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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집, 우리만의 냉장고

새로운 시작

by 지소

잠깐의 행복했던 유(有)김치 생활 이후, 우리는 다시 무(無)김치 삶으로 돌아가야 했다. 김치를 내놓으라고 아무리 떼써 봐도 김치찌개를 끓일 만큼의 김치를 살 재정적 여유는 없었고, 갑자기 김치 냉장고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다시 슬퍼하며 체념하는 일뿐.


잠깐의 강력한 김치 파워 덕분이었을까. 얼마 후, 다행히 나는 좋은 성적으로 독일어 시험에 합격했고, 대학교에 지원할 수 있었다. 원래는 한국에서의 전공을 살려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었지만 독일어 시험에 합격한 이후에도 나는 내 독일어에 자신이 없었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과 실생활에서의 응용 능력은 달랐다. 특히나 이런 독일어 실력으로 대학원에 갔다간 열등생이 되어 스트레스만 왕창 받을 것 같았다. 그런 내게 산이 말했다.


“그럼 일단 학부를 다시 다녀보는 건 어때? 어차피 학부 졸업은 안 해도 되니까 적응하는 기간으로. 하다가 다시 대학원을 가도 되고. 그동안 독일어 공부하느라 너무 힘들었잖아.”


산의 말이 솔깃했다. 게다가 우리 둘 모두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생활에 권태를 느끼던 참이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작은 서울 같았다. 상상하던 유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시내의 구시가지뿐. 여기저기 솟아 있는 고층빌딩은 독일인들에게는 다른 도시에서 보러 올 정도의 구경거리였지만 서울에 살던 우리에게는 지겹기만 했다. 유럽에서의 삶은 하늘이 탁 트인 고즈넉한 풍경을 한껏 보면서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일 줄 알았는데, 프랑크푸르트에는 금융 도시 특유의 자본에 길들여진 분위기 같은 게 있었다.


당시 머무르던 집은 이전에 다니던 어학원에서 제공하던 셰어 하우스였다. 막 입독한 외국인들은 독일에서 집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래서 사설 어학원들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어학원을 다니는 동안에는 집이 있었지만 단기 계약이었던데다가 리모델링을 이유로 나가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상황이었다. 1년 가까이 어학원을 다니며 친해진 원장 선생님이 편의를 봐줘서 그 셰어 하우스의 방 하나를 빌릴 수 있었지만 새로운 학생들을 위해 최대한 빨리 이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침 프랑크푸르트가 지겨워진 참에 나의 대학교 입학에 맞춰서 다른 도시에서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오래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문학 공부를 해보기로.


이사 후보지는 본, 라이프치히, 그리고 베를린이 있었다. 독일은 대학 평준화가 꽤 자리 잡고 있어서 의대나 법대 같은 인기 학과를 제외하고는, 특히 인문학부에는 입학 정원이 따로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내 경우에는 입시를 위한 아비투어(Abitur, 독일식 수능) 점수가 없어서 한국에서의 대학 졸업 학점이 그에 해당하는 점수로 인정되었는데, 밤새서 영화를 찍으면서도 꾸역꾸역 출석체크를 한 덕분인지 다행스럽게도 꽤 준수한 성적이었기 때문에 입학에 큰 걱정은 없었다. (입학보다 졸업이 문제인 독일 대학…)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집 구하기. 한국에서 보증금만 있으면 선착순으로 집 계약을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독일에서는 보증금이 적은 대신 세입자를 아주 까다롭게 구한다. 특히 셰어 하우스가 아닌, 단독으로 사용하는 집의 경우에는 세입자의 월세 지불 능력을 보기 위해 3개월치 급여 명세서가 필수로 필요하다. 우리는 다른 도시로 이사할 계획이었고, 산은 당연히 프랑크푸르트의 한식당을 그만둘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의 급여 명세서는 소용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1년 간의 원룸 생활과 반년의 셰어 하우스 생활로 지친 우리는 우리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둘 다 예민한 탓에 다른 이들과 함께 살면서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내내 조심하느라 집에서도 편하게 쉬질 못 했고, 거기에 더해 나는 우리 둘이 분리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산이 있어 외롭지 않았지만, 동시에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전혀 없는 삶은 더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집을 구하면서 내 목표는 단 하나였다. 방 하나에 거실 하나가 있는 투룸. 시내는 월세가 비쌀 테니 통학 시간을 감수하더라도 무조건 예산에 맞는 투룸을 찾을 것. 급여 명세서도, 직업도 없는 우리에게 집을 내어 줄 집주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그냥 집이 구해지는 도시의 학교에 지원하기로.


운명은, 우리를 베를린으로 이끌었다.




베를린 외곽의 투룸 아파트. 우리 둘의 이름으로 독일에서 처음, 정식 세입자로서 계약한 집이었다. 집에서 15분을 걸어 나가면 브란덴부르크주이지만 그래도 공식적 주소는 엄연히 베를린인 곳.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한국식 5층) 건물의 꼭대기층이지만 넓은 거실과 주방, 발코니까지 있고 욕조도 있는 집. 바로 앞에 작은 공원이 있어 시야도 트여있고 빛도 잘 드는, 조용한 주거지역의 작은 집이 우리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계약서 사인을 마치고, 나는 바로 베를린의 대학교 두 곳에 원서를 넣었다.


이제 독일어 시험도, 원서 접수도 끝냈으니 천천히 짐을 정리하고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졸이던 일들이 모두 마무리되고 집 계약도 마쳤으니, 여유로운 나날을 좀 즐겨봐야지.


그리고 얼마 후 핸드폰 액정에 뜬 메시지.


"우리 비행기표 끊었어~"





평소에 여행을 즐기시는 시부모님은 우리가 독일로 처음 떠날 때부터 계속해서 방문을 계획하시다가, 우리의 이사가 결정되자마자 그걸 실행에 옮기신 것이었다. 이사를 도와주고,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했으니 같이 여행도 하자는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나는 사실 파워 내향인이다. 어른들 앞에서 적당히 멀쩡하게 굴기 위해서는 사회생활로 습득된 사회성을 발휘해야 하고, 그걸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했다. 문제는 시험과 집 구하기로 내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바닥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없는 에너지를 짜내서 부랴부랴 두 분이 오실 대비를 해야 했다. 이사일 1주일 전에 독일에 도착하셔서 한 달 정도 머무시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의 집에는 두 분과 같이 지낼 공간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이사 전까지 프랑크푸르트의 호텔에서 묵으시기에는 일주일이나 관광할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도 돈도 낭비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는 잔짐 외에는 큰 짐이 없어서 렌터카 한대로 이사할 예정이었는데, 시부모님과 함께 이동하면 오히려 짐을 실을 자리가 부족해지는 상황이었다.


최선의 방법은 그냥 우리가 고생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일단 두 분이 오신 뒤, 바로 독일 국내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뒤, 나는 산을 부모님과 남겨두고 혼자 짐으로 꽉꽉 채운 캐리어를 들고 베를린으로 향했다. 이사 갈 집의 열쇠를 받아 이삿짐의 일부를 미리 옮길 겸, 지원한 두 곳의 학교 중 한 곳의 입학을 위해 필요한 영어시험을 치를 겸, 겸사겸사 내가 한번 다녀오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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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의 열쇠와 검수가 완료된 계약서를 받아 들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에 홀로 남았다. 이 집이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집이구나. 이 집이 내 집이구나. 물론 내 소유는 아니지만 세입자의 권리가 강한 독일에서 내 이름으로 계약한 집이 있다는 건, 그리고 열쇠를 받았다는 건, 앞으로 그 누구도 쉽게 나를 이 집에서 쫓아낼 수 없음을 의미했다. 스스로 이사 가겠다고 마음먹기 전까지 나는 이 집에서 살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계약 기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를 받아주는 곳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독일에 온 뒤로 주먹을 꼭 쥐고 살아오던 마음이 처음으로 조금 느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단단히 서 있는 기분. 마트 점원의 독일어도 알아듣지 못하던 나였는데, 독일어로 소통해서 집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스스로가 대견했다. 벅차고 기쁜 마음에 홀로 소리를 질렀다.


"악!!!!!! 나 이제 베를린에 집 있는 여자다!!!!!"



잠시 후, 미리 이케아에서 주문한 가구들이 도착했다. 시부모님과 며칠을 지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들을 프랑크푸르트에서 직접 본 뒤, 베를린 지점에서 주문한 것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까지 무거운 가구들을 등에 지고 나른 배송원들은 짐을 다 옮긴 뒤 러시아어로 추정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거칠게 몇몇 단어들을 내뱉었다. 욕이 분명하다. 음료수라도 주고 싶었지만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안. 나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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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탐방 겸 먹을 것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계약 전후로 이미 와 본 적이 있지만, 정말이지 한적한 주거 지역이었다. 결국 별다른 가게를 찾지 못하고 슈퍼에서 간단히 먹을 것과 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유일하게 있는 가전은 오븐이었다. 냉장고도 없었다. 슈퍼에서 사 온 종이포일을 오븐의 그릴 위에 깔고, 그 위에 냉동 치킨너겟을 올렸다. 노릇하게 익은 치킨너겟을 꺼내서 먹으려는데 아참, 접시도 없다. 결국 캐리어를 눕히고 종이포일째 그 위에 올렸다. 혼자 이게 뭐 하는 건지.


다운받아놓은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면서 새 집에서의 첫 궁상스런 식사를 마치고 포장을 뜯지 않은 매트리스를 눕혔다. 그 위에 챙겨 온 피크닉 매트와 담요를 깔아 몸을 뉘었다. 비닐이 부스럭거렸지만 뻐근한 허리가 펴지니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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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리스 위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잉? 왜 형광등이 없지? 형광등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상하게 노출되어 있는 전선이 있었다. 설마...... 형광등도 떼갔어?????


이전 세입자가 살던 집에는 그가 들여놓은 가구와 조명 등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는데, 그가 이사를 나간 집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이 휑했다. 그래도 조명까지 떼 가는 건 너무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독일에서 그건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도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조명을 다 구입해서 달았기 때문에 다시 떼서 가져가는 것도 당연했다.


전등 스위치를 눌러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하지. 조명이 없는걸? 집에 설치되어 있는 조명은 거실과 연결된 부엌 공간의 작은 녀석뿐이었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샤워를 해야 할 판이었다.


하하....... 어머님 아버님 오시기 전에 조명부터 달아야겠구만...




홀로 공포체험으로 새 집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일찍 시험을 친 뒤 산과 시부모님이 계신 함부르크로 갔다. 그리고 슈베린에서 다시 여행을 한 다음 모두 함께 베를린에 도착했다. 시부모님을 호텔에 바래다 드리고, 산과 나는 다시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 우리가 이삿짐을 싸들고 베를린으로 돌아올 때까지 두 분은 며칠 동안 베를린 관광을 하시기로 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 독일 국토 횡단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말이..."


피곤에 절어 집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몇 달을 같이 지낸 멕시코 브라더스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김밥과 떡볶이도 나눠 먹고, 멕시코의 요상한 칠리 사탕도 나눠 먹은 사이였다. 종종 친구들을 초대해서 시끄럽게 놀기도 했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꽤 괜찮은 하우스 메이트였다.


"내 자전거 두고 가니까 너희 필요하면 써."

"오, 정말? 고마워, 지소!"

"베를린 놀러 오면 연락해!"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빌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내에서 렌터카를 빌려 왔다. 짐을 대충 박스와 가방 등에 쑤셔 넣은 뒤 트렁크와 뒷좌석에 쌓았다. 광고나 영화 촬영장에서 일하며 촬영 장비를 차곡차곡 장비차에 싣던 산의 능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내가 탈 조수석 앞 공간까지 빼곡하게 짐으로 채운 다음, 다리를 짐 위에 올린 채 우리는 다시 베를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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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가 살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밤 아홉 시가 넘은 후였다. 차에서 짐을 다 내려 길바닥에 널브러뜨려 놓은 꼴을 보니 웃음이 났다. 분명히 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펼쳐놓고 보니 이삿짐이라고 하기에 뭔가 초라했다. 그런데 또 둘이서 옮기기엔 많아서 우리는 다섯 층을 다섯 번 오르락내리락하고 나서야 우리의 살림살이를 모두 새 집으로 들여놓을 수 있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얼마 전 혼자 잤던 매트리스에 둘이 나란히 누웠다.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야?"

"응. 좋아?"

"응. 좋다. 이제 드디어 우리 둘이 있을 수 있겠네."

"그러니까. 이제 멕시코 브라더스도 안녕이야."

"그래도 집을 잘 구했다."

"그치. 운이 좋았어."

"고생했어. 혼자 집 보고 다니느라."

"응. 자기도 짐 싸고 옮기느라 고생 많았어."


조명이 없어 깜깜한 거실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포근한 달빛 속에서 우리는 금세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렌터카 반납 전까지 차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결심한 우리는 오픈 시간에 맞춰 이케아에 갔다. 배송비를 아끼기 위해 필요한 물품을 신속하게 고른 뒤, 왕창 싣고 다시 집에 옮겨 놓은 다음 아슬아슬하게 반납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침대와 소파베드, 테이블을 조립하고 조명을 설치했다.


264C67C2-17A3-48B1-8497-3AC8ADFF2648.heic 다시 밤이 되어서 휴대폰 플래시에 의지해 조명을 달고 있는 산...



겨우 집의 구색을 갖춘 뒤, 그 다음날 시내로 가서 시부모님을 다시 만났다. 고생한 우리를 위해 어머님은 한식당에서 고기를 사주셨는데, 독일에 온 이후 처음으로 한식당에서 비싼 코리안 비비큐를 먹는 거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굽이라니. 대체 얼마만의 고굽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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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구이에 소고기 비빔밥 + 김치찌개까지!


단백질을 든든하게 보충한 후 시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집으로 갔다. 우리가 살 집을 보니, 조금 마음을 놓으시는 것 같았다. 갑자기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 외동아들과 며느리가 어떻게 사는지 걱정이 많으신 게 당연한 일이었다.


다 같이 모여 사이좋게 집을 정돈하던 것도 잠시, 우리는 다시 베네치아로 떠났다.






"와, 끝났다."


이사 전후로 시부모님과의 여행을 마치고, 베를린의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 쾰른 > 본 > 함부르크 > 슈베린 > 베를린 > 베네치아 > 블레드 > 류블랴나 > 빈 > 프라하 > 베를린에 이르는 3주 간의 여행이었고, 슈베린에서 베를린에 온 다음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 이삿짐을 챙겨 새 집에 온 다음, 모든 짐을 던져놓고 이틀 후에 다시 떠났다 돌아온, 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여정이었다. 두 분이 떠난 후, 해방감과 동시에 몰아친 생각들. 나의 피로함이 기분과 태도로 드러났던 상황들이 계속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더 좋은 시간을 보내다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시기적으로 힘들었던 상황을 탓하며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다, 그래도 내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다, 혼란한 마음 탓에 도저히 머리가 편안해지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둘이서 정리되지 않아 어지러운 거실 바닥에 널브러진 채 누워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반질반질한 새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 중간에 이사를 한 후, 주방에 딸린 오븐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던 집을 보고는 우리를 불쌍히 여긴 어머님이 사주신 냉장고였다. 냉장실과 냉동실이 넉넉한, 세로로 쭉 뻗은 잘생긴 냉장고. 이틀에 한번 장을 보지 않아도, 이것저것 쟁여둘 수 있는 대궐 같은 냉장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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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진짜 너무 좋다......"

"그러니까... 우리 한국에서도 이런 냉장고 가져본 적 없는 거 알아?"

"요즘 냉장고는 진짜 좋구나..."

"근데 우리 먹을 게 있나? 아무것도 없겠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비어 있는 냉장고 가장 아래칸에서 붉은 빛깔이 눈에 띄었다.


이게 뭐지?


프레시 칸을 당겨 연 나는 그 붉은 빛깔의 정체를 알고는 감격에 겨워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 집 냉장고에 김치가 있다. 그것도 세 통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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