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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Jun 21. 2024

고약한 숫자

반숫자 레지스탕스

숫자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연봉이나 재산이 행복을 결정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특히 다른 친구와 비교를 하게 되는 10대 때, 나는 갖고 싶은 건 모두 가졌었기에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정말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낀 건 스무 살 때 자취방에서 지내게 된 첫날이었다.

당시 모스트였던 U2의 Beautiful Day를 들으며 침대에 누운 순간 느낀 자유로움은 내 삶의 지향점이 되었다.


이유는 조금 뻔하다.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밑에서 자란 자식이 행복했을 리가.

그래서 정신적 행복만을 좇아왔다.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면서 잘 될 거라고 믿을 때에도 특별한 목표를 세우지 않았었다.

얼마를 벌겠다, 얼마짜리 집을 사겠다, 얼마짜리 회사로 키우겠다, 이런 게 아닌 재미있으니까 잘 될 거다, 먹힐 만한 아이템이다, 정도였다.

그냥 도전할 때의 고양감이 좋았고 머리를 짜내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기분이 좋았다.

사업적으론 재능이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평생 안 하던 SNS와 유튜브를 하기 시작하고,

하드에 썩고 있던 글을 공개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팔로워 수, 조회수, 좋아요 수.

주식 단타 치는 사람처럼 들여다보게 되었다.

조회수 하나라도 더 끌어보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사람 줄을 세운다면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은 뉴비가 호응이 있을 리가 없는 세계라는 걸 안다.

시간과 운과 능력 세 가지가 골고루 필요하다.

운과 능력치가 뛰어나면 시간은 무시해도 되겠지만.

어쨌든 숫자에 집착하는 게 의미 없다는 걸 아는 데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 이거구나.

이제야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한다.

가진 게 부족해서 속상해하던 사람들,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의 자존감 떨어트리던 사람들을 보고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렇게 스스로를 절벽으로 밀지 못해 안달일까.

왜 꼭 남들과 비교하며 살고 싶어 할까.

왜 꼭 돈이 행복을 가져올 거라고 믿는 걸까.

왜 자신이 가진 것은 고마워하지 않고 결핍에만 집착할까.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 것이다.

팍팍한 인생살이에 지쳐서 갖지 못한 것이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기대한다.

그런 기대감이 있어야 쓰러지지 않고 내일을 살 수 있다.

평생 오늘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끔찍한 일이 없을 테니까.


그런 사람들 앞에서

숫자에 집착하지 마라,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라와 같은 말은 하등 쓸모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좋은 말인 줄 다 알지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말 들.

그들에겐 하루를 지탱할 수 있게 하는 건 기대감이지 좋은 말은 아니니까.


유전자를 베이스로 한 경험이 쌓아 올린 생각과 느낌은 좀처럼 바뀌기 힘들다.

금언으로 삼고 따르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되든 안되든 현재 자신을 괴롭히는 원인을 알고, 그로 인해 삶이 힘들어지면 어떻게든 바꾸려고 애쓴다.


애쓰다 보면 언젠가는 나아진다.

그것이 자신의 문제라면 정말 언젠가는 나아진다.

앞에서 쓸모없는 말이라고 했으면서 나아질 거라고 하는 데 모순이 있다.

쓸모없는 말과 개선될 수 있는 말의 차이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패배자, 몽상가라고 매도하거나 한 귀로 듣고 흘리지 말고 진지하게 경청하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반성해야 할 게,

나조차도 성장기 때 유일한 결핍인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온 점이다.

이건 DNA처럼 나와 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결핍에 대한 집착이었다.

결핍을 안겨준 것도, 평생을 타인과의 비교라는 굴레를 겪지 않도록 해준 것도 엄마이니 정말 애증의 관계다.


생 텍쥐 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장미 넝쿨이 있는 아름다운 저택을 봤어요'라는 말에 아무도 호응 안 하다가

'얼마짜리 저택을 봤어요'라고 하니 모두 관심을 가졌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아마 인류가 살아있는 동안 숫자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항하는 반숫자 레지스탕스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뭐든 좋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조금 더 편하게 인생을 살 수 있는 가치관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게 옳다.


숫자로부터의 탈출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우선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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