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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 Aug 27. 2024

구멍난 배 3편. 고등학교.

고등학교

젊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낭비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 조지 버나드 쇼-



찰싹. 찰싹. 온몸이 아프다. 사정없이 날아오는 검은 혁대. 뱀 머리처럼 요동치며, 손으로 미처 감싸지 못 살갗을 깨문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 포감을 더한다.


"잘......못했어요!"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친다. 맞을 짓을 하긴 했는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다시는......안......안 그런다니까요!"


허나, 아빠 귀에는 안 들어오는 모양. 원래 흥분하면 물불 안 가린다. 손바닥에 쥐고 계신 버클에 땀이 묻어 번들거린다.


"너. 장래 꿈이 뭐라 했지?"


휴. 진정하셨나.


"경...... 찰 이요."


"에라이! 누가 누굴 잡아! 이 도둑놈 새끼가!"


하. 다시 정신없이 시작된 혁대 채찍질.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버클 부분으로 안 때려서 다행이다.


"아! 애 잡겠네. 그만 때려요!"


밖에서 엄마가 소리치지만, 지금 흥분한 아빠한테는 들리지 않는 모양. 나는 최대한 몸을 공벌레처럼 둥글게 말고 이 순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1분이 1년, 아니 100년처럼 느껴진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의 온도보다, 내 얼굴이 더 뜨겁다.


후회? 부끄러움? 아니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매질 때문인가?


다시금, 100년 같은 1분이 지나고, 매질이 멈췄다.


"다시는 아빠 지갑에 손대지 마라."


휴. 마무리 멘트. 나는 눈물을 훔치며,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는 그런 내 모습을 며 혀를 찬다.


"쯧. 쯧. 사내자식이 비겁하게 도둑질이라니."


"......"


어느 정도는 불가항력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됐는데, 너무 재미있는 게임이 나왔다. 이름은, 스타크래프트. 용돈은 적지, PC방은 가고 싶지. 해서, 아빠지 갑에 손댔다.


"잘 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진짜요."


"이번만 봐준다. 만약 다음에도 그런다면......기대해라. 어찌 되는지."


이게 봐준 거라고? 삼십 분 동안 혁대로 맞았는 데? 아니, 삼백 년......


"진짜. 진짜. 다신 안 그럴게요. 진짜요."


아빠는 아직 분이 덜 풀렸는지,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가셨다. 사실 아빠지갑에 손댄 지, 3번째에 걸렸다.

의심은 있었으나, 물증이 없던 아빠의 함정수사에 걸렸다. 만 원짜리를 정확히 세어 두셨으니.


"으......"


온몸이 따갑다. 이제 둑질 그만해야지. 그냥, 저녁 밥값 아껴서 피시방 가야지. 


엄마가 안쓰럽게 묻는다.


"어이구. 그 돈으로 뭐 했어?"


"그......그냥 뭐 사 먹었어요. 탕수육, 햄버거"


엄두도 못냈던 음식이름이 막 나왔다.


"많이도 먹고 다녔다. 아주. 담부터 먹고 싶으면 아빠 지갑에 손대지 말고 말해."


"......"


그냥 대충 둘러대었다. PC방 갔다고 하면, 추가로 한 30분 정도 더 맞을 거 같아서.


 석관이 승철이는 한성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집 앞에서 129번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아현역이 나오는 데, 거기 근 학교다. 주택들이 많고, 앞에는 큰 고가다리가 있다.


"야. 욱아. 저기로 탱크 지나다닌다."


승철이의 거짓말.


"자꾸 구라 칠래. 혹시, 너 구라 칠 때마다 엉덩이 커지는 거 아냐? 피노키오처럼? 너 엉덩이 더 커진다. 이 엉덩이 피노키오야. "


"아. 염병!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야.  악물고 웃기지도 않은 별명 만들지 마라. 추해. 그리고 탱크는 진짜야. 피카추 돈가스 내기할래?"


"오냐."


학교 앞 문방구에서 피카추 모양 돈가스를 파는 데, 가끔 사 먹는다. 야간자율학습은 전교생 의무. 끝나면 저녁 10시이다. 오늘은 야자를 도망치고, 피시방에서 11시까지 놀았다.


-드. 드. 드. 드.-


집에 가는 길에,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거대한 포신, 국방색의 몸통, 그리고 고무를 씌운 궤도.


-드. 드. 드. 드.-


"진짜네......"


진짜 탱크. 세 대 정도가 지나갔다. 태어나서 처음 봤다.


"내일 쏴라."


승철이 말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 진짜 탱크가 지나갈 줄은 몰랐다.

 

"근데. 진짜 저 술집은 뭐 하는 데지?"


"그냥 술집 아닌가?"


"그러기엔 수상한데......"


고가다리 앞쪽으로는 뭐 하는지 모를 술집들이 많았다. 촛불, 개미굴 등등, 검은색 스티커로 내부가 안 보이게 만들어 놔, 궁금한 곳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생물 선생님이 자주 간다고 한다.


"뭐. 나도 나중에 졸업하면 가봐야지. 조금 싸구려 술집이겠지."


승철이가 말한다.


"같이 가자."


나도 거들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약간 낙후된 느낌의 학교지만 장점도 많았다. 가장 큰 장점은 교복이 없다는 사실. 그러면 양아치 학교 같은 느낌인데, 생각보다 학생들 관리가 엄격하고 공부도 꽤 잘하는 학교였다. 담임은 맨날 주변 학교와 비교한다.


"니들, 이번에 설마 인 똥들한테 따라 잡히는 거 아니지?"


 고등학교는 근처 남학교인데, 교복이 색이라 선생님들이 맨날 똥이라고 부르고, 우리 학교랑 비교하고 공부하라 닦달할 때 쓰는 교보재이다. 사실 학교 수준은 비슷하다. 도긴개긴


-짜악!-


우리 담임은 독일어 선생님인데, 안경 쓰고 항상 2대 8 머리를 하고 다니셨다. 근데, 질이 불같다. 그래서,


-짜악!-


이렇게 야간자율학습에 도망치다 걸린 애들은 싸대기를 한 대씩 때렸다. 나와 승철이는 운 좋게 같은 반 되어서, 이렇게 사이좋게 싸대기를 맞고 있다. 석관이는 영어 선생님 반인데, 때리진 않는단다.


"다신 야자 도망 마라! 너희 지금 당장은, 나를 원망할 수 있지만,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랬다......"


화난 얼굴로 시간 중요성에 대해 훈계하셨다. 뒷말은 뭐라 했는데, 잘 들어오진 않았다. 뺨이 얼얼해서.


"예......"


야자 감독이 도덕 선생님이었는 데, 개인 사정으로 우리 담임으로 바뀌었나 보다. 어제 스타크래프트 하려고 도망쳤는데......이렇게 걸려서 맞았다. 얼마 전 아빠한테 맞고, 오늘은 담임한테 맞고. 스타가 내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그래도,


덕분에 진짜 탱크도 보고 후회는 안 한다. 무엇보다, 요즘 게임에서 계속 이기고 있으니.


"야. 근데 엉덩이보다 싸대기가 낫지 않냐? 덜 아파서."


승철이가 웃으며 말한다.


"그건 그런데, 기분은 별로네. 근데, 의외네 넌 오리 궁둥이라서 엉덩이 맞는 게 좋은 줄 알았는데."


"염병알아. 맞으면 똑같이 아프지. 다 내 살인데."


"그런가......그나저나 넌 스타 실력이 점점 퇴보하냐."


내 말에 승철이가 발끈한다.


"너 어제 개 비겁하더라. 후방에 리버 러시를 하냐. 진짜 개 패고 싶더라."


"야. 연습이나 더 해. 오늘도 PC방 갈래? 야자감독 우리 담임은 절대 아닐 듯."


"콜."


우리는 그렇게 게임에 푹 빠졌다. Pc방에서 하는 게임도 모자라, 가끔은 집에서도 한다. 집에서 할 때는,

 

-뚜. 뚜. 뚜. 뚜. 뚜우우.-


전화가 안 된다. 왜냐하면 전화 코드를 빼고, 거기다 모뎀선을 꽃아 쓰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타에 미쳐서 고1을 지내고 있는 데, 친구가 새로운 세계를 알려주었다.


"야. 이거 접속해 봐."


그날도 pc방에서 열심히 배틀넷에 접속하여 스타를 하는데, 승철이가 이상한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세이클럽?"


"여자랑 채팅하고 번호 따는 거야. 우리 여자 번호 누가 많이 따나 시합할래?"


"콜!"


뭔지 모르겠지만 승철이한테 질 수는 없었다. 채팅하고 번호 따고. 삐삐번호를 주는 애들도 있었고 드물게는 핸드폰도 있었다. 나는 중고 삐삐가 있어. 그 번호를 알려줬다.


문제는 그렇게 해도 만나기가 어려웠다. 일단, 통화가 어려웠다. 저녁에 집 전화로 부모님 잘 때 하던가, 아니면 공중전화로 해야 하니. 또 번호 딴 여자애가 아니라, 다른 가족이 받으면 바로 전화를 끊었.


그러다가, 한 명 하고 잘되어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 설레었다.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 데, 발에 이쁘장한 애가 붉은색 스웨터를 입고 저 앉아 있다.


"안...... 녕!"


긴장한 내 모습에 그녀는 살짝 웃었다. 그 모습에 나는 호기롭게,


"내가 사 줄 테니 먹고 싶은 거 먹어!"


라고 말했고, 정확히 1초 만에 후회했다. 커피값이 진짜 비쌌기에. 3천 원. 엄마가 야자 할 때 먹으라고 주는 저녁값이 3천 원인데. 맨날 2천 원짜리 한솥도시락만 먹어서 모은 돈, 다 털리게 생겼다. 도련님 도시락 한 번 먹어야 하는 데......


헌데,


커피가 3천 원인데, 파르 4천 원? 그럼 당연히 파르지. 천 원 차이밖에 안 나는. 그리고 커피는 쓰고, 텁텁하지. 그렇게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가며 데이트를 두 번 정도 했고, 세 번째 만나는 날,


"명욱아 이번주 금요일 저녁에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아무도 없는데......"


순간, 설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금요일은 담임이 야자감독이었기에. 이번에도 도망치면 따귀로 안 끝날 듯. 근데, 자존심이 있지. 야자 못 도망쳐서 못 간다고 하면 너무 질하니까......


"미안. 선약이 있어서."


"그래......"


그 이후에는 연락이 뜸해지더니 끊겼다. 오히려 잘 됐지. 커피값이 너무 아까웠다. 애는 무슨. 솔직히 친구들하고 노는 게 더 재미있다.


"야. 너 그때 만나던 애는?"


"끝났지. 야자 때문에......너는?"


"진즉 끝났어. 한 번 만나고 안 만나 주더라. 엄마가 공부하라 그랬대."


승철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한다.


"하긴, 나도 너랑 있으면 뭔가 공부하고 싶더라고."


"......뭔가, 좋은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어쨌든 그렇게 야자 하며 공부, 스타크래프트. 가끔은 농구. 그러다가 특이한 친구를 한 명 알게 되었다.


이라는 친구였다.


"너 오아시스 알아?"


이게 첫 대화였다. 맨날 시디플레이어를 듣고 있던 친구.


"알지. 사막에서 물먹는 곳."


"아니, 가수."


"모르는데."


"지오디는 알아?"


"당연하지. 노래 좋잖아."


"그래. 넌. 지오디나 들어라."


갑자기 무시? 미친놈인가. 한 번 참았다.


"지오디가 어때서?"


"오아시스, 스매싱 펌킨스 이런 애들이 진정한 가수야. 라디오 헤드, 벨 앤 세바스찬도 괜찮지. 넌 음악을 몰라. 쓰레기나 들으니까."


화내기도 애매한 진짜 미친놈이었다. 국사시간에 배운, 문화 사대주의 사상에 뇌가 물들어 있는 놈.


"야. S.E.S는?"


마침 옆 반에서 석관이가 오는 중이라 물어봤다.


"쓰레기지."


"디진다."


이이제이. 석관이가 듣고 정색하자, 성중이가 말을 바꿨다.


"라고 생각했는 데, S.E.S는 나쁘진 않아. 물론 오아시스나 라디오 헤드가 더......"


"양키노래 노린내 나못 듣겠더구먼, 뭘 그딴 걸 들어?"


"......"


두 오랑캐가 부딪혔다. 내 입장에선, 둘 다 오랑캐다.


"오아시스도 나쁘진 않아. 한 번 들어봐."


성중이는 석관이에게 이어폰을 건넸고, 예상외로,


"뭐. 나쁘진 않네."


석관이가 웃었다.


"노린내도 안 나지?"


"웃긴 놈이네. 이거."


어쨌든 그렇게 같이 놀게 되었다. 스타도 같이 했는 데, 농구는 잘 못했다. 햇볕 알레르기가 있다나. 처음 알았다. 그런 알레르기도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중이가 씩씩거리며 나와 승철이를 찾아왔다.


"니들 힘이 필요해."


자세히 보니까, 눈 주위가 시퍼렇다.


"문방구에서 하나 남은 게임잡지 사는 데, 3학년이 자기가 찜해놨다고 내놓으라고 하잖아. 싫다 했더니 손바닥으로 때렸다."


"맞을 짓 했네. 3학년이잖아."


나는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이야기했고, 중이는 씩씩대며,


"알아보니까 고등학교 3학년이 아니고, 인청 중학교3학년이래. 얼굴이 개 삭아서 속은 거야."


"......"


승철이가 쿡. 쿡 거렸다. 나는 크게 웃었다.


"웃지 마. 미친놈들아."


"아. 쪽팔리게. 중3한테 맞고 다니냐."


"도와줄 거냐? 그 새끼 찾아서 깔 건데."


"아. 이번 게임잡지 부록, KKND였지."


스타크래프트랑 비슷한 게임인데, 번들로 줘서 인기가 많은 모양.


"야. 말 돌리지 말고 도와줘."


"야. 알았어. 언제 갈 건데?"


승철이가 의외로 나선다.


"오늘 야자 째고."


"그래. 나도 같이 가자."


중3한테 맞았다. 그건 자존심 문제였다. 다행히 야자감독은 담임이 아니었다. 오늘이 날이다.


"석관이도 도와준댔어."


우리는 인청 중학교로 갔고, 교문에서 서성거렸다. 괜히 인상 쓰고, 어울리지 않게 바닥에 침도 뱉었다.

승철이는 그러다가 침이 끈적하게 나와 더럽게 늘어졌다.


"히드라다."


석관이의 말에, 이제 승철이 별명은 오리궁둥이에서 히드라로 바뀌었다. 그러고 있는데,


"저 새끼야."


석중이가 한 명을 가리켰고 우리는 기세등등하 몰려갔다. 듣던 대로 얼굴은 고3이었다. 리가 둘러싸니, 그놈은 당황한 듯 리번 거린다.


"나 기억나지?"


"으으응...... 네. 안 그래도 형인 줄 몰랐어요. 그때, 제가 형 때리는 모습 보고, 다른 친구가 알려줘서 알았어요. 진짜 몰랐어요. 어려 보이셔서."


그러더니 가방을 열고 부스럭거렸다.


"이거...... 드릴게요.  만나면 드리려고 가지고 다녔어요. 형이 그때 1학년이라고 하셔서, 중학교1학년인 줄 알았어요. 정말이예요......"


울먹이며, 게임잡지와 부록을 건넨다. 성중이는 가만히 있다가,


"그래..... 나도 네가 3학년이라니까, 고3인 줄 알았으니, 오해였네. 됐다. 너 가져라. 네가 돈 냈는데. 네 거지."


"옛?"


"됐고, 일로와 봐."


그러더니 어깨동무를 하고, 학교 앞 매점에서 2프로 음료수를 사서 줬다.


"애들 때리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고마워요. 형."


똥폼을 잡으며 뒤돌아 가고, 승철이는 불량하게 침을 뱉었다. 이번에는 깔끔하게, 성공적으로. 히드라 다다.


"고맙다. 오늘 내가 짜장면 쏜다."


중3을 상대로 체면치례를 한 성중이가, 목소리를 내리 깔고 말했다.


"탕수육은?"


석관이 말에, 성중이는,


"그 정돈 아니잖아. 내가 재벌이냐. 탕수육은 나 생일 때도 못 먹어! 중학교 졸업식 때 먹었나? 기억도 안 나네."


갑자기, 목소리 데시벨이 높아지며, 중3한테 맞았을 때보다 정색한다. 해프닝은 그렇게 끝나고, 다음날 우리는 좌절했다. 또 야자감독이 우리 담임으로 바뀌었단다.


이번엔 엉덩이를 맞았는 데, 차라리 싸대기가 나았다. '야자 그만 도망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도 뭐. 짜장면 먹었으니까."


그렇게 우리 학창 시절은, 나름 즐겁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생각도 못 했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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