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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oad Movie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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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Jun 13. 2023

생에 첫 은하수

2007,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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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3시 반 경. 몽골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설렘과 졸림 사이에서 싸우고 있었다. 세 시간여의 사투 뒤 드디어 창밖으로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야말로 초원 중간에 덩그러니 놓인 공항이 보이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가까운 내가 이 땅을 밟는다는 감격에.


 이번 여행은 몽골 선교지 방문이 주목적이었다. 교회에서 반쯤 여비를 대주었지만 나머지는 내가 준비해야 했는데, 당시 학비를 벌며 공부하느라 나는 이 선교 여행에 필요한 여비를 준비할 여력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나를 가르쳐주신 몇몇 선생님들께서 내 여비를 전부 마련해 주신 덕분에 나는 몽골에 갈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고학생에 가까웠던 내게 이 여행은 그 자체로 이미 기적이었던 거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한 여름인데도 차가운 아침 공기가 코를 통해 내 몸 끝까지 들이찼다. 지금껏 가본 여느 공항들과는 비할 수 없이 '허술한' 공항 밖으로 나가자, 큰 승합차와 함께 선한 인상의 선교사님이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손님이 익숙한 선교사님은 처음 만나는 우리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고, 짐을 싣고 짧은 인사말을 마친 뒤 베이스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앞으로 5일간의 일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5일간 우리는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초원의 작은 마을인 울드린 두 지역을 오갈 예정이었다. 울란바토르 내 전쟁 기념관과 역사박물관, 재래시장과 광장 등을 방문하면서 본 몽골의 '도시'는 딱, 시골의 여느 시내를 보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시내에 있는 여느 관광 명소들보다, 쉬는 사이 틈틈이 초원을 걷거나 보는 시간이 좋았다. 띄엄띄엄 얽혀 있는 집들 사이로 조금만 걸어가면, 한국 어느 곳에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이 펼쳐지는데, 초원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 낯선 풍경을 놓칠 새라 당시 한창 빠져 있던 필름 카메라로 담고 감탄하느라 얼마나 바빴는지 모른다.



 초원과 더불어 몽골에서 봐도 봐도 신기했던 건, 한국어를 구사하는 몽골 사람들의 유창함이었다. 학창 시절 그리고 국문과 수업을 들으며 우랄-알타이어라든지 몽골과 우리네 언어의 뿌리가 같다는 등의 내용을 배운 건 기억나지만, 한국에서 오래 산 몇몇 외국인 방송인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의 한국어 실력은 뛰어났다.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속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발음하는 통역사가 신기해서, 그녀가 말할 때마다 얼마나 뚫어지게 쳐다봤는지 모른다.


 울란바토르에서 이틀쯤 보내고 우리는 이 선교 여행 중 가장 중요한 행사를 위해 울드린이라는 마을로 향했다. 가는데 세 시간쯤 걸렸던 그 길은, 내게 오프로드가 무엇인지를 난생처음 알려준 여정이었으므로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울란바토르에서부터 내내 한국 자동차를 극찬하던 몽골인 운전자가 왜 그토록 칭찬을 했는지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조수석에 탄 한국 남자분들이 세 시간을 달리는 동안 초원과 숲, 질퍽한 흙탕길 등 길이라고 불리기 어려운 길을 운전하는 몽골인들 옆에서 얼마나 기겁을 하던지! 예컨대 '이 길을 간다고?'라는 의미가 담긴 탄성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나를 비롯해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놀라움 대신 멀미를 느껴야 했지만, 그 거친 이동조차 나는 전혀 싫지 않았다. 차 천장에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머리를 박아가면서도 시선을 거둘 수 없게 만드는 창밖 풍경 때문이었다. 유명 제지회사의 상표를 떠올리는 뾰족한 나무들, 플라타너스로 가득 매워진 산등성이, 그리고 내게 '끝없이 펼쳐지는'이라는 수식어의 지경을 넓혀준 평원을 보는 내내 나는 그야말로 탐험가의 심정이 되었다. 게다가 몽골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궁금해할 게르에 들어가는 경험까지 할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동하며 사는 초원의 몽골인들에게는 손님맞이가 무척 반가운 일이란다. 그들의 그 문화 덕분에 문득 게르의 문을 두드리고 그네들의 소중한 식량인 말 우유로 만든 음료와 음식들을 대접받았던 일은, 이제 막 여행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 내게 정말이지 새롭고 멋진 경험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멋지고 새로운 것들에 며칠간 들뜨기만 하던 마음이, 목적지였던 울드린의 작은 마을에 도착하면서 차분히 내려앉았다. 우리가 준비한 이벤트는 쉽게 말해 마을 잔치였는데,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 집들을 방문하면서 만난 사람들, 특히 아이들 때문이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생각해 보니 '부끄러움'이라는 말 뿐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려운 삶을 사는 아이들과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눈가에 자꾸만 눈물이 차오르는 걸 누르느라 혼이 났다. 몽골의 남자들은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 떠도는 사람이 많아 소년 소녀 가장이나 편모 밑에 자라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하여, 어른보다는 의젓한 어린아이가 더 어린아이를 지키는 가정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려움의 정도를 순위로 매길 수는 없지만, 꽤 고생하며 살았다고 생각하며 가끔 내 고생의 경험을 훈장처럼 여기기도 했던 지난날 내 모습이 그 아이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다시 찾아가래도 못 찾아갈 거대한 몽골의 초원 어느 한 지점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의 삶은, 특히나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턱이 없는 서너 살의 아이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가혹해 보였다. 어설플지라도 문명화된-문명화된 사회가 가진 문제는 차치하고- 사회에서 살아온 내 어려움은 본질적으로 그네들이 감내해야 할 그것과는 달랐다. 우리가 기본권이라 부르는 것들이 보장되기는커녕, 그게 뭔지도 모르고 살아 내야만 하는 삶. 교만한 생각일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기특하게 그 삶을 살아내는 서너 살 아이들이 가여웠다.


 이 선교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던 마을 잔칫날, 소식을 들은 아이들 뿐 아니라 건너로 전해 들은 아이들과 어른들까지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모여들었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의 얼굴과 손을 슬며시 닦아주며 놀이 시간을 갖거나 작은 이벤트들을 하는 사이, 유난히 눈에 들던 한 아이 손을 잡고 보낸 몇 시간 동안 느꼈던 그 따스한 기운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피부가 곧장 떠올릴 정도로 내게 선연한 기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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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른 아침 비행기 안. 공항 위로 잊을 수 없는 빛깔의 하늘이 우리를 마중했다. 비행기 창 밖으로 그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몸보다 마음이 무거워 힘들었던 울드린에서 긴 낮이 지나고 맞았던 밤하늘이 떠올랐다. 누군가 나와보라는 소리에 밖으로 나간 나는 검은 풍경 사이를 빈틈없이 꽉꽉 채운, 이때껏 본 적 없는 하늘을 마주했다. 언젠가 누군가 묘사해 두었던 글이나 사진으로만 본 은하수라는 것을, 하늘에 빼곡히 들어찬 별과 수도 없이 쏟아지는 별들의 향연인 은하수를 말이다. 내가 사는 땅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별들을, 문자 그대로 목이 빠져라 한참 동안 올려다보는 내내 내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다. 언제든, 밤이 찾아오는 어느 날이든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이들에게는 이 밤이 위로겠구나 생각하며 나는 낮에 가졌던 무거움을 떨쳐냈던 것 같다. 또한 문득 찾아와 잠시 머물다간 나의 위로가, 손님이 드문 그네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바랐던 것도 같다. 이런 생각들과 함께 보았던 내 생에 첫 은하수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랬듯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하수로 남아 온통 검은빛만 가득한 어느 날들에 위로가 되어 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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