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디진 Oct 23. 2021

퇴사하니 아메리카노가 달다

프롤로그

9AM 강남역 삼성타운

아침 일찍 필라테스 강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근처 카페로 들어간다. 카페 내부는 출근길에 커피를 픽업하러 온 삼성맨들로 붐빈다.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크림치즈 얹은 베이글을 한입 베어 문다. 불과 엊그제 삼성맨이었던 내가 삼성맨들을 신기한 듯 구경하며 커피를 마신다.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5명 남짓 되는 젊은 남자 직원들이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이 분들은 여유가 조금 있네. 상사가 출장 갔나 보다.’

회사 짬밥 5년이라고 상황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흰색 와이셔츠에 슈트 팬츠를 입은 그들이 몸에 지니고 있는 사원증을 얼핏 보니 눈에 익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나도 내 몸의 일부처럼 늘 지니고 다니던 네모난 그것. 한 10분쯤 흘렀을까. 높은 직급으로 보이는 한 신사가 유리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 직원 전원이 로봇처럼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순간 카페에 있는 모든 시선이 쏠렸다. 그들은 신사를 향해 모두 90도로 인사하더니 마시던 커피를 들고 쫓기듯 무리 지어 이내 카페를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도 하마터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설 뻔했다.


불과 얼마 전 나의 모습인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함께 또다시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여유로워 보인다 했어.’ 그들이 빠져나간 카페의 일부 공간이 휑하고 고요하다. 신사는 커피를 주문하고 주위를 멋쩍은 듯 둘러보더니 이내 나가버렸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카페는 금세 북적인다. 베이글을 마저 먹고 다음 수업을 준비하러 센터에 다시 들어갔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 대신 운동을 하러 오는 회원님들이 더러 있다. 오후 12시에 온 나의 고객 역시 그러한 케이스다. 작은 체구에 쇼트커트 머리를 한 그녀는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 나도 삼성에서 디자이너였는데 어쩜 우리가 ‘필라테스 강사’와 ‘회원’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물론 그분은 나의 이력을 알리 만무하다.


 “선생님 저 정말 회사 그만두고 싶어요. 어제 또 밤샜어요. 죽겠어요. 저희 회사가 지금 고과 시즌이거든요? 고과가 무엇이냐 하면요 블라블라...”


‘네 저도 그 마음 무엇인지 알아요’ 마음속으로 그분에게 대답한다. 삼성에서 디자이너라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 충분히 알고도 남는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량, 사람 스트레스, 그리고 삼성의 디자이너라는 알량한 부심이 뒤엉킨 채 마음속은 늘 전쟁 중이다. ‘관둬? 아니야. 내가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데. 게다가 그만두고 내가 무얼 하겠어. 조금만 더 버텨보자. 아니다. 그냥 관둬?’의 무한 반복이다.


오전 8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오늘의 스케줄을 확인하는 것이다. 실눈을 뜨고 핸드폰에 있는 오늘의 수업 스케줄을 확인한다. 오늘 첫 수업은 오후 늦게 있다. ‘유후~더 잘까?’ 이불속에서 부스럭 거리며 창문을 바라본다. 커튼 사이로 밝은 빛줄기가 방으로 들어온다. 무척 개운하다.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리다 이내 침대에서 내려와 이불을 정리한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연다. 창밖의 맑은 공기가 방 안으로 훅 들어온다. 아침 공기가 무척이나 상쾌하다. 방 문을 열고 방을 나오니 커피 향이 집안에 가득하다. 거실로 들어오니 토스트의 고소한 향과 커피 향이 어우러져 부엌에 가득 퍼져있다. 사과는 예쁘게 깎여 접시에 놓여있다. 계란 프라이를 부치고 계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우리 집 조식 담당이시다.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 놓인 빵과 계란을 먹으며 여유롭게 아메리카노를 음미한다. 코끝에 퍼지는 커피 향이 참으로 향기롭다. 매일 아침 바로  시간이 나의 하루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8 ,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간절했던 소원은 아침에 따뜻한 커피  잔과 토스트 한쪽을 여유롭게 먹으며 아침햇살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얼마든지 그것을 누릴  있다.


피식. '이게 뭐라고.' 요란한 알람 소리에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겨우 일어나서 허겁지겁 출근 준비를 시작했던 지난 과거는 잊은 지 오래다.


그때는 하루에 15시간씩 일했다. 지금은 하루에 3시간 일한다. 연봉은 똑같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