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높이만큼 바닥으로 꼬꾸라 진다
단식투쟁과 오빠의 한마디
하고 있는 일이 매번 바뀌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다...말하기가 좀 머슥해요.
문화예술하시는 아티스트분들도
그 부분에서 고민이 많으시더라구요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비평가의 꿈을 꾸었어요
예술은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다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죠
수능을 끝나고 단식투쟁을 했어요
연극영화과를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은령아 괜찮아. 좋은 연극동아리가 있는
대학교로 가면 되는거잖아
꿈에 대한 좌절과 그 절실함
끼를 펼치고 싶었는데
막상 연극동아리를 하고보니
배우...아무나 하는게 아니더라구요
정말 절실했어요
그렇게 하고 싶은 연극동아리를 때려칠 만큼.
이것마저 놓치면 안된다는 마음에
죽을 각오로 했죠
그렇게 힘들게 들어왔는데
왜 공허한지
그렇게 힘들게 들어왔는데
5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때 연극인을 꿈꾸었던 한사람으로
방송으로라도 만나는 연극인들과
너무나 괴리된 삶에서
이걸 원한건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서 걱정하실까봐...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나중에 아시고는 감사하게도 넘어가 주셨어요
어느 순간 아나운서가 아닌
스튜디오뮤지컬로 소개되는걸 아셨는지
이내 찾아온 우울증에
일어나 엉엉 울기도
비평이라는 것이
그렇게 로맨틱하지 않았어요.
보수적이기도 하고...
그때부터 방황이 시작된거죠.
근데 정말 안 부르더라구요.
단 한군데라도
내가 뭘 저지른거야...라는 비관과 함께
이젠 어떻게 살아야하나.
참 깊은 수렁에 빠졌죠.
뭐라도 해야했어요.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나섰죠.
뭔가를 쏟아내야만 했던 시절
학교로 갔어요
매학기 진행되는 학생작품들이 습작으로 사라지니까
연습을 지켜보고 모습을 담아 스토리 북을 만들어줬죠
그제야 마음이 뚫리는 것 같더라구요
원한건 아니었지만 신기했어요
아침에 눈을 떠보니
제 글이 올라왔더라구요
사진을 찍어 줬던 후배들이
함께 해 줬어요
참 감사하고 고마운 인연이죠
그런데 시각장애인분들이
많으시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분들께는 이 오디오극이
있어도되고 없어도 되는게 아니라
꼭 있어야 되는 거였어요
결심만 있었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공연을 한다는 결심만 있었지
정말 아무런 것이 없는 상태였어요
A toZ 모두
저희가 기획해야 하는 것이었죠
첫 공연의 기억이 아직도새록새록해요.
동작 하나하나에 빵빵 터지시는 것을 보곤
얼마나 뿌듯하던지.
사실은 어쩌다 보니
저 역시 뜬구름 같은 거에
나를 끼워 맞추며 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풀리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죠.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았던 기억
그 경험이 없었으면 스튜디오뮤지컬은
이미 끝나 있을 지도 몰라요
저는 어쩌다 보니
장애인 분들을 위한 일을 하게 되었어요
그분들이 먼저 절 찾아 주신거죠
그 감사함으로 저는
저의 꿈을 피우고 있답니다
Q. 청년을 위한 DREAM 매뉴얼
카메라를 들고 찍어준 친구들이
함께 꿈을 딛는 동료가 되어 준 것 처럼
진심을 담아 자신을 깨워 보세요
알고 보면 진심이
살아있는 가장 큰 자산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