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
우기라면 이 정도 비는 내려줘야 한다는 걸 보여주듯 세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아침을 보내고, 너른 국립 박물관을 둘러본 뒤 쇼핑과 마사지를, 저녁으로 가볍게 꼬치와 망고스틴까지 먹으니 하루가 갔다. 여유롭게 오전을 보내서 별 거 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더위가 꽤 피로감을 준 모양. 겨우 아홉 시가 됐을 뿐인데도 몹시 고단했다.
목금토. 자꾸 남은 날이 줄어드는 게 아쉽다며 빠르게 가는 시간을 탓하고 있는 걸 보니 이 시간이 나는 좋은가보다. 혹시 이런 마음이 나뿐인가 싶어 옆 침대에 누운 친구에게 물어보니 친구 왈, 아주 편안하단다. 나와 여행하기 위해 여름휴가를 늦춰준 친구이기에 그 마음이 더욱 다행이다 싶고 또한 고마웠다.
요 며칠 외할머니와 지낸 아이는 자기가 못 본 사이 이만큼 컸다고 내게 자랑을 하고 싶은지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엄마 살아서 돌아오라고, 죽으면 울 거라고 하는데 이 녀석이 나를 보낼 때부터 자꾸 죽는다는 소릴 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 뭐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일곱 살 어린애가. 아이의 이 말이 계속 걸리는 이유는 내가 떠나오기 얼마 전부터 아이가 이미 여러 번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삶이 너무 좋으면 생에 집착이 생기는 게 뭇 인간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이가 제 삶을 너무 사랑해 그런가 싶고. 엄마 아빠가 너무 좋은 모양이다 생각하면 우리 세 식구 단란함의 증거 같아 좋기도 하다만 괜히 짠하다. 너무 앞선 걱정이지만 부모인 우리가 저를 먼저 떠나갈 공산이 큰데 외동인 아이가 언젠가 혼자 남겨질 걸 생각하면 말이다.
일단은 이 가정 안에서 아이가 행복해서 그러려니 생각하련다. 그렇지 않아도 전날 아이가 뜬금없이 남편에게 꿈이 뭐냐 묻기에 남편이 좋은 아빠가 되는 거라 대답하니 아이 왈, 이미 좋은 아빠잖아요라고 했단다. 늘 옳은 부모는 아니어도 아이가 좋아하는 부모라 다행이라는 마음. 돌아가면 곧 생일인 아이에게 올해는 어떤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쓸까. 매해 아이의 생일을 맞아 긴 편지를 써오고 있는데 이제는 아이의 일 년을 돌아보며 긴 마음을 담아낼 그 시간이 어쩐지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