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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oad Movie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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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ug 02. 2022

남편의 고백

홍콩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쇼핑몰 여기저기 하릴없이 걷기를 수십 분, 드디어 아이가 잠이든 걸 확인하고 나는 미뤄두었던 twg에 왔다. 애프터눈 티 타임만큼은 조용히 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보다 하루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남편과 인사를 하고 뒷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일렁였다. 전날  남편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자꾸만 떠오른 탓이다. 남편은 우리  식구를 위해 더욱 즐겁게, 열심히 살아 보겠다 말했고 그런 남편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이번 여행에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아무리 내가 남편에게 우리를 위해서만 살지 말라고 해도 가장인 남편의 이런 마음에 대해서는 내가 왈가왈부할  없는 일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160 HKD짜리 레고를 사주면서도 남편은 아이에게 이런  사주지 못하는 아빠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까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사랑하는  가족이 하고 싶은  해주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자신이 너무 괴로울  같으므로  열심히 일하겠단다. 그러면서 내가 걱정하는  뭔지  안다고, 가족만을 위해 사느라 자기를 잃거나 번아웃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생각도 없던  입을 막았다.  마음이 너무나 거대하고 단단해 보여 나는 걱정스러웠던 마음을 그저 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편의  마음이 존경스러웠다. 어쩌면 그토록 이타적인 마음을 가질  있을까? 물론 나와 남편 모두  기저에 남편 스스로 번듯한 가장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남편의  마음에 박수를 보내기로, 고마워하기로 했다. 예상컨대, 앞으로 우리는  여행  다짐을 이행하는 과정 속에 각자의 시행착오를 거치게  거다. 하지만 예전처럼 막막하지만은 않다. 지난 5년간 버려낼  못지않게 쌓아온 좋은 것들이 우리 안에 두둑하게 있으니 걱정보다 기대를 걸어 보기로. 결국은 서로를 사랑하고 섬겨야 하리라. 내가 , 상대보다 내가 .


 전날 남편이 내게 했던 말들 중 잊을 수 없는 고백이 하나 있다. 자신을 이해해고 뒷받침해주는 나의 내조가, 자기의 노력만큼 드러나지 않는 게 미안하다는 말. 남편은 자기가 글이라도 써야 하나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그의  말로 모든 게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정말이지, 남편의 그 마음이면 족하다.

 

 이제 막 아이가 깨려는 지 몸을 뒤척인다. 아이와 남은 일정을 잘 소화하려면 내게 인내가 필요한데, 부디 남편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인정의 고백이 내게 그 힘을 부어주기를. 가족을 떠올릴 때 가슴 한복판에서 느껴지던 묵직한 무언가를, 이번 여정이 덜어내 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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