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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금단현상

김치와의 강제 이별

by 지소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집을 세 번 옮긴 것처럼, 삶을 바꾸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사람이 놓여 있는 환경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난 이후 집을 한번도 옮기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탓인지 내가 삶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집을 옮겨 다니는 일뿐이었다. 창원에서 서울로, 그리고 서울에서 독일로. 지소삼천지교(笑三遷之敎)의 달성.


창원에서 서울로 오는 길은 가족에게서 독립해 혼자가 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독일로 오는 길에는 동행인이 있었다. 삶을 함께 하기로 결정해 버려서 얼떨결에 독일까지 와 버린 사람.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살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사람.


그렇게 우리의, 독일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도 30년간 길들여진 입맛은 바뀌지 않는다. 모유를 뗀 이후 20년 간 엄마의 아침밥을 먹고 자랐다. 말 그대로 밥. 다른 집에서 시리얼이나 토스트를 먹어도 우리집은 밥과 국이었다. 매일같이 술을 퍼마시던 20대 초반에는 순대국과 뼈해장국을 소울푸드로 달고 살았다. 물론 빵과 면도 끔찍이 좋아하지만 쌀은 그야말로 주식. 주(主)가 되는 식사. 밥상의 임금, 주인. 임금님을 때깔 좋게 만들려면 그에 걸맞은 출중한 능력의 신하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출국 전 짐을 빼고 싸고 빼고 싸고를 반복하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친구들이 결혼 선물로 준 쿠첸 압력전기밥솥이었다. 포기할 수 없는 '찰진밥'. 독일에서도 밥솥을 살 수 있었겠지만 한국 밥솥의 성능은 절대 따라올 수 없으니까. 맛있는 밥의 만족도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건 이미 싸구려 밥솥을 쓰던 오랜 자취생활로 깨달은 교훈이었다.


그러나 밥상의 또다른 친구는 포기해야만 했다. 그건 바로 '만약에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지 모르겠다고' 노래하는 김치.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를 정도로 트렌드가 되어버린 한식 덕분에 요즘은 독일의 아시아마트에서 대부분의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 물론 김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비싸다는 것. 독일에 온 이후, 벌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둘의 어학원 비용으로만 저축을 탕진하고 있는데 손바닥만 한 양의 김치를 먹자고 감자 10kg에 해당하는 돈을 쓸 수는 없었다. 김치를 직접 만들까하고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1년 단기 임대로 겨우 구한 프랑크푸르트의 원룸에는 호텔방에 있는 것과 같은 크기의 작은 냉장고뿐이었고, 그 이후에 반년 동안 머물렀던 곳은 셰어하우스여서 역시나 김치를 왕창 만들어서 넣어둘 공간이 없었을뿐더러 다른 나라에서 온 하우스 메이트들에게 김치 냄새로 원성을 사고 싶지 않았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지 모를 줄 알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김치 없이도 또 잘 살아졌다. 종종 삼겹살이나 목살을 구울 때면 고춧가루를 왕창 뿌린 파무침이나 겉절이를 먹는 것으로 김치욕을 적당히 충족시킬 수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1년 넘게 김치 없이 살아오던 생활의 끝은 한국인의 정과 함께 찾아왔다. 당시 나는 독일 대학교 입학을 위한 독일어 시험 준비에 한창이었고, 산은 어학원을 수료한 다음 우연한 기회로 프랑크푸르트의 한 한식당에서 일하며 가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매일 퇴근 후 산이 가져오는 김밥과 떡볶이를 먹는 나날이었다. 독일에서 매일 김밥이랑 떡볶이라니, 사실 말도 안 되는 호강이었지만 매일 저녁 같은 음식을 먹다 보면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를 떠나 그냥 질린다. 그래도 우리는 가난했고 공짜 음식을 마다할 수는 없었다. 그날도 거실이 없는 셰어하우스의, 우리 둘이 쓰는 방에 갇혀 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짜잔!"


신난 얼굴의 산이 내민 건 뭔가 묵직한 통이었다. 반투명한 통 사이로 붉은빛이 비쳤다. 이건... 설마?????


"같이 일하는 분이 주셨어. 직접 담그신 거래!"


우아아아아악!!!!! 김치다!!!!! 심지어 감질나게 한 번 먹고 없어지는 손바닥만 한 양이 아니라, 무려 거대한 한 포기!!!!! 그것을 본 순간, 내가 얼마나 김치를 그리워했는지 깨달았다. 괜찮았던 게 아니라, 살만 했던 게 아니라, 그저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김치를 먹을 수 없는 환경이니까 다른 걸로 만족하려고 애써왔었다는 걸. 고춧가루나 고추장이 있으니까 독일에서 이렇게 매일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걸로 애써 만족하는 척 했다는 걸. 무언가 허전했다는 걸. 특히나 라면을 먹을 때, 그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를.


라면을 끓여야 했다. 일년 동안 김치 없는 라면을 먹은 한을 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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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은 피넛버터 통에 김치를 조금 옮겨 담고 라면을 끓였다. 산이 오늘도 가져온 김밥도 펼쳤다. 지겹던 김밥이 오늘은 완벽한 한상을 만들었다. 꼬들한 라면 한 젓가락, 그리고 뒤이어 바로 입 속으로 들어온 김치 한 조각.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Hey! 나는 나는 너를 못 잊어...





앞에서 말한 순대국과 뼈해장국은 외식 소울푸드고, 내게는 집밥 소울푸드가 있다. 예로부터 3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완전함을 상징했다. 음양의 조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단군 신화의 삼신(바람, 비, 구름의 신), 서태지와 아이들도 셋,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헌트릭스도 셋...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 집밥 소울푸드도 세 가지 음식이 있어야 비로소 소울푸드라는 명칭이 주어진다. 그 전설의 트리오는 바로 간장계란밥, 조미김, 그리고 돼지고기 김치찌개다. 따끈한 쌀밥에 올린 김과 곁들인 김치찌개? 아니다. 간장계란밥에 김치찌개? 훌륭하지만 뭔가 아쉽다. 간장계란밥에 김에 참치 김치찌개?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서울에서 자취하던 시절, 본가에 내려가면 엄마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한솥 끓여서 비닐봉지 여러 개에 나눠 담아 얼렸다. 그리고 아빠와 같이 그걸 다른 반찬들과 함께 아이스박스에 차곡차곡 넣어서 들려 보냈다. 서울로 돌아와 김치찌개를 냄비에 다시 끓여서 달걀 프라이를 부치고, 간장과 참기름을 넣은 밥에 올려 김에 싸 먹으면, 엄마의 맛이 났다. 그게 내 하루를 구하곤 했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청년을 가엾게 여긴, 독일에 사는 한국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씨가 그와 같이 사는 여성의 영혼을 구했다. 마늘과 쑥만 먹으며 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인고의 시간을 견뎌 다시 한국인의 영혼을 부여받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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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과 참기름, 반숙 계란이 부드럽게 코팅된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그 위에 짭짤한 김을 올리고, 손으로 김을 밥에 감싼 뒤 입에 넣는다. 그리고 돼지고기와 김치, 국물을 투하. 신맛, 짠맛, 단맛, 매운맛, 고소한 맛에 육해공까지 총출동한 이 환상의 조화를 어찌 사랑하지 않으리!



우리는 김치 한 포기로 그동안 사무쳤던 김치에 대한 그리움을 허겁지겁 주워 담았다. 남은 달걀지단에 김치를 다져 넣은 김치볶음밥, 볶음김치를 곁들인 두부김치, 또 통조림햄을 넣은 김치볶음밥, 또 라면에 김치... 그렇게 짧고 강렬한 행복 후에 빈 김치통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제 다시 김치 없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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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술이나 담배, 커피 같은, 세상에서 기호식품으로 일컫는 것들은 대개 중독성이 있다. 취향에 따라 섭취하지만 어쨌든 신경계를 흥분시키거나 기분을 좋게 하는 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어떤 것을 줄이거나 끊고자 시도한 적이 있을 것이다.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위해, 아니면 인생을 위해서. 작게는 설탕이 많이 들어 있는 과자나 초콜릿, 빵, 면 같은 정제 탄수화물부터 술, 담배, 커피, 그리고 게임, 주식, 도박까지. 모든 중독 치료에서 필수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단계이자 가장 위험하고, 치료의 성패를 좌우하는 단계는 바로 '재발'이다. (어쩌다 중독 준 전문가가 되어버린 지소...)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거치다 문득 찾아오는 그 순간. 한 달 동안 참았던 초콜릿 한 입을 먹었을 때, 라면 한 젓가락을 먹었을 때, 담배 한 모금을 피웠을 때, 술 한 잔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코스피가 3000이 넘었을 때, 딱 한 판만 하고 멈추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 순간에 참아오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다.


가져본 적이 없는 자보다, 가졌다 잃은 자가 더 불행하다 했던가. 도박도 땄을 때의 도파민 때문에 끊지 못한다. 잠깐의 유(有)김치 생활로 평소와 다름없던 무(無)김치 인생이 지독하게 우울해졌다. 밥을 먹을 때면 김치가 아른거리고, 라면을 먹어도 예전처럼 맛있지 않고, 영혼이 계속 새어나가는 기분이었다. 김치는 기호식품이 아니다. 김치는 한국인에게 필수품이다. 없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김치는 유산균이 풍부한 발효식품이라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에 좋은 거 아닌가? 그런데 왜 나는 김치를 먹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있잖아. 그분한테 김치 좀 더 달라고 하면 안 돼?"

"맡겨 놓은 것도 아니고... 염치가 있어야지, 어떻게 더 달라고 하냐?"

"으아아아아앙 김치 먹고 싶어...... 김치 만들어 줘...... 나는 왜 독일에 살아서 김치도 못 먹고 사냐고!!!"


독일에 오고 싶다고 남편까지 끌고 와서 한식당에서 일을 시키고 있는 주제에 그렇게 말하는 나를 산은 어이없게 바라봤다.


그때, 산은 알지 못했다. 그에게 매달 김장을 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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