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재료로 만드는 한식
창작을 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읽으면 종종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말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떠올랐어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내게도 신내림처럼 찾아오기를 언제나 바라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뇌리에 스치는 건 대단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보통 특정한 음식이다. 길을 가다 비슷한 냄새를 맡아서 떠오를 때도 있지만 아무런 맥락도 없이 문득 어떤 음식이 떠오른다. 그러면 그게 입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이미 내 앞에 냄새 분자가 둥둥 떠다니고, 씹었을 때의 질감을 상상한다. 그러면 머릿속에서는 계속 외친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고!!!!!!!!!
여름학기의 시험을 모두 끝내고, 해방감과 함께 허해진 기력을 마주했을 때 갑자기 떠오른 음식은 갈비찜이었다. 간장 베이스로 하루 종일 푹 끓인 갈비찜. 아빠의 생신 때면 밥상에 올라오곤 했던 갈비찜.
“갈비찜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걸 내 입에 넣어주지 않으면 포악해지는 걸 알고 있는 산은 내가 무언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마음속으로 준비에 돌입한다. 장을 보러 간 슈퍼의 정육 코너. 그동안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부위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갈빗대가 활처럼 굽은 곡선을 만들고 있는 녀석.
"어? 이거 등갈비인가?"
"Schälrippchen이라는데? Rippchen이면 갈비다!"
"이걸로 등갈비김치찜 해줄까?"
김치찜? 생각지도 못한 메뉴다. 내가 먹고 싶은 건 간장 베이스로 뭉근하게 끓인 갈비찜이긴 한데, 김치찜이라……. 엄청나게 맛있을 것 같군.
"좋아!!!"
다음 날 아침, 내 앞에는 등갈비김치찜이 놓였다. 시험 끝난 기분을 느끼느라 내내 넷플릭스로 일본 드라마만 보고 있는 내 옆에서 산이 분주하게 핏물을 빼고, 김치를 썰어 넣고, 저녁 내내 끓인 결과물이었다.
"우와… 이게 뭐야?"
길쭉한 뼈에 붙어있는 두툼한 돼지갈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방에 퍼지는 김치 냄새로 침이 고였다.
"김치찌개랑 비슷하긴 한데 그래도 물을 좀 적게 해서 찜 느낌으로 해봤어. 어제 좀 오래 끓이긴 했는데 일단 먹어 봐. 고기가 질기면 더 끓이게."
젓가락으로 한 덩이를 집어와 밥그릇에 놓았다. 작은 한 점을 만들기 위해 갈랐더니 부드럽고 손쉽게 찢어졌다. 김치와 함께 입에 넣으니 기름진 고기와 푹 익은 김치가 부드럽게 혀를 휘감았다.
"뭐야, 이거? 진짜 맛있다. 완전 파는 거 같아! 아니 한국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있어!"
매번 돼지고기 목살을 넣은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는데, 뼈가 통째로 붙은 갈비를 사용하니 국물에서 더 깊은 맛이 있었다. 갈빗살의 부드러우면서 쫀득한 맛이 오랜만이었다. 간만에 느끼는 익숙한 고기의 맛에 숨어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건, 엄마가 해주던 콩비지찌개에 들어 있던 갈비의 맛이다. 몇 년 동안 전혀 먹어보지 못했던 그 맛. 내가 좋아하던 맛.
"이거 어디 한국 회사 근처에서 팔면 대박 나지 않을까?"
"와, 여기에 소주까지 팔면 아저씨들이 환장하지."
"내가 여기 사는 직장인이면 점심마다 맨날 먹으러 올 듯."
"근데 한국에서 사 먹을 때도 이렇게 고기를 양껏 먹은 적이 없는데. 보통 김치만 많고 고기는 아쉽게 먹는단 말이지? 이건 거의 4인분을 시켜야 나오는 고기 양이잖아. 대체 사 먹으면 얼마일까?"
"그러게. 베를린에서는 최소 60유로는 하겠다."
푸짐하고 맛있는 한국의 맛에 즐거운 우리였다.
방학을 맞아 잠깐 휴가를 다녀온 뒤, 한참을 김치 없이 살다 다시 김치 재료를 사러 마트에 간 날이었다. 그때, 우리 눈에 들어온 특가 행사.
'Schälrippchen XXL'
2킬로에 6,99유로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이건 당장 사야 해!!!
우리는 배추와 무 등의 김치 재료와 함께 왕갈비까지 이고 지고 낑낑대며 집으로 돌아왔다.
"근데 김치를 지금 담그면 김치찜은 맛이 안 날 텐데."
"간장 베이스로 하면 되지!"
"오, 도전?"
예쓰. 계략 성공이다. 이번에야말로 먹고 싶던 찐 갈비찜을 먹게 되는군!
그렇지만 산은 하루치의 에너지를 반나절 동안 김치를 담그고 나서 모두 소진해 버렸다. 그런 산에게 당장 갈비찜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건 아무리 양심이 없는 나라도 차마 못할 일이었기 때문에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저녁으로는 고생한 산을 위해 간단한 참치마요덮밥을 차리는 것으로 점수를 좀 따면서.
아침에 일어나 소파에서 열심히 뭉개고 있는데 산이 침실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와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해?"
"갈비찜."
아싸뵹.
"도와줄까~?"
"아니, 그냥 쉬고 있어."
안 도와줘도 된다고 할 때는 말을 아주 잘 듣는 나는 다시 소파에 드러누워서 핸드폰이나 보다가, 좀 심심해져서 괜히 주방을 기웃거렸다. 갈비가 월계수 잎과 함께 한가득, 우리의 가장 큰 냄비에 조신하게 담겨 있었다. 독일에 오고 몇 년 동안 싸구려 냄비만 쓰다가 얼마 전 한국에 갔을 때 1순위로 챙겨 온, 엄마가 신혼 선물로 준 냄비 세트의 일부였다. 냄비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열이 오르고 끓인 후에도 잘 식지 않는, 두꺼운 스테인리스 냄비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낀 후 우리의 (사실은 산의) 요리 생활에 즐거움이 더해졌다. 한 솥 왕창 끓여 두고두고 먹는 든든함은 덤.
"2킬로 다 했어?"
"응. 다 들어가던데?"
"대박."
"김치 없이 고기만 하니까 다 들어가더라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식탐을 가진 나는 맛에 비례하게 양을 중시하는데, 그래서 거대 솥에 가득 담긴 음식을 보면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양껏 먹었는데 아직도 한참 먹을 수 있는 분량이 남아 있는 걸 발견했을 때.
갈비찜을 먹을 생각에 신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씻고 일하러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갈비찜을 먹을 몸과 마음의 준비도 완료. 식탁에 앉아 모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목을 쭉 빼고 산이 갈비찜을 주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조우의 순간. 잉? 이게 뭐지?
상상했던 진한 갈색의 갈비찜이 아니라, 웬 허여멀건한 고깃덩이가 눈앞에 있었다.
"장조림이랑 비슷하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훨씬 더 오래 끓여야 하나 봐."
김치재료를 사느라 장바구니에 자리가 없었던 데다가 갈비찜을 위한 재료를 따로 생각하지 않고 고기만 덜렁 사온 탓에 찜이라기보다 간장 물에 삶은 갈비처럼 되어버린 것이었다. 오래 끓일 시간이 없기도 했고.
기대한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맛은 좋았다. 특가 상품이라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핏물을 빼고 월계수 잎과 후추 등을 넣어서인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아주 오래 끓이지 않았는데도 많이 질기지 않았고, 산이 양념을 잘해서 소스가 아주 진하진 않지만 담백하고 맛있었다.
"그래도 맛있는데?"
"좀 더 오래 끓이면 괜찮겠지?"
"응! 지금도 맛있는데 더 끓이면 더 맛있어질 듯?"
그런데 문제는 갈비에 생각보다 지방이 많아서 먹을수록 입 안이 기름지고 느끼해졌다. 김치찜으로 먹을 때는 김치가 느끼한 맛을 잡아줘서 괜찮았는데, 간장 양념을 가볍게 한 갈비는 비계의 맛이 그대로 전해져서 쉽게 물렸다. 어제 막 담가 아직 냉장고에 넣지도 않았던 김치를 가져와 먹기 시작했다. 조금 살 것 같았다.
"매운 고추를 좀 더 팍팍 넣어야 할 것 같아."
"그래? 많이 느끼해?"
"어… 쫌? 이거 지방이 되게 많네……."
알고 봤더니 Schälrippchen은 영어로 백립(Back ribs)에 해당하는 '등갈비'가 아니고 삼겹살과 붙어 있는 아래쪽 갈빗살인 스페어립(Spare ribs)이었다. '껍질을 벗기다'라는 뜻인 'schäl-'에 늑골, 갈빗대를 뜻하는 'Rippe', 그리고 작은 것을 지칭할 때 붙는 접미어 '-chen'이 붙어 '겉부분인 껍질이나 두꺼운 층이 제거된 갈비'라는 뜻의 단어가 된 것이다. 아래쪽의 삼겹살에 붙어 있는 부위라 지방이 많고 부드러운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에게는 '바비큐 폭립'으로 익숙한 그 부위로, 오븐에 구우면 기름이 꽤 많이 빠지지만 그냥 삶은 데다가 간을 강하게 하지 않아서 먹다 보면 느끼해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삼겹살이 인기가 많기 때문에 삼겹살 부위로 최대한 많이 정형해서 갈비에는 오히려 살이나 지방이 비교적 적지만 독일에서 삼겹살은 인기 있는 부위가 아니기 때문에 갈비에 살이 많이 붙어있다고 한다.
"감자 같은 걸 넣어야 국물이 더 걸쭉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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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콜라 같은 걸 넣는다고 본 것 같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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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도 넣었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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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레시피 찾아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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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오래 끓여야 찜처럼 되나 봐."
맛있었지만 딱 원하던 느낌이 아니어서 이래저래 첨언을 했더니 산은 조금 시무룩해졌다. 아차. 또 까탈스러워져서 너무 말을 많이 했군. 아침부터 열심히 준비한 사람한테 이러면 안 되지.
"자기야, 그래도 맛있다! 좀 더 끓이면 더 찜처럼 될 거 같아~"
"그치? 그래도 나쁘지 않지?"
"응. 간장으로 해도 맛있네! 자기가 아침부터 고생해서 이렇게 고기를 왕창 먹네~"
산의 얼굴이 다시 조금 펴진다. 휴우.
다음 날, 한참을 더 끓이고 매운 건고추를 듬뿍 넣은 우리의 '등갈비찜'이 아닌 '스페어립 갈비찜'은 그럴싸한 비주얼을 갖추게 되었다. 양념이 고기에 더 잘 배고 색도 진해져 어엿한 갈비찜의 자태를 뽐냈다. 매운맛을 추가한 덕에 느끼함도 훨씬 잡혔다.
"이제 완전 갈비찜이다!"
"그치? 내가 더 끓이고 고추도 팡팡 추가했어."
"엄청 맛있어! 팔아도 될 거 같아!"
갑자기 나는 어쩌다 이런 호강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갈비찜을 먹는 가난한 유학생이라니. '갈비찜'과 '가난한 유학생'은 너무 모순적이다. 갈비는 예로부터 임금님의 밥상에 올라가던 음식이었고, 우리집에서도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만 먹던 음식이었는데. 그냥 먹고 싶다는 한마디로, 나만을 위해 요리해 주는 요리사를 두고 있는 유학생이라니.
서울에서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돈을 벌지만 쓰기 바빠 지갑도 마음도 가난하던 시절. 지금은 더 가난해진 지갑이지만 나를 위해 요리해 주는, 내 기분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산이 있어 날이 갈수록 마음이 오동통해지는 내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려는 사람.
"아무래도 내가 독일에 사는 한국 사람 통틀어서 제일 잘 먹고사는 것 같아."
"엥, 그건 아닐걸?"
"맞을걸? 누가 이렇게 맨날 갈비찜을 먹어? 난 먹고 싶은 거 다 먹잖아. 자기가 해줘서."
"에이, 돈 많은 사람은 더 잘 먹겠지."
"아니야. 독일은 식당이 다 맛이 없잖아. 내가 제일 잘 먹고사는 게 분명해. 누가 이렇게 잘 먹고살아?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베를린에서 그냥 내가 제일 잘 먹고 산다니까."
사랑받는 기분이 좋아서 나는 계속 염치없이 그를 고생시킨다. 앞으로도 우리는 슈퍼에서 새로운 재료를 발견하고, 그걸로 그리운 음식을 만들어 먹겠지. 새로운 메뉴를 하나씩 시도할 때마다 스티커를 붙이는 기분일 거다. 오늘도 사랑받았구나. 하트 스티커 한 개. 우리집 집밥 메뉴판에 어떤 신메뉴가 또 추가될지 나는 기다리고 만다.