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을 내고 진행한 강의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밑바닥을 치는 순간을 몇 번 마주한다. 나 역시 그랬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그때가 인생에서 변화를 줘야 하는 시점이었다. 당시에는 쓰라렸지만, 견뎌내다 보니 한 단계 성장해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경험으로 다치고 회복하며 강해진다. 아니 강해져야만 한다.
사업을 시작 하기 직전에 나는 이직을 앞두고 있었다. 기존에 매니저로 일하던 필라테스 센터를 그만두고 호텔에 소속된 필라테스 스튜디오로 새 출발을 결정한 상황이었다.
입사 하루를 앞두고 호텔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인사 담당자의 초조하고 다급한 목소리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알고 보니 호텔과 다년간 제휴를 맺은 필라테스 협회가 있었고, 그간 협회에서 지정한 선생님들이 호텔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사 담당자 말로는 내가 해당 협회 출신이라서 자신들이 나를 협회에 추천하면 승인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인사팀의 예상과는 달리, 협회 측에서는 본인들이 직접 지정하는 강사만 채용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는 것이다.
필라테스 업계는 서류가 아닌 구두 계약을 체결하는 곳이 대부분이기에 이처럼 사전계약사항을 취소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99%는 합격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던 인사 담당자의 갑작스러운 번복에 나는 당황했다. 그는 나에게 무척 미안해하며 협회와 계약이 곧 끝날 것이니 나중에 꼭 함께 일하자고 했다. 나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이미 기존 직장은 그만 두기로 결정한 상태였고, 더 이상 내가 일을 해보고 싶은 곳은 없었다. 막막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기존 직장에서 내가 담당하던 고객들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고객들은 등록 시, 선생님이 바뀌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과 운동 기간이 만료되면 이용이 불가하다는 규정을 동의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된다.
문제는 고객들이 내가 아닌 다른 선생님에게 양도된다면 남은 횟수를 모두 환불하겠다고 한 것이다. 개중에는 나에게 레슨을 받기 위해서 왕복 2-3시간의 거리를 너머 배우러 오는 장거리 회원님들이 있었다. 심지어 한 분은 운동 기간이 만료되어있었다. 센터에서는 계약서를 이유로 그들에게 환불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고심 끝에 고객들의 환불만큼은 꼭 내가 책임을 져야겠다고 결론지었다. 결국 나는 고객들이 환불을 받을 수 있도록 센터와 협상했다. 결국 환불이 가능하도록 마무리 지어졌지만 고객들이 물어야 할 환불 페널티가 상당히 컸다. 나는 고객님들이 물게 되는 환불 페널티만큼 직접 보상 수업을 해 드리기로 약속했다.
표면적으로는 내가 고객들에게 수업을 해야 하는 의무는 없었다. 하지만 모두 나에게 장기간 배운 분들 이기도 했고 나 하나만 바라보고 멀리서 운동하러 온 분들이었다. 그중에는 부모님께 졸라서 힘겹게 등록한 어린 회원님도 있었다. 정황을 잘 아는지라 그 상황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동시에 무척 난감했다.
오래전에 함께 일 했던 대표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곳의 일부 공간을 대여했다. 물론 나의 사비(私費)를 지불하여 공간을 마련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기존 회원님들이 손해 본 만큼의 수업을 해드렸다. 난생처음으로 내 돈을 지불하며 일했다. 물론 회원님들에게는 이 사실을 숨겼다. 속 사정을 말했다면 그분들은 나에게 수업을 받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 나에게 힘이 없으면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절대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를 지키지 못하는 것보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내게는 더 가슴 아픈 일이었다.
‘선의도 능력이 있어야 베풀 수 있는 것이구나. 내가 나를 지킬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도 그 고결한 인생관은 그저 신기루구나.’
그날로 나는 가장 멋진 일인자 옆을 서포트하는 가장 멋진 이인자가 되겠다던 기존의 오랜 꿈을 접었다. 대신 내가 일인자가 되어 능력과 힘을 기르겠다고 다짐했다. 더 나아가 비로소 그 능력과 힘을 얻었을 때, 나는 그것을 정의롭게 사용해서 앞으로 사회에 선순환을 만드는 데에 기여를 하겠노라 다짐했다.
내 돈을 내어가며 수업을 진행한 그 일이, 나의 꿈과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