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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 Aug 27. 2024

구멍난 배 5편. 대학생.

대학생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한국 속담-



오래 묵은 빨래 냄새. 혹은, 울역 지하철 통로 귀퉁이에서 맡아본 적 있는, 노숙자 냄새.

나는 지금 무비 네이션이라는 동아리 방문을 열었을 뿐이다.


그런데,


결코 어울리지 않는 그 냄새를 맡다니. 설마, 내가 서울역 지하철 귀퉁이로 공간 이동을 해버렸나.


"어, 왔어?"


동아리방 구석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는 같은 학번 동기, 김 솔. 경영학과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날카로운 눈매에 적당히 짧은 머리가 시크해 보인다. 생긴 건 깔끔한 데......내가 공간이동 했다고 착각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설마......어제도 편의점 야간?"


"응. 맞아. 나 좀만 더 잘게......"


보아하니, 한 삼일 정도 여기 동아리 방에서 숙식을 해결한 모양. 주중에는 수업 듣고, 야간에는 학교 앞 편의점에서 알바라니. 잠은 언제 자?라는 내 물음에, 잠깐잠깐, 아니면 주말에 몰아서.라고 했다.


뭐.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다. 동아리 신입생 엠티 때, 술에 취한 김 솔은,


"동아리 선배님들! 망해버린 집, 장남 김 솔입니다."


라고, 진상을 피웠다. 일부 선배들 솔직하다고 호감을, 일부 선배들은 궁상맞다고 비호감을, 그리고 일부 선배들은 동정을 표했다.


그럴진대,


정작 당사자는 남들 시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발등에 불이 떨어져, 살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데, 남 주둥아리가 무슨 상관이야. 불 꺼줄 거 아니잖아."


널 안 좋게 생각하는 선배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니, 그가 했던 대답이다. 우리에게는 신세 한탄을 자주 했데, 흔한 이야기다. 어릴 적에는 잘 나가다가, 아버지의 무리한 투자로 망해서, 지금은 작은 임대 아파트에 산다는.


그래서, M 대학보다 좋은 학교에도 붙었는데, 1년 장학금 조건으로 이곳으로 왔단다. 사실, 요즘은 선배, 동기들 간에 실질적인 고민이 나오고 있다. 일단, 동아리 방에 냄새가 잘 빠지질 않기에. 원인은 김솔이였고, 문제는 대 매고 말할 사람이 없었다. 뻔히 사정을 아는데.


선배들은 우리에게 말하라 압박하고, 우리는, 열심히 사는 동기가 안쓰러워 말 못 하는,

한 마디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은 태로 방치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사람 중에 악인은 없어. 니들도 애니 좋아하니까, 좋은 사람들이야."


말도 안 되는 삼단 논법이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으로 라벨링 되어버렸는데,

'야. 냄새나니까 씻고 다녀.'라는 말을 어찌할까. 게다가 아르바이트로 잘 시간부족한 상황을 뻔히 알고 있는데. 우리 동아리 무비메이션은, 무비와 메이션을 합친 말인데, 영화에서 나온 무비, 그리고 니메이션 뒷부분메이션을 합쳤다.


그래서인지, 김 솔처럼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나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모두 가입하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과 활동, 동아리 활동을 안 하려고 했다. 이유는 내법학과기에. 사법고시 합격해야 하지 않겠나. 애초에 그것이 목표였으니.


나는, 학과에서 운영하는 사법고시 소모임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근데, 아는가.

팔씨름도 힘 차이가 너무 크면 힘이 안 들어가는걸.


1차 과목은 헌법, 민법, 형법에 선택과목 골라야 하고, 2차 과목은 헌법, 민법, 형법에,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상법, 행정법 모두 봐야 한다.


1차는 객관식인데, 2차가 주관식이다. 먼저, 1차 기출문제를 봤다. 어려웠으나, 인생을 일부 걸어본다면 가능하다, 생각했다.


헌데,


2차 기출문제 힘이 풀렸다. 이건, 인생이 아니라 목숨을 걸어도 안 될 듯했다. 이게......가능하다고? 일주일 정도 고심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결론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듯 했다. 사법고시는. 결국, 이른 포기. 원래는 공부하려고 주 5일 등교로 시간표를 짰는데, 시간이 남아돌아 버리니, 난감했다.


그래서,


중간에 시간이 비는, 공강시간에 시간 때울 장소를 찾았다. 하여,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동아리방에 만화책이 많은 무비메이션에 가입하게 되었다.


"잘했어. 우리 무비메이션 고학번 선배 중에도 있지. 사법고시 준비했던 분."


내가 사법고시 준비하려다가 빠른 포기 후, 여기에 가입했다고 하자, 법학과 4학년, 강정선배가 했다. 키가 크고, 검은 뿔테에 스포츠머리. 험악한 인상이지만 친절한 반전 매력.


"그 선배는 공부를 7년 하다가, 1차만 두 번 붙었는데, 그래도 계속했지. 절에 들어가서도 하고, 그러다가...... 그러다가......결국."


됐다는 것인가.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결국 됐지."


"대...... 단하시네요......"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렇게 어려운 시험을. 정말 대단하다. 특히, 2차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아니, 사법고시 말고......스님 됐다고."


"네?"


"절에서 공부하시다가, 해탈해 버리셨지."


"해탈이요? 스님 됐다고요?"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으나, 사진도 보여줬다. 절을 배경으로 웬 스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정말......이네요."


"그럼. 정말이지. 나중에 소개해 줄게. 농구 좋아하시거든."


그 선배도 사법고시는 엄두가 안 나서 법원서기보 시험 준비 중이란다. 참고로 법원서기보는 9급 공무원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비밀인데. 가끔 고기도 몰래 드신다. 나랑 농구하고."


"......"


땡중 아니냐는 소리가 목까지 올라왔지만 도로 삼켰다. 그렇게 동아리와 함께하는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김 솔은, 내가 여기 동아리에서 만난 가장 특이한 친구다.


집이 가난해서, 돈은 정말 안 썼으나, 늦게라도 술자리에는 꼭 참석했다. 또한, 말수는 적었으나, 적재적소에 재치 있는 말을 잘했다. 그래서 미움받진 않았다.


술을 많이 먹으면 주사가 있었으나, 사실 주사도 신세 한탄 정도. 다만, 가끔 땜빵으로 야간 편의점 알바를 연속으로 할 때는 저렇게 동아리를 자기 집마냥 사용했다. 물론, 그때마다 숙한 냄새를 풍기긴 했다. 안쓰러운 냄새를.


그러던 어느 날 주말, 강정 선배에게 전화 왔다.


"내가 저번에 말한 그 스님 선배랑 농구하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네. 좋아요."


딱히 할 일도 없기에.


"이도 같이 갈 거야."


"네. 재미있겠네요."


우리는 학교에서 만나, 선배 차, 투스카니에 구겨 타고 경기도 일산에 있는 절에 계시다는 스님 선배를 만나러 갔다. 내부 순환도로를 타고 고양시, 구불 구불한 산 길을 지나, 어느 에 도착했다. 한자로 적힌 현판이 있었는 데, 법학과임에도 부끄럽게도 읽지 못했다. 무슨무슨 사......인데.


"왔어? 후배님들?"


 선배를 보자마자 는 한 남자.


흰 얼굴에 검은 비니를 쓰고 청바지를 입은, 스님 선배가 합장하며 반갑게 맞아준다. 검은 배낭까지 메고 있다. 솔직히 스님인지도 몰랐다. 스님이 저런 복장을?


"여전하네 이 똥차는"


스님의 말에, 정수 선배가 발끈한다.


"감히 스포츠카의 명품 투스카니에 무슨 그런 불경한 소리를 하십니까?"


"정수야. 불경은 내가 잘 외우 거고, 똥차는 맞잖아."


문짝이 두 개밖에 없어 타고 내리기가 불편하고, 쓸데없이 부등거린다. 나도 그 선배 말에 동의한다.


"그럼 내리던가요."


그래도 강정 선배는 투스카니에 자부심이 있는 사실을 알기에, 후배 된 입장에서, 스님 선배처럼 함부로 말할 순 없었다.


"농담이야. 가자. 2대 2로 농구하면 되겠네. 지는 팀이 오늘 삼겹살 쏴라."


"......"


스님이 고기를 드신다니.


"아. 선배 땡중, 너무 티 내지 마요. 티 막나요."


"고기 먹고 안 먹고는 땡중 기준이 아닌데, 이 불쌍한 중생아. 말하자면 복잡한데......"


"알았어요. 선배. 별로 듣고 싶지 않아요. 스님이 왜 이리 혓바닥이 기세요."


강정수 선배가 스님 선배 말을 잘랐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불쌍한 중생을 용서하겠나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구겨 타고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농구장에 가서 농구 시작했다.


스님 선배 검은 가방에서 체육복을 꺼내 갈아입었고, 사법고시를 합격 못한 한을 농구에 풀려는 듯, 날아다녔다. 그 선배는 내 팀이었다. 스하라면 했고, 공을 돌리라면 돌렸으며, 슛하라 했다.


그뿐이었는데, 우리 팀의 승리.


"이겼다!"


기뻤다. 생각보다 더 많이. 단히 씻은 후, 우리는 근처 작은 고깃집에 갔다.


"진우 왔어?"


허름한 고깃집. 아줌마 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내가 절에서 공부할 때부터 오던 고깃집이야. 많이 주셔."


스님 선배 이름이, 진우였구나.


"저분은 선배님, 스님 된 거 알아요?"


"글쎄. 묻지 않으셨고, 나도 말하지 않았으니. 말이 굳이 필요 없는 사이지. 아줌마와 나는."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고기를 구워 먹었다. 내가 본, 진우선배는 고기를 가장 잘 구웠고, 그리고 가장 맛있게 드셨다.


"명욱이도 법학과야."


강정 선배가 날 소개했고, 나는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법고시......할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내가 사주를 한 번 봐줄게. 사법고시 해도 되는지."


선배는 스님이 된 후, 왜 자신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고심했고, 사주팔자 명리학을 공부했다 한다. 답은 아니었으나, 위안은 될 수 있었기에. 지금은, 절에 자주 오시는 분들 대상으로 한 번씩 봐주신단다.


내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물었고, 스님선배는 어플을 켜서 입력했다. 원래는 계산해서 손으로 쓰며 했는데, 어플이 나와 걸 사용면 편하다 다.


"선배 혹시, 포털사이트 운세 같은 거 재빨리 켜서, 입력하는 거 아니죠."


강정선배 깐죽거림.


"불쌍한 중생.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이는 법이니......"


가볍게 무시. 선배는 이리저리 보며 중얼거리다가 나에게 입을 열었다.


"너는 사주에 토가 많아. 쉽게 이야기할게. 너에게 500원은 그냥 500원이 아니야."


"네?"


"남들은 500원을 얻을 때, 1 정도 노력만 기울인다면, 너는 10 정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야. 이런 사주는 사법고시에 맞지 않아."


"그렇군요......"


역시. 그랬군. 포기하길 잘했어.


"어려운 시험일수록,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데......그야말로 미친 노력이 필요할 거야. 죽을 만큼."


그 소리를 하는 선배 목소리가 떨렸다.


"사실......내 사주랑 비슷해. 나도 그랬거든......근데, 이런 사주가 좋은 점도 있어."


"뭔데요?"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10배의 노력을 해, 한 번 얻으면, 주변 흙들에 파묻혀서 결코 잃어버리지를 않아. 그러니까, 얻기는 힘들지만 한번 얻으면 잃지는 않는다는 거지. 절대로."


제법 정확한 듯 보였다. 생각해 보니, 내 인생은 노력에 노력을 더한 결과물의 연속이었다. 쉬워 보이는 일도 나에게는 어려웠고, 단적으로 첫사랑조차 엄청 힘들었다. 시작도 못 해보고 짝사랑으로 끝 날 만큼. 다만, 한 번 이룬 일들은 어느 준 이상으 도달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진심이에요. 선배. 꼭 맞아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사주풀이였다.


"직업은 안정된 공무원 같은 거 하면 잘하겠네. 너도 정랑 법원서기보 같이 준비해. 그 정도는 노력으로 가능하고, 괜찮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야."


"생각해 볼게요. 감사해요. 선배."


"그래. 그럼, 이제 솔이도 봐줄게."


김 솔도 눈을 반짝이며 생년월일을 말했고, 진우 선배는 어플에 입력해 보고,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말했다.


"사주에 화가 많네. 머리도 좋고, 열정도 있는데 일이 잘 안 풀려. 형제가 있는 데......별로 도움이 안 되네. 그래도 30살 이후에는 얽힌 실타래가 조금 풀릴 거야. 그때까지만 참아."


"그렇군요....."


 "복을 조금 더 일찍 받는 법은 있어. 주변을 깔끔하게 해야 해. 잘 씻고, 정돈을 잘해. 그러면 운이 일찍 바뀔 수도 있어. 아, 그리고 파란색을 가까이해."


냄새나는 김솔. 얼굴을 보니, 충격 먹은 듯. 우리는 그렇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스님 선배는 절에서 내려 합장하며,


"잘 가. 후배님들. 연이 있으면 또 보겠지."


우리는 인사 후, 다시 투스카니에 구겨져 탔다. 그리고, 적당한 지하철역 입구에서 내려,


"정수 선배님, 오늘 즐거웠어요. 담에 봬요."


인사를 했다.


"나도 오늘 즐거웠다. 나중에, 동아리방에서 보자."


선배는 손을 흔들고, 투스카니 배기음과 함께 사라졌다. 김 솔과 나는 지하철 방향이 반대였다.


"잘 들어가. 솔아. 스님선배님, 사주 잘 보는 거 같네."


"야. 난 그런 거 안 믿어. 다 미신이야."


필요 이상으로 단호한 어조에 왠지 무안했다.


"그래, 뭐 믿고 안 믿고는 자유니까. 조심히 가."


"그려."


그런데, 그 이후, 김 솔은 변했다.


동아리 방을 항상 정리했고, 몸에서도 더 이상 안쓰러운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걸 넘어서 더러운 것을 보면 앞장서서 치웠다. 안 믿는다고 한 사람치고는 행동이 설득력이 없다.


거기다, 파란색 운동화만 신고 다닌다.


동아리 사람들은 그런 김 솔을 의아해하며 환영했다. 양이가, 스스로 목에 방울을 달았으니.

이유를 아는 사람은, 강정 선배와 나뿐이었고, 굳이 말하진 않았다. 진우선배......아니, 진우스님 계신 절에 시주를 좀 해야겠다. 사람을 저리 바꿔 놓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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