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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 Aug 27. 2024

구멍 난 배 9화. 스킨 스쿠버.

스킨 스쿠버.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행복의 기원, 서은국-




아주 긴 꿈같았다. 가끔은 행복했고, 때로는 아팠고, 기쁨도 있던, 그럭저럭 괜찮은 꿈.


"신고합니다! 대위 김명욱은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물이 들어와 가라앉을뻔한 배의 구멍. 그 구멍을 메워주는 대가로, 국가가 요구한 6년 4개월이라는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노를 저을 시간이다. 사단장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수고했어, 김 대위. 나가서도 자주 웃고. 자주 웃어야 행복한 법이니까."


동감이다. 행복은 빈도니까.


"감사합니다!"


사단장에게 부대 기념주화를 받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예전 소위킬러에게 당해, 울면서 전역하고 싶다던 체대 출신 후배가 사단장 부관이다.


"시간이 빠르네."


"선배님은 나가셔도 잘하실 겁니다."


"그래. 고맙다. 소위킬러는 잘 지내려나?"


"진급했답니다. 저한테도 모질게 했던 거 미안하다고 했는데, 뭐, 다시 보고 싶진 않습니다."


"그래. 잘 지내라."


"옙! 연락드리겠습니다. 선배님!"


그 울보가 사단장 부관이라니. 미소를 지으며, 짐 정리를 위해 사무실에 왔다. 선, 후배들과 인사를 하고, 병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했다. 기다렸던 이날을, 건강하게 맞이했음이. 길게 복무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열심히 한다고,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유능했던 육사 선배는, 병사가 크게 사고를 쳐서 진급에 누락되어 전역을 했다. 사람 좋았던 학군 후배는 병사가 우울증으로 자살하여, 군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대부분 일들이 그랬다. 잘 되려면, 실력은 물론, 운이 필요했다. 하여, 내가 무사히 전역하게 된 오늘도, 내 노력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이제 뭐 하지."


중위 시절 구입한, 오래된 중고차에 짐을 싣고 달리며, 기분 좋은 고민을 했다. 백미러에 부대 위병소가 비친다. 가슴이 아리며 시원하다. 마치, 파스를 붙인 듯한 느낌. 이제 올 일은 없으니.


"해외부터 가볼까."


일단 놀기로 했다. 몇 개월간은 마음 편하게. 특히,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었다. 한 번도 안 가봤으니. 군인 신분으로 해외여행 가기는 정말, 힘들었다. 휴가도 길게 못 가고, 간다고 하더라도 세부 계획서를 작성해서 부대장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여, 신혼여행 말고는 대부분 갈 생각을 안 한다.


"좋아. 스킨 스쿠버 자격증 따러 가자."


전역 전, 마지막 당직을 설 때, 지휘통제실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기억났다. 스쿠버 다이버들이 물속에서 물고기와 헤엄치고, 산호초 사이를 탐험하는 영상이었다. 스쿠버는 Self-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 Diving의 약자로, 직역하면, '수중에서 스스로 숨 쉴 수 있는 장비 착용 후 다이빙'이라는 의미다. 즉,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수중 스포츠였다.


"전역했어요."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수고했어."


밝게 웃는 아버지의 희끗희끗한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감정이 스며든다. 애증. 실직하신 후, 다른 직업을 구할 노력은 안 하시고, 집에만 계시며 티브이만 보셨다. 그때부터였다. 아버지와 마찰이 잦고, 사이가 안 좋아진 시기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닮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를. 어릴 적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힘없는 몰락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가슴에도 눅눅한 상처를 주었기에.


"네."


그래도 오늘은 기분 좋은 날. 애써 밝게 웃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니, 직장에서 퇴근한 어머니와 동생이 돌아왔다. 삼겹살을 구우며 계획을 이야기했다.


"스쿠버 자격증을 따려고요."


"일단 취직 먼저 해야 되지 않겠니."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표정. 당연히 할법한 말씀이지만, 반발심이 들었다. 아버지나 티브이 좀 그만 보시고, 나가서 뭐라도 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맥주 탄산과 함께 억지로 삼켰다.


"취직은, 일단 스쿠버 자격증 따고,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 쉬고 싶을 때까지 쉬어라. 고생했으니."


"형 고생했어."


어머니와 동생은 밝게 받아주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못마땅하신 듯, 중얼거렸다. 


"근데, 아버지는 왜 고기 안 드세요."


고기는 쳐다보지도 않으시고, 물에 밥말아 드신다.


"요즘......속이 안 좋아서."


"병원이라도 가보세요."


"거길 왜가. 병이라고 생각하면 다 병이고, 괜찮다고 생각하면 다 괜찮은 거야."


"......"


더 이상 말하면 분위기가 안 좋아질 듯 하여, 입을 다물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석관이와 승철이를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


"다른 세상이구나...... 여기는."


지하철에서 내려 9번 출구로 나오니, 자유, 갈망, 화려함이 떠오른다. 아침까지만 해도, 통제, 규율, 적막함이 가득했는데. 신기했다. 같은 나라가 이렇게 다르다니.


"어. 염병아 고생했어! 아니, 울보인가. 예전에 전지연한테 고백도 못 해보고 울었잖아. 옥상에서."


승철이와 석관이는 먼저 와있었다.


"아직도 기억하냐. 기억력 좋네. 그래, 히드라와 썩었네야, 일찍 왔네."


"그럼. 고생한 김 대위님을 맞이해야 하니까. 충성!"


"경례 그지같이 할 거면 하지 마라, 하 중위. 통신선로는 깔았냐? 또 샤워하면서 울래?"


"하아. PTSD 오네."


우리는 서로 독설 섞인 농담을, 몇 마디 주고받고 근처 술집으로 들어갔다. 지하 1층. 조용한 술집이었다. 냅킨에 노래를 적어내면, 틀어주는 그런 뮤직바. 다만, 가요는 안된다. 이제는 연락이 끊겨버린 성중이가 생각났다. 그놈도 가요는 싫어했지.


"여기 분위기 좋네."


"그럼. 군인회관하고는 다르지."


군대에 면회 오면 가족들과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을, 군인회관이라고 한다.


"그러네."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약속했던 여행 이야기를. 거기에 내가 스쿠버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하니, 모두 함께 하자고 했다. 장소는 필리핀 세부로 정했고, 파디라는 단체의 스쿠버 기초 자격증인, 오픈워터를 따기로 했다. 딱 1주일 걸리는 코스. 다만, 여행은 2주로 잡았다. 자격증을 따고, 승철이가 추천한 반타얀이라는 섬에서 스쿠버를 즐길 생각이다.


"꿈만 같네."


6년 4개월 동안, 산속에 있다가 이렇게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금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만 그래."


석관이의 대답.


"그래도 군대보다는 뭘 하든 좋지. 다시 한번 전역 축하해. 여기는 군대에 비해 시간이 무척 빠르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승철이의 조언.


"하핫. 애송이들이 캡틴 코리아한테 주제넘은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마시자."


웃음과 함께 술잔을 들었다. 잔잔한 음악이 귓가를 적시고, 농밀한 분위기는 우리 대화를 뜨겁게 달궜다. 우리는 이미 여행지에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업체와 숙소를 알아볼 테니, 너희들은 중대장을 믿고 따라와라. 토 달면, 중대장은 실망한다."


"옙. 알겠습니다!"


친구들이 장난스레 대답했다. 셋 중에서는 내가 제일 한가하니, 나름 친구들을 위한 배려였다. 업체를 알아보고 출국까지는 딱 한 달 걸렸다. 준비부터 설렜고, 드디어 공항.


"냄새부터 다르네."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 세부에 도착했다. 정돈된 온기와, 시원한 야자수가 공항에서부터 우리를 반겼다. 세부 막탄의 리조트에서 픽업서비스를 제공했고, 다음날부터 수중 훈련이 시작되었다.


...


그 리조트에서 머물며, 오전에는 이론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에 들어갔다. 볼을 꼬집었다. 아프기만 하다. 꿈은 아니군. 두려웠다. 혹시, 꿈에서 깨면, 소위로 다시 돌아가 있는 건 아닌지.


"망고 정말 맛있다."


석양을 보며 마시는 망고 스무디는, 정말 예술이었다. 물속에서는 항상 2인 1조로, 손을 잡고 훈련받았다. 안전 문제 때문에 그렇단다.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은, 우리 포함 8명이었다. 그래서 딱 4쌍이 나오는 데, 승철이는 석관이와 투덜대며 손잡고 다니고, 나는 유이라는 귀여운 일본 여자애랑 짝이 되었다.


"야. 이거 왜 이리 불공평하냐."


승철이의 볼멘소리.


"뭐. 남자 둘이 잘 어울리는구먼. 손 꼭 잡고 다녀."


나의 비아냥거림.


"너 전역하자마자, 이승 전역하고 싶냐."


석관이의 일갈. 허나, 기분은 좋았다. 유이는 귀여웠으니. 다만, 석관이 승철이 커플은 미안했다. 바다 생물들에게 보여주기에.


"너희들의 질투는, 여유 있는 자가 감내해야 하는, 세금 같은 거야. 승철이는 알지? 내가 무슨 소리하는지."


나와 함께 승철이가 부대 전입을 하니, 그가 했던 소리다. '너의 6년 4개월 군 생활에 비하면, 내 군 생활은 빛의 속도 일 테니까, 널 보는 매일이 행복할 거야. 듣기 싫으면, 날 욕해도 돼. 여유 있는 자가 감내해야 하는, 세금 같은 거니까.'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다더니, 이제야 한다.


"그래. 그래. 아주 좋겠다. 아니......사실 너무 부럽다."


유이는 혼자 온 덕분에 우리와 함께 어울렸고, 다 같이 이곳저곳을 놀러 다녔다. 고층 빌딩 꼭대기를 걸을 수 있는, 스카이 워커. 가끔은 필리핀 햄버거 가게인, 졸리비에서 식사를 한다. 날 잡아서, 유명한 루프탑 바도 들렀다. 그녀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적이 있어, 한국말이 유창했고, 집은 도쿄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고, 반타얀을 놀러 가기로 했다. 다만, 유이는 일본에서 친구가 온다고 하여 오랜만에 셋만 움직이게 되었다.


"예전에 가봤는데, 반타얀 섬 정말 좋아."


승철이는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온 적이 있어, 그때 가봤다고 한다. 나와 성중이가 열심히 아르바이트했던 시기다. 덕분에 영어로 하는 긴 대화는 승철이가 다 한다. 발음은 별로지만, 의사소통은 문제없었다. 세부에서 택시를 타고 3시간 정도 가면 하그나야 항구에 도착한다. 거기서 다시, 배로 1시간 정도 가야 반타얀이라는 섬에 도착할 수 있다. 섬에 가기 전, 내가 물었다.


"그 섬은 얼마나 좋은데?"


"너, 전역만큼 좋지."


승철이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아냐. 진짜 좋아."


승철이 말로는 필리핀 다른 섬에 비해 덜 알려져, 관광객도 적고 정말 쉬기 좋다고 한다. 도착했고, 정말이었다. 도착했을 때는 해 질 녘. 맑은 하늘이 설레는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고, 물속이 투명한 덕분에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헤엄치는 모습이 보였다.


"낙원이네......"


다 함께, 감탄사를 연발했다. 어느새, 주변은 어두워졌고, 구운 고기와 새우, 망고 스무디와 맥주를 마시며, 썬배드에 누웠다. 강원도보다 많은 별. 우리는 말수가 적어졌다. 다만 풍경을 보고, 파도 소리를 들었다. 그뿐일진대, 이보다 완벽한 순간은 없었다. 다음날은 리조트에서 스쿠터를 빌려 섬을 둘러보았다. 적당한 습기와 촉촉한 상쾌함이 폐 속을 헤집었다. 풍경 사진도 찍었으나, 정말 아름다운 장소에서는 한참 동안 가만히 서서, 눈에 담았다.


"여기에 라이브 카페가 있을 텐데......"


승철이의 소개로 간, 어느 라이브 카페의 밴드 공연은 수준급이었다. 홍대 지하 술집처럼, 냅킨에 신청곡을 써내면, 밴드가 들려준다. 나는 Pink라는 가수의 'Just give a reason'이라는 곡을 써냈다. 보컬이 연주 전, 누가 써냈냐고 물었고, 용감하게 손을 들었다.


"Let's sing together. come here!"


같이 부르자고 한다. 물론 거절했다. 조선왕조 500년 전통의 유교문화와는 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노래 실력이 보통만 됐어도 나갔을 텐데, 남들을 위해 나가지 않았다. 내 노래 실력을 아는, 석관이와 승철이의 만류도 한몫했다.


셋째 날은, 섬에서 모터보트로 40분 더 들어가면 나오는 '스카이 아일랜드'라는 섬에서 스쿠버를 했다. 표현력이 부족해, 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적합한 말을 찾지 못했다. 비싼 사진기조차, 그 풍경을 제대로 담지 못했으니. 물 반 고기 반. 진부하지만 정확한 표현. 오후에는 나무에 걸려있는 해먹에서 쉬었다. 해변에서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자신이 만든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들고 다가온다.


"잔돈 줘 봐."


석관이와 승철이가 모아준 동전을 가지고, 하나 샀다. 티 없이 맑은 미소. 그 미소에 우리도 함께 웃었다. 그렇게 많은 순간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고, 세부로 돌아왔다. 6년 4개월 동안의 고단한 군 생활은, 높은 강도, 잦은 빈도의 행복 앞에 이미 추억에 되었다.


...


"좋아한다고."


세부에서 귀국하기 전날, 유이가 말했다. 그녀 마음을 알았다. 나도 그녀를 좋아했다. 허나, 나는 집에 돌아가면 백수다. 오랫동안 대화했고, 맥주를 먹었으며, 함께 밤을 보냈다. 내 처지를 말했고, 그녀도 이해했다. 우리는 친구로, 남기로 했다. 다만, 단서가 붙었다. 내가 취직하면 반드시 일본으로 넘어가 그녀를 만나기로.


그렇게 나의 전역파티는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반갑게 인사했으나, 집안 분위기는 무거웠다. 


"아빠, 위암 4기래."


동생의 말에, 행복함과 평화로움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숨이 턱 막혔다. 장르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다큐멘터리로. 그것도 지독하게 쓸쓸한. 책상 앞에 놓인 조개껍데기 목걸이만이, 이제 추억이 된, 행복한 내음을 살짝 풍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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