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뇨뇨 Jun 06. 2024

하자 있는 인간

인정과 승화

친구들에게 왜 결혼했냐고 물어보면,

'그냥 서른도 넘었고 결혼해야 할 것 같더라고'

'결혼을 하긴 해야 하니까 사귀던 남친이랑 했지'

이 정도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가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가는 것도 너무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러니까 대학교 졸업하고 회사 들어간 다음 결혼하는 건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가는 것만큼이나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순서로 여겼을 것이다.


남자들도 비슷한 대답을 하긴 했는데 좀 신경 쓰이는 대답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어른이 된다는 기분이 들어서요'

'결혼을 안 하면 뭔가 문제 있는 사람으로 취급될 거 같아서요'


댕기머리를 하고 다니다가 혼인 서약을 맺으면 상투 틀면서 어른 대접을 해주는 시절은 아니지만, 결혼을 하고 책임감을 가지게 되면 인격적으로 성숙할 여지가 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요즘은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피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기반 잡은 건실한 사람이라는 인식도 추가로 줄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나쁜 건 아니지만 둘 다 포커스가 '나'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있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개인의 의식과 전통적 인식이 부딪혀 기존의 룰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가져다준다.






작년 말, 83년생 중 30%가 미혼이라는 기사가 떴다.

그중 여자가 22%였으니 남자는 40% 가까운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적령기를 아득히 지난 사람을 보는 눈빛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현재 20대들이 40대에 들어선다면 사회적 인식도 꽤 많이 바뀌어있을 것 같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자는 노처녀 히스테리, 남자는 도태남이라고 비하한다.

둘 다 뭔가 하자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원색적인 비난의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훌륭한 외모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자가 결혼을 안 했다고 하면 뭔가 심각한 결함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을 가졌다.

여기에 대해서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결혼에 대해 후회하는 여자 사람은 많이 봤지만 남자 사람은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건 참고할 필요도 없고 판단에 악영향을 미치는 주변피셜이지만 은근히 생각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남자가 종족 번식의 본능이 더 강하고, 시댁보다 더 마음 편한 처가라는 점에서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가 여자보다 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보고 나무라는 형상이다.

스스로가 선입견 없이 산다고, 기존 사고의 틀에 매여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자부했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한다는 게 참 부끄럽다.

그러니 파도 속의 물방울처럼 사회적 통념에 몸을 맡기고 살아온 사람들이 싱글을 보는 부정적인 눈빛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나를 나잇값도 못하고 결혼할 능력 없는 하자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차피 미혼이든 기혼이든 사회 속에서 살아야 된다.

남들의 시선 따위 다 필요 없어, 나만 좋으면 그만이야!라는 생각 물론 좋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라면야.

많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불가능하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신경 쓰지 말자'라고 되뇌다가도

한 번 스위치가 눌리게 되면 원망과 우울감이 밀려들어 올지도 모른다.


마음 터놓고 얘기할 친구도 없어진 마당에 우울감을 안고 방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보이는 것만으로 행복을 단정 짓는다.

돈을 잘 버니까 행복하겠지? 예쁘고 잘생겼으니까 행복하겠지? 젊으니까 행복하겠지?

좋아 보이는 포인트 몇 개로 타인을 부러워하고 나를 깎아내린다.

하지만 네 살짜리 아이도 어린이집에서의 친구 관계에 대해 누구보다 진지하고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걸 보는 어른들은 마냥 귀엽겠지만 당사자는 태어나서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을 것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이혼율이 높다는 얘기가 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경제력이 행복을 좌우한다는 세간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혼은 불행이고 결혼 생활 유지는 행복인가?

이혼하고 싶어도 당장에 달라지는 생활 수준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못하는 게 아닌가?

맞지 않는 관계에서 벗어나 찰떡같이 맞는 사람을 만날 기회를 얻는 게 정말 불행일까?


내연녀를 아무렇지 않게 집에 들이는 자산가의 아내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도 한다.

백화점에서 카드를 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되니까.

30대부터 주구장창 바람을 피우는 남편이 있는 아내가 모임에서는 세상 행복해 보인다.

우리가 판단하는 행복이란 얼마나 결점을 잘 가렸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계속 말라가는데, 아이는 계속 큰다.

라고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SNS로만 보면 정말 행복해 보이는데도.


사회의 통념에 따라 결혼을 안 한, 못 한 사람은 하자 있는 인간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한 사람 역시 하자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모든 인간은 하자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하자는 자신의 결핍만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건 당연하고 사소한 거고, 결핍은 너무도 중차대해서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하자.

그 하자를 어떻게 승화시키고 사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