다. 물론, 당사자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성중이와 승철이에게 했으니, 분명 언젠가는 석관이 귀에 들어가리라.


"예전에 너희들을 비교하면서, 승철이는 모터보트, 나와 성중이는 노 젓는 배, 너는 구멍 난 배로 비교했거든. 승철이는 노를 젓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고, 나와 성중이는 노를 저으면 나아가지만, 너는 구멍 난 배라서 물을 퍼내지 않고서는, 앞으로 못 나아간다고."


"하핫. 아 그래? 비유 잘했네."


그럴진대, 당사자는 웃었다.


"미안해. 그냥, 직관적인 비유였어......"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눈치.


"뭐. 별거 아니네. 나 구멍 난 배 맞아. 지극히 사실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도 한 번 더 사과했다.


"아냐. 나도 이제 구멍 난 배가 되어 보니 알겠어. 만약, 승철이가 나를 그렇게 말했다면 상처였을 거야."


말없이 맥주를 홀짝이던 승철이는 살짝 뿜었고, 그런 솔직한 내 심정에 석관이는 대답했다.


"그 구멍, 평생 가는 거 아니잖아. 곧 메울 수 있어. 그러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혹시 알아? 좋은 모터도 달 수 있을지. 그때가 되면, 우리는 모터보트 달린 승철이보다 행복할 거야.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느껴질 테니."


"야. 이놈들아, 나도 모터보트 아니라고! 그냥 노 젓는 배라고."


승철이가 핏대를 세운다. 허나, 석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구멍은 누구나 있어. 다만, 나는 그 부분이 경제적 상황이라, 눈에 잘 보일 뿐이지. 어쨌든, 대한민국 육군 상병인 내 눈에는, 군대생활을 6년 동안 해야 하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


"하하핫. 정답! 그건 그래. 명중이가 제일 구멍 난 배지. 그것도 국방색 구멍 난 배."


"하아......"


승철이의 웃음과 내 한숨이 동시에 터졌다. 눈앞이 막막하다. 별 수 있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해야지. 석관이 말이 맞다. 구멍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눈에 띄느냐 숨겨져 있느냐 차이. 많은 생각과 함께, 마음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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