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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oad Movie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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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Sep 14. 2022

도시 홍콩을 거닐다

2015.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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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전보다 짜증이 늘었다는  여행하면서도 종종 느낀다. 여행 중엔 모든 게 마냥 좋았던 나를 알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여행 중에는 더욱 여실히 보이는 게다. 얼마 전 산부인과에서 내 호르몬 수치가 갱년기 여성 수준이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내 몸이 예상 밖의 상황을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핑계가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 게다가 내 곁을 스치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마치 여기가 도시라는 걸 보여주듯 사무적이고 가끔은 화난 것 같다는 걸 느끼며, '짜증 좀 는 것쯤이야' 생각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식으로 넘어가면 나의 미래가 너무 후줄근할  같아 반성을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아닌 게 아니라 케리어를 끌고 길을 헤매며 걷는데, 혹여 내가 길이라도 물을 게 두려운 듯 내 눈을 피하는 사람들을 나는 여럿 보았다. 그래서 다가가려다 되돌리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적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곧 ‘여기 도시지 참’ 하는 생각과, ‘나도 뭐’라는 두 가지 이유가 연이어 떠오르며 서운했던 마음이 금세 사그라들었다. 결국 나 역시 여행자라는 마스크를 쓴 채 화와 짜증을 잠시 유예시키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으므로. 


 이런 생각이 들자 차라리 부정하지 말고  부정적인 변화도 직시하는 어른이 되어야겠지 싶다. 아닌 척 숨는 것보다는  비겁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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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여행은 원래 친구와 둘이 계획했는데, 3박 4일은 좀 아쉬워 나만 하루 먼저 홍콩에 도착한 터였다.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놔두고 나오니 약간 허기가 느껴진 나는, 숙소 근처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기 위해 눈에 띄는 카페 겸 클럽에 들어갔다. 보통 늦은 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술 한 잔씩 하는 곳 같은데 나는 오후와 저녁 사이 한적한 시간대에 들린 덕에 카페를 조용히 누릴 수 있었다. 원래 간단히 디저트와 티 정도만 주문해 먹으려다 플로렌틴이 먹고 싶어져 주문해 버렸다. 저녁에 호주에서 룸메이트였던 홍콩 친구 제이와 딤섬을 먹기로 했는데, 그저 내 위장이 잘 견뎌주기 바라며 객기를 좀 부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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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와는 거의 2년 만에 만남이었다. 춘천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며칠 되지 않았을  제이가 아이 선물을 사들고 춘천까지 와서 본  마지막이었으니. 이번에 제이는 내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주면서 유명한 딤섬집을 데려가 내게 저녁을 대접해주었다. 제이는 국경을 뛰어넘어 내게 우정이라는  느끼게 해 준 친구  하나다. 사실 당시 호주에서 주변 한국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제이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제이를 보기도 전에 들었던 그녀는 시끄럽고 특이한 아이. 하지만 6개월을 같이 살면서 느낀 제이는 그저 시끄러운 친구가 아니라,  깊고 강단 있으며 배려심 있는 친구였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호주 생활을 마치고도 5년 넘게 1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각자의 나라에서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이번엔 제이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그림을 함께 그려보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늦은 밤까지 함께 하다 두 사람과 헤어지고 숙소에 돌아가 이 날 하루를 돌아보면서, 나는 언제 어디서 만나도 이렇듯 반갑게 만날  있는 친구가 세계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 차가운 도시와 짜증스러워진 나를 느꼈던 낮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이 마음을 더 느끼고 싶어 자는 게 아쉬울 만큼,   이 기분을 더 길게 리겠다고 버티고 싶을 만큼. 슈퍼맨이 되고 싶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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