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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작가 Nov 13. 2018

어느새 우리는 부모가 된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어느 날 아들 친구가 놀러 왔다가 남편의 행색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이 입고 있던 옷 때문이었는데 그 옷은 기타를 치던 아들이 고등학교 때 입던 밴드 동아리복.     


아들이 중학교 때 체육대회용 반티를 각 반에서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난 아들 옆 반 반티에 눈길을 주느라 뱁새눈이 되었다. 현란한 기하학적 무늬가 있는 펑퍼짐한 고무줄 바지. 흔히 몸빼라고 부르는 세상 편한 바지였다. 아닌 게 아니라 체육대회가 끝나자 엄마들이 그 바지를 죄다 입고 다녔다.     

 

가을맞이 옷 정리를 하면서 아들의 학교생활 옷들을 따로 쌓아보니 산더미였다. 그걸 입던 아들의 학창 시절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반짝이 점퍼는 중 3 때 입었지. 고입 준비하느라 영어 내신에 목숨 걸던... 등번호 10번 아스널 유니폼은 중 2 때던가. 축구에 열을 올리던... 


아들의 땀 냄새가 시큼하게 나는 것 가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입던 생활복은 질도 좋아 지금도 멀쩡해 부부의 산책용으로 아주 그만이다. 그 옷들에는 입시 때문에,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서, 짝사랑하던 여자아이 때문에 찔끔 흘렸을 10대 시절 아들의 눈물이 웅크리고 있을 테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우리 부부는 요렇게 조렇게 요긴하게 입고 있다.     


오래전 내가 버린 옷을, 절반만 쓰다 버린 립스틱을 툭하면 주워다 쓰는 엄마를 보면 소스라치게 싫었더랬다. 그 곤비함이 화가 났는데 내가 또 이러고 있다. 아들이 자라던 기억을 옷처럼 걸쳐 입고 싶은가 보다.


아이를 낳으면 그냥 훅 엄마가 되는 줄 알았던 나는 아이를 키우며 아이 덕분에 천천히 엄마로 빚어지고 있다. 이 평범한 진실이 오늘도 아이와 나를 자라게 한다.     


어느새 우리는
부모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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