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뱃놀이 후엔 역시 뜨끈한 라면

여름을 즐기는 방법

by 지소

독일의 여름은 활기차다. 생명력이 넘친다. 푸릇푸릇한 나무가 온 도시를 감싼다. 사람들은 잔디 위에, 길바닥에 앉거나 누워 있다. 실내는 텅텅 비고 모두가 밖으로 나와 햇빛을 즐긴다.


한국에서는 여름이 너무 싫었다. 끈적끈적하게 몸에 달라붙는 습한 공기, 너무 뜨거워서 몸을 새까맣게 만드는 햇빛, 밖은 불지옥이고, 안은 어디든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 냉장고 안에 들어온 것 같고. 온도 변화에 민감해 덥다고 난리치다, 또 춥다고 난리치는 몸뚱이를 가지고 한국의 여름을 나는 건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다가 금방 오솔오솔 돋아나는 닭살을 마주하며 가디건을 꺼내 입어야 하는 나는 누군가 싫어하는 계절을 물으면 언제나 주저 없이 여름이라고 대답했다.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은 것들이 변할 때, 나는 겸허해진다. 크림 파스타를 먹어 보라고 권하면 절대 싫다고 거부하던 나는 소화기관이 허락하는 한 크림 파스타만 먹는 사람이 되었고, 초밥은 고추냉이를 빼고 간장만 찍어 먹는 게 생선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거라고 거들먹거리던 나는 이제 코끝이 찡해서 눈물이 나지 않을 정도가 아니면 초밥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종종 이전의 나를 생각하면 머쓱하다. 어떻게 그렇게 나에 대해 확신했는지, 어떻게 그렇게 세상을 확신했는지. 나는 이제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도 독일 한정일지도 모르지만.


독일의 혹독하고 긴 겨울, 봄까지 이어지는 추위를 겪고 나면 여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한 독일은 북쪽으로는 바다가 있고 남쪽으로는 알프스 산맥의 영향권에 있어 지역별 기후 편차가 크다. 그중 독일의 북동쪽 내륙 지역에 있는 베를린은 독일의 기후학자 쾨펜(Wladimir Peter Köppen)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서유럽의 ‘서안 해양성 기후’와 동유럽의 ‘냉대 습윤 기후’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겨울의 경우, 북대서양의 난류에서 비롯된 따뜻한 공기가 남서풍을 타고 불어오기 때문에 평균 최저 기온이 0도 언저리에 머무는, 온난한 기후라고 볼 수 있지만 수분을 많이 머금은 바람 탓에 습도가 높아 체감온도는 훨씬 낮다. 동쪽에서 시베리아 고기압의 차가운 대륙성 공기가 불어오면 온도가 더 낮아지기도 한다. 게다가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안개 탓에 해를 볼 수 없는 날이 부지기수고, 낮이 짧아 오후 4시면 어두워 지기에 쉽게 우울해진다.


그러니 우중충한 겨울을 견디고 찾아오는 여름은 얼마나 소중한지! 3월부터 기온이 오르지만 짧게는 4월, 길게는 5월 중순까지 날씨가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정말로 맑고 푸른 하늘은 여름이 되어서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습해서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한국의 여름과 달리 베를린의 여름은 동쪽에서 건조한 대륙성 공기가 유입되어 습도가 낮고 쾌적하다. 최고 기온이 25도를 넘지 않던 과거와는 달리 기후 변화로 인해 종종 35도가 넘는 폭염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건조한 공기 덕에 그늘이 있으면 견딜만하고,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는 맑은 날이면 겨울에도 테라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실내가 더 따뜻한데, 왜 밖에서 저러고 있을까? 춥지도 않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햇살의 소중함을 안다. 그래서 여름이면 집에만 박혀 있던 나는 적극적으로 화창한 여름을 즐길 궁리에 열심이다.






올해 여름에는 산과 함께 카누 수업에 등록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수상 스포츠 센터가 있는데,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베를린 남동쪽의 다메(Dahme) 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다. 작년에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한국인 선 언니가 제안해 둘이 수업을 들었는데 정말 좋은 기억이었다. 올해는 선 언니가 오스트리아로 교환학생을 떠난 바람에 강제로 산을 ‘카누 메이트’로 끌어들였다. 혼자 가기 싫은 것과 동시에 자연을 좋아하는 산에게도 그런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었다. 독일의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스포츠 수업을 저렴하게 제공하는데, 학생뿐만 아니라 외부인도 참여할 수 있다. 학생들은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외부인은 조금 더 비싸게 지불한다는 차이만 있어서 산도 문제 없이 함께할 수 있었다.



IMG_4672.JPG 우리가 다녔던 스포츠 센터의 강변



이름은 카누 수업이었지만, 실제로 우리가 배운 스포츠는 카약이었다. 카누는 크게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데, 하나는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좁고 긴 배를 의미하기에 카약이 포함되는 상위 개념이다. 또 하나는 스포츠로서의 분류인데, 보통 한쪽 방향으로만 노를 젓는 것으로 양쪽으로 노를 젓는 카약과 구분된다.


수업은 7월 말에서 9월 초, 매주 월요일에 세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모두 스포츠 센터에 모여 옷을 갈아입은 다음 구명조끼와 패들(노)을 하나씩 챙겼다. 카약은 1인용과 2인용이 있었는데 2인용은 뒤에 앉는 사람이 발과 연결된 페달을 이용해 배가 나아갈 방향을 조종하고, 앞에 앉는 사람이 노질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하는 임무를 맡아야 했다. 첫날에는 2인용 배의 앞좌석엔 내가, 뒷좌석엔 산이 앉기로 했다. 우리는 먼저 배를 자신의 신체에 맞게 조정하는 법을 배운 다음, 바로 배를 물에 띄우고 강 위에 올랐다.


노질에는 나름의 스킬과 상체의 근육이 필요했다. 노를 물속에 너무 얕게 넣으면 배가 잘 나아가지 않았고, 너무 깊게 넣으면 힘들어서 지속할 수가 없었다. 선 언니와 함께한 작년에는 최약체 둘이 힘껏 저어도 다른 아이들을 따라 잡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한번 했던 경험 덕인지 아니면 산의 파워 덕분인지 배가 너무 잘 나갔다. 산은 카약이 처음인데도 금방 익혀서 신나게 노질을 했다.



R0028469.JPG


"오, 이거 재밌는데?"


좋아할 줄 알았지만 정말로 마음에 들어 하는 산을 보며 웃음이 났다. 내가 힘들어서 노질을 그만둬도 배가 쭉쭉 나가는 건 덤이었다. 도시의 소음이 없는 강 한가운데에선 가끔 새소리나 물소리, 바람 소리만 들렸다. 한참을 가다 보면 우리는 호수 위에 있었고, 유유히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와 오리, 물고기를 사냥하는 갈매기를 만나곤 했다. 종종 멈춰서 고개를 위로 젖히면 시야엔 푸른 하늘과 구름 밖에 없었다. 그러면 나를 짓누르던 고민은 사라지고, 순간의 충만함으로 가득 찼다.



R0028470.JPG
IMG_1865.jpeg


R0028478.JPG
R0028484.JPG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만."

"옛날 선비들이 왜 괜히 속세를 떠나서 뱃놀이나 했는지 알겠다."


우리는 함께 박자에 맞춰 노를 저을 때 여러 가지 변주를 줬다. 아인스(eins)! 쯔바이(zwei)! 하고 독일어로 구령을 외쳤다가, 하나! 둘!로 돌아오곤 했다. 노를 힘차게 젓다 보면 흥이 나서 어쩐지 구성진 소리가 났다.


"어기야 디여차~ 어허야 디야 어기이여차! 뱃놀이 가잔다~~~~~"


베를린의 강 위에서 부르는 민요라니, 어쩔 수 없는 한민족의 후예인가.






물에 흠뻑 젖진 않았지만 그래도 노를 젓다 보면 팔이나 다리가 젖어 으슬으슬해졌다. 카누 수업은 오후 다섯 시부터 저녁 8시까지였는데, 배 위에서 중간에 챙겨간 간식을 먹어도 저녁 시간을 한참 넘긴 탓에 항상 배가 고팠다.


"뭐 먹지? 집에 먹을 거 없을 텐데."

"뭘 물어보고 그러시나? 물놀이 후엔 당연히 라면이지!"


변한 건 여름을 좋아하는 나뿐만이 아니다.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했다. K 콘텐츠의 영향은 식품업계에도 손을 뻗어서 요즘 독일에서는 아시아 마트에 가지 않더라도 Rewe나 Edeka 같은 일반 프랜차이즈 슈퍼에서 한국 라면을 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자주 가는 아시아 마트에는 라면의 종류가 더 많고, 대부분 1,20유로에 살 수 있는 반면에 일반 슈퍼에서는 농심의 신라면과 순라면, 까르보 불닭볶음면뿐이고 가격도 1,70유로 (불닭볶음면은 아마도 2유로 이상) 정도로 비싸지만, 그래도 긴급 상황에서는 어디서든 바로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다.


자전거를 타고 마감 시간 직전인 슈퍼에 들러 신라면 두 봉지와 순라면 두 봉지를 재빨리 낚아채 집으로 돌아왔다. 강물에 젖은 머리와 몸을 얼른 씻고 싶었다.


"그럼 자기 먼저 씻어. 내가 딱 맞춰서 끓여 놓을게."


깨끗해진 채로 욕실에서 나오니 산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빨리 와. 지금 바로 먹어야 해."



R0028538.JPG
R0028540.JPG


매콤하고 구수한 라면 냄새를 맡으니 자동으로 침이 고였다. 그릇에 예쁘게 담은 라면. 서둘러 앉아 한 젓가락을 후루룩 먹었다. 적당히 꼬들꼬들한 면발이 입 안 가득 들어왔다.


"크아! 이 맛이지!"

"어때? 꼬들하게 잘 됐어?"

"응, 완벽해."


엄지를 척 들어 올리니 산이 웃었다. 자기는 퍼진 라면을 좋아하면서 언제나 나를 위해서 꼬들꼬들한 라면을 끓여주는 사람. 씻고 나서 밥 먹고 드러눕는 걸 좋아하는 나를 위해 언제나 순서를 양보하는 사람.



그러고 보니 나는 그를 위해 면발을 양보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꼬들하게 끓이고 싶었지만 시간 조절을 잘못해 퍼진 라면이 된 적은 많지만, 일부러 그를 위해 라면을 오래 끓인 적은 없었다. 스스로 끓인 라면이 꼬들하지 않으면 „자기가 좋아하니까 됐지, 뭐.“라고 부루퉁한 얼굴로 앉아 말했을 뿐이었다.


면발의 익힘 정도는 하나의 예시고, 아마도 이런 일은 일상일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양보와 희생을 은근히 강요하곤 '괜찮으니까 해 주는 거겠지.' 라고 합리화하는 일. 그리고 불만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일. 우리를 위해서 내가 힘들게 살고 있다고 탓하면서 사실은 다 내 욕심을 위해 하던 일들. 받아본 적 없던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


다음번 라면은 꼭 시간을 들여서 끓여야지. 그리고 맛있게 먹는 얼굴을 보고 활짝 웃어줘야지. 산이 언제나 내게 그러는 것처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